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년의 마지막 달인 12월에 접어들었다. 마지막 남은 한 장의 캘린더를 바라보면서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1년을 되돌아보니 새삼스럽게 느끼는 시간의 빠름과 함께 속절없이 세월을 보낸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욱 아쉬움과 후회스런 것들을 느끼게 되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나마 좀 더 알차게 보내야 되겠다는 다짐을 해보기도 한다.
특히 올해에는 온 나라가 바람 앞에 가물거리는 촛불마냥 총체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매주 토요일만 되면 서울 도심을 중심으로 분노에 찬 국민들의 시위가 날이 갈수록 거세어지고 있다.
차가운 바람이 뼈속 깊이 파고드는 초겨울의 날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최순실의 국정논단과 이에 놀아난 박근혜대통령의 책임을 물어 당장 하야하라는 성난 민심의 압박은 더욱 강도가 높아만 가고 있어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가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지난 1일 서울광장에서는 해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출범하는 첫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약 5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은 전국 76개 지역에서 400여개의 모금 통을 갖고 12월 30일 자정까지 자선냄비 모금활동을 본격적으로 펼치게 된다. 금년도 모금목표액은 75억 8천만 원으로 잡았다.
이 냄비는 삭막하기만 한 우리 사회에 아직도 메마르지 않은 따뜻한 이웃이 존재한다는 것과 인정이 흐르고 있음을 확인해주는 것 같은 엄숙함을 엿 볼 수 있어 마음이 흐뭇하다.
자선냄비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125년 전인 1891년 미국의 서부 항구도시인 샌프란시스코 앞 바다에서 조난당한 선원들을 돕기 위해 한 신부가 급히 모금함을 찾던 중 선창가 앞 식당에서 사용하다 창고에 넣어 둔 가마솥을 급히 들고 나와 길거리에 내걸면서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는 1769년 에스파냐 왕의 명을 받은 가스파데 포톨로가 선교사와 병사들을 거느리고 샌디에고를 지나 샌프란시스코 항구에 들어와 처음 식민을 시도하였고 1776년에는 요새와 전도구를 설치하여 그곳을 ‘이에바부에나’라고 불렀다.
그 후 1821년 러시아제국은 모피 교환의 기지로 이 근교에 포트로스를 건설했는데 1822년 멕시코 령이 되었다가 1846년 미국 해군제독인 존 프라몬트의 봉기로 현재의 주기인 ‘베어 플레그’를 게양했다가 다시 몽고메리제독에게 점령되어 1847년 현재의 이름인 샌프란시스코로 부르게 된 도시이다.
그러나 오늘날 샌프란시스코는 금융과 교역, 문화의 중심지로 연간 200만 명 이상의 전 세계 관광객이 찾는 국제관광 도시로 평균기온이 일 년 내내 섭씨 15도 이내의 살기 좋고 아름다운 도시로 정평이 나있다.
미국내 인기도시 베스트 10에서 매년 1위를 지키고 있을 정도이다.
이 도시의 상징인 금문교는 1933년에 J.B 스트라우스의 설계와 감독으로 착공하여 4년 만인 1937년에 완공되었는데 길이 2825m, 높이 2273m로 6차선의 차도와 27,572개의 작은 철사를 엮어 만든 사장교로 지난 1989년 지진 때 70인치가 흔들리면서도 끄떡 없이 버틴 세계적 명소로 각광을 받는다.
우리나라에서 자선냄비의 모금활동이 시작 된지는 1928년부터이니 올해로 88년째가 된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오히려 모금에 참여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통계이다.
부자들은 대체적으로 이 냄비를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적다.
그 이유가운데 하나는 이 빨간색 자선냄비가 걸려있는 골목길을 걸어다날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자꾸만 추워져가는 겨울을 온 몸으로 느끼며 자신들의 처지와 같거나 자기보다 더 어려운 형편에 처해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적은 돈이거나 쓰다 남은 동전이라도 최선을 다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정성스럽게 자선냄비를 채워가게 된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도심의 거리에 제복을 입고 딸랑딸랑 종소리를 울리는 구세군과 빨간 냄비는 이웃의 고통을 생각하며 그 고통을 함께 나누고자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인정의 꽃을 피우는 심볼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어 훈훈한 온풍이 되고 있다. 그래서 12월은 마지막 달이 아니라 다가오는 새 해를 기다리는 희망의 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