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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최창일 광운대 명예교수·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작성 : 2016년 12월 27일(화) 16:45 가+가-
2016년의 끝자락. 오늘의 한국을 보는 칼럼의 총정리는 노벨상 수상자 사라구마가 쓴 장편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의 제목을 빌린다. 작가는 <눈먼 자들의 도시>라는 은유를 통해 현대사회에 대한 날선 비판을 모두 담아내는 작품이다.
회사원 한명이 도로에 운전하던 도중 갑작스럽게 모든 것이 하얗게 보이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회사원이 안과를 방문하는 동안 회사원 사람들이 차례로 실명하며 실명은 무서운 속도로 퍼진다.
실명 사태 초기에 정부가 회사원과 안과의사, 그리고 그들과 접촉한 모든 사람을 폐기된 정신병원에 격리하는데. 이 과정에서 시력을 잃지 않는 의사 아내는 시력을 잃었다는 거짓말로 의사남편의 뒤를 따라 격리장소로 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폐병원의 상황은 성폭행과 살인이 난무하는 상황에 이른다.
이른바 눈먼 상황의 아비규환과 인간이 질서를 잃었을 때의 참혹한 환경을 고발하는 소설이다.
이후 영화로 만들이기도 했다. 마치 <눈먼 자들의 도시>는 광화문 광장에 레이저를 쏘아 보여주는 장면과도 같은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2016년의 한국 사회는 전대미문, 정치라는 시험대에 올라섰다. 세계 나라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정치의 이기심을 들키고 만다. 수습하려는 리더십마저도 자아성찰이라는 단어를 찾아야만 했다.
루소는 일지기 무형의 교육을 주장했다. 보이지 않는 교육은 다가오는 미래에 걸어감을 말한다.
한국의 화이트칼라들은 유, 무형의 교육자들이다. 한 정부를 이끄는 지도자는 작은 나라, 큰 나라를 비교치 않고 600명 이내라는 정치학자의 주장이다. 한국의 600명 지도자가 보여준 태도는 <눈먼 자들의 도시>의 주역이었다.
거짓말도 너무나 태연하게 한다. 2016년의 년대는 <거짓말의 해>. 청문회에 비추어진 거룩한 지도자들은 거짓의 산실이다. 그들, 거짓말에는 한 치의 오차와 흔들림이 없다. 거짓도 거룩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인간은 홀로 살수 없으며 조직을 통하여 이루어야 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조직이 거짓말을 하면 내부의 견제에 의하여 거짓을 몰아내는 것이 조직사회의 충분조건이다. 견제는 통제가 되고, 통제는 새로운 사회로 거듭난다.
언제인가, 이미 초등학교에서는 회장과 반장을 뽑는데 물질이 동원된다는 지적의 뉴우스를 접했다.
이 또한 어른들이 만들어낸 무형의 교육, 고장 난 초등학교의 교실 시계였다.
2016년의 청문, 국회가 보여준 것은 장단점의 명암은 있다. 그러나 칼럼자의 지적은 보다 냉정하고 싶다.
오늘의 10대와 20대에게는 지울 수 없는 교육을 시키고 말았다. 어떠한 경우에도 ‘얼굴빛 변하지 말고 거짓말하라. 말소리는 지적이며 보다 낮게 어둠을 깔고 거짓말하라’는 교육장이 되었다. 문신을 지우듯 거짓의 시대를 지우려면 그 재정적 손실은 가히 환산이 가능할까.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의 와 닫는 글귀가 있다. ‘ 왜 우리가 눈이 멀게 된거죠. 모르겠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 싶어.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마치 대한민국의 촛불 광장을 향하여 던지는 대사 같다.
법학을 전공하는 교수는 청문회는 보지 않고 박진영이 심사하는 K팝을 열심히 본다고 한다. K팝의 심사가 너무나 공정하고 심사하는 평이 법학의 법리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사법부, 교육, 경제, 정치, 종교가 K팝에 질서의 논리를 배우는 사회라면 우리는 어디에 눈과 귀를 두어야 할까. 2016년의 한국사회를 결산하는 칼럼자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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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h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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