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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촛불
최창일 광운대 명예교수·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작성 : 2016년 12월 13일(화) 17:06 가+가-
기독교가 불같이 성장한 시기는 일제강점기와 전쟁으로 인한 폐해 속에서다.
인간의 본성은 어려운 시기에 위로 자를 찾는다.
현실의 난제를 신에게 기도로 간구하는 것이다. 춤의 목적은 유혹을 위하여 탄생한다.
몸짓을 통하여 원초적인 본능을 건드려 마음을 그대에게 도달시키는 것이 춤이다.
수많은 역사는 춤의 유혹에 의하여 이루어 졌다. 궁중은 춤으로 흥하고 망한 기록을 우리는 알고 있다.
소설은 200년 전후의 짧은 역사를 가졌다.
소설은 가상의 이야기를 현실처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 있다. 소설의 목적은 계몽도 있다.
이광수 “흙”이나 심훈의 “상록수”는 그 대표적이다.
상상의 세계를 현실로 흥미롭게 다루는 것이 소설이다. 소설이 탄생한 것은 인간들의 다양한 삶을 대중에게 전달한다.
소설이 필요한 것은 기막힌 이야기를 통하여 대중을 선동하거나 상업적 이용이 필요하였다. 소설은 영화가 되고 드라마가 된다. 대중오락의 중요한 장르가 된다. 드라마는 인간의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고도의 오락이 되어 문화산업까지 점령하는 시장을 형성한다.
드라마는 국경을 넘어서는 대단한 마력을 가지게 된다.
수필은 일상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달하며 내가 보는 일상의 이야기를 감동으로 전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시의 역사는 기원전 2000년 전부터다.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중국은 시의 역사다. 공자는 시를 통하여 천하를 윤리와 인간의 길을 만들고 싶었다.
서유럽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철학자들은 시를 통하여 인간의 내면을 전하고 가야할 길을 알려준다.
대표적으로 플라톤이나 아리스트톨레스는 자신의 철학을 시를 통하여 정리하기도 했다.
시만큼 대중의 호흡을 정교하게 만들어갈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성경에서는 시편을 통하여 인간의 마음을 위로하고 신에게 귀의하는 것을 돕게 하였다.
지금 한국에서는 촛불이라는 거대한 시의 불이 켜지고 있다. 시의 촛불은 대통령을 탄핵에 이르게 하기도 하였다.
촛불은 시다. 성경에는 바벨론이 등장한다. 니므롯이라는 사람은 사람들을 충동하여 바벨탑을 만든 사람이다.
신을 무시하고 자신의 목적, 바벨탑을 세우는데 촛불을 등장 시키다. 촛불의 역사는 인간의 야욕을 위하여 이용되었다.
물론 니므롯의 입장은 야욕이 아니고 대중들을 위하는 목적이라고 할 것이다.
촛불은 그 후 변화의 과정을 거쳐 IS사람들이 산당제사를 드리는 목적에도 사용된다, 그리고 오늘의 천주교에서 예배에 촛불을 켜기까지 이른다.
불은 움직이는 시의 은유로 표현하는 힘이었다. 마음을 모으게 하고 나의 진실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광화문 광장이나 전국광장문화에 등장하는 하나의 현상불이라고 생각하면 순진무구하다. 촛불은 움직이는 시다. 꺼지지 않는 희망이다.
한국에서 시를 다루는 신문은 대다수다. 시를 다루는 신문은 솔직히 독자가 원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신문들은 대부분 단순히 시 한편을 싣거나 작가나 명사의 짧은 해설을 곁들여 추천하는 의미를 담아 게재하였다.
그런데 한겨레가 지난 1월부터 토요일판에서 두면을 할애해 지금까지와는 전 혀 다른 차원에서 시를 다루고 있다.
잊혀진 것에 대한 송곳의 날카로움으로, 버려진 것들에 대한 발견으로, 시인들이 자신의 시를 산문으로 설명하고, 시와 노랫말 전문가가 독자에게 시의 지도를, 초대 손님이 시와 관련된 체험을 들려준다.
다시 광화문 촛불광장으로 건너온다.
광장의 무대에서는 뮤지션 양희은의 ‘상록수’,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전인권의 ‘그것만이 내 세상’ 한영애의 ‘기도하다’ ‘조율’의 시가 노래가 되어 광장의 아스팔트를 지진이 나게 하였다.
노래를 듣는 사람은 형용하기 힘든 전율을 느낀다. 광장에서 뮤지션을 통하여 노랫말이 되어 나온 시는 혁명이다. 수많은 시선과 귀를 하나로 모으는 혁명의 시간이다. 세계가 하나로 모으는 방법은 시가 노래되어 울림이다.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시의 촛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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