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촛불은 계속 타고 있는데 이미 권위와 지휘력을 잃어버린 박근혜 대통령이 민중의 쓰나미 앞에 모래주머니를 쌓으며 안간 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 매우 안타깝다.
지금 박 대통령이 특유의 결기와 정치공학적 전술로 시간을 벌고 있는 것 같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숨을 곳은 점점 없어질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금부터라도 더욱더 솔직하게 국민과 역사 앞에 사죄하고 회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법적 처벌보다 더 무서운 처벌은 국민의 차갑고 원망스러운 눈빛이며, 그것을 마음의 용서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박 대통령의 겸솜한 회개의 눈물뿐인 것이다.
하지만 비선의 사익을 위해 국가기관이 동원됐다. 청와대가 기업 돈을 받고, 특권층의 ‘빽’에 입시의 공정성이 무너졌다.
비선의 암약, 정권의 갈취, 특권층 ‘갑(甲)질’… 이 모든 것이 후진국병이다.
이 참담한 실상 앞에서도 계속 선진국 운운 한다면 우리가 너무 뻔뻔한 게 아닌가.
지난 주말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청년 시위대가 이런 구호 하나를 들고 있었다고 한다. ‘헬조선(지옥 같은 한국)인 줄 알았는데 고조선이었다.’ 이게 정답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국가 운영은 ‘고조선’으로 희화될 만큼 전근대적 정치였다.
모두가 왜 박 대통령만 탓하고 있는가? 대통령 잘못으로 이 나라가 이꼴이 됐다고 한다. 검찰에 불려간 청와대 참모들도 대통령이 시켰다 하고 있다. 왕정 시대에 머문 듯한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사태의 주범으로 보인다.
그런데 대통령 한 사람만의 문제일까? 대통령도 문제지만, 대통령을 둘러싼 국정 운영 시스템은 더 문제였다. 주변 참모들과 사정 기관, 정치 리더십과 관료 집단이 모두 엉망이었다.
어느 국가나 비선이 있을 수는 있다.
우리의 문제는 비정상을 감시할 경보시스템이 고장 난 것이었다. 대통령의 일탈을 잡아줄 견제 스스템도 없었다.
대통령의 일탈이 후진적인 국가 시스템과 결합한 것이 지금의 사태가 아닌가 싶다.
최씨 일당의 국정 농단은 어느 날 갑자기 돌출된 것이 아니다. 아무리 늦춰 잡아도 2년 전엔 체크될 수 있었다. 2014년 가을 파문을 일으킨 이른바 ‘정윤회 문건’에 최순실이 등장 한다.
문건엔‘시중에선 최순실이 서열 1순위, 대통령이 3순위라 한다’고 적혀 있다.
대통령도 문건 내용을 보고 받았다. 적어도 그 시점엔 박 대통령도 최씨가 문제 될 수 있다는 개연성을 인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진상 파악 대신 문건 유출만 문제 삼았다. 국정 시스템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부터 기능장애를 일으겼다.
대통령은 40년 친분에 눈이 안 보였다 치자. 이를 감시해야 할 청와대 참모와 사정 책임자들은 무얼 했는가 묻고 싶다.
사서의 하나인 ‘논어’안연 편에는 지금의 산동반도에 있던 노나라 애공과 공자의 제자 유약이 세금에 대해 논하는 장면이 나온다. 애공이 유약에게 흉년 때문에 나라의 재용이 부족하니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느냐고 물었다.
당시 노나라는 세금으로 10분의 2를 거뒀는데 유약은 거꾸로 10분의 1을 걷는 철법을 쓰라고 권유했다. 애공이 10분의 2를 거두어도 부족한데 어떻게 철법을 쓰겠느냐고 불평했다.
그러자 유약은 “백성이 풍족한데 임금께서는 누구와 더불어 부족하겠습니까? 백성이 부족한데 임금께서는 누구와 더불어 풍족하시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이 말은 백성들이 가난한데 임금 혼자 부유할 수 없고, 백성들이 부유한데 임금 혼자 가난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잊어서는 안 될 말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대통령과 그 비선실세 및 측근들만 부유하고, 대다수 국민들은 ‘헬조선’에 신음하고 있다.
이 나라 반만년 역사에서 비슷한 사례도 찾기 어려울 지경이다. 선진국에도 부정과 비리는 있다.
하지만 썩은 구석이 생기면 누군가 나타나 휘슬을 불어대는 것이 선진국이다. 우리는 최씨 일당이 휘젓고 다니는 동안 누구도 경보음을 울리지 않았다. 대통령이 무섭고, 윗선의 지시라고 혹은 지금까지 해왔다는 관행을 이유로 부정의 향연에 동조했다.
역대 대통령들의 실패 경험을 두루 살피고 통치자의 자질에 관한 금언들만 잘 따랐어도 이즈음 박 대통령의 참혹한 상황은 없었을 것이다.
경제로 본 국정 능력은 바닥이고 청렴성과 용인술은 그보다 더 떨어지니 최악의 대통령이란 오명을 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모든 권력을 내려놓고 국회가 추천하는 책임총리에게 권한을 넘겨야 한다.
자서전에 썼듯 “훗날 깨끗한 정치를 통해 반드시 후회 없는 선택이었음을 입증해 보이겠다”는 각오를 돌아봤으면 싶다. 국민이 나라를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