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의 엘리트층의 탈북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는 것을 보면 북한정권도 이제 갈 때까지 간 모양이다.
특히 금년에 함경북도 화령과 종성 등 두만강가의 북한 지역에 사상초유의 홍수피해로 인해 집과 재산을 잃은 북한주민들의 생활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 보다 훨씬 심각한 처지가 분명하다.
앞으로 우려되는 북한 주민들의 ‘대규모 탈북사태’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재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북한의 제5차 핵실험과 최근 발사한 미사일로 인해 공동 위기감을 갖고 보다 실제적이고 강력한 대북제재를 취하는데 생각과 행동을 같이하고 있다.
피부로 느끼는 경제적 타격과 함께 다양한 압박과 제재를 모색하며 하나 둘 실행에 옮기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최근 국무회의에서 탈북민을 가리켜‘먼저 온 통일’에 비유하며 관계부처에 북한 주민들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체재와 역량을 갖추라고 지시한바 있다.
북한에서의 남한으로 탈북의 역사는 지난 1983년 2월25일 자신이 조종하던 미그-19 전투기를 직접 몰고 귀순한 당시 이웅평 공군대위로부터 시작이 된다.
당시 한국에서 팀 스프릿 훈련이 진행되자 북한은 준 전시상태에 해당하는 경계태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날 훈련을 위해 오전 10시30분쯤 평안남도 개천비행장을 이륙한 미국-19 전투기 편대가운데 이웅평이 조종하는 전투기는 편대를 이탈하여 갑자기 남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곧 해주상공을 지나 남한의 연평도 상공의 북방한계선을 넘어 남한 땅으로 진입했고 이에 초계비행중인 대한민국의 F-5전투기들이 요격에 나서자 이웅평이 탄 미그-19기는 날개를 좌우로 흔들며 귀순의사를 밝혔다.
이에 F-5 전투기가 유도해 제10전투비행단이 있는 수원비행장에 안전하게 착륙시킴으로 이웅평 대위는 자유대한의 품에 안겼다.
공산진영의 군수품을 가지고 귀순할 경우 장비에 대한 보상을 하도록 한 법률에 따라 당시 15억6000만원의 보상금을 받았는데 현재의 화폐가치로 다지면 약 70억 원 상당에 이른다.
그는 한국공군에서 계속 근무하다가 1996년 공군대령으로 진급했고 예편 후 공군대학교 정책연구위원 및 교관으로 활동하다가 지난 2002년 5월 4일 간 기능부전증으로 이명을 달리했다.
그 다음으로는 1987년 1월15일 새벽 1시 북한의 청진항에서 50톤급 청진호를 몰래 탈취한 후 11명의 가족과 함께 탈북한 김만철씨 일가의 귀순이다.
그리고 지난 2012년 9월 28일 귀순한 조선인민군 병사의 노크 귀순사건이다.
이 병사는 저녁 허기를 참지 못하고 움식물을 훔치다 상관에게 발각돼 싸운 뒤 귀순을 계획 하고 자신의 부대를 이탈한 후 대한민국 국군 내무반까지 들어가 노크를 했던 사건이다.
그리고 1997년 북한노동당 비서인 황장엽 씨의 망명사건은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사건이었고 금년 8월 현직 영국주재 북한대사관인 태영호 씨의 망명은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탈북이었다.
태영호 공사는 현직 북한 외무성에서 유럽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실력자이다.
날마다 이어지는 탈북러시와 함께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차기 사무총장에 안토니오 구테헤스 전 포르투갈 총리를 추천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물론 유엔총회 표결이라는 의례적 절차가 남아있지만 그가 우리나라 반기문 총장에 이어 내년 1월부터 5년간 유엔 사무국을 이끌게 된다면 우리에게는 더욱 든든한 우군을 얻게 된다.
그는 과거 유엔난민기구를 이끌 당시 중국의 북한 탈북자들의 북송에 대해 강력한 반대 목소리를 낸 인물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북한 주민들의 대량탈북 가능성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북한인권재단이 출범하고 제3소재 탈북자들의 한국행을 돕는 민간단체를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시급하게 마련해야 한다.
북한은 지금 붕괴직전에 나타나는 현상들이 연이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먼저 온 통일’ 이라고 부르는 탈북자들에 대한 이해와 그들을 품고 함께 살아가는 각오와 다짐은 물론 실제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