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자락이다. 이상적인 고향은 골목길의 감나무에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쪽빛하늘이 눈부시고 뻗어나간 나뭇가지를 가득 채운 탐스러운 붉은 태양만큼이나 빛난다. 안 먹어도 배부르고 풍요하다.
고향에 두 고온 당산나무의 안부도 그립다. 22일 아침 뉴우스를 듣는다. 거산 김영삼 대통령이 서거하셨다.
나라를 찾는 순간 한국의 성장 통은 시작 되었다. 도약과 비상의 드라마틱한 사건을 함께 겪으면서 경제는 경제대로 정치는 정치대로 진화를 시작한다.
정치는 혼란과 함께 군사정권이 들어선다. 한국영화에서 신성일을 빼 놓을 수 없듯이 한국정치엔 양김이 등장한다. 바야흐로 김대중과 김영삼이라는 거인의 정치인이다.
한국 정치의 주역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민주정치라는 꽃을 피우고 가꾼 사람들이다. 그들은 시대를 끌고 가려 하지 않았다. 국민과 같이 담론하고 뚜벅 뚜벅 걸어갔다. 국민이 질타하면 아끼는 동지를 감옥에 보냈다. 아들까지도 감옥에 보내는 냉정함도 보였다. 모든 것이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우린다. 쿠데타의 주역들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다.
익어가는 감은 태풍과 햇빛에 저항하지 않는다. 강렬하고 뜨거운 햇빛을 무저항으로 받는다. 감은 비바람과 태풍까지 작은 열매에 담아내야만 과실(果實)의 결과를 본다. 그래서 익지 않는 감은 몹시 떠럽다. 붉게 익은 홍시는 꿀처럼 달다. 정치의 세계와 너무나 닮았다.
한국인에게 정치란 격동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수많은 감동도 있었고 아픔도 있었다. 전직 대통령이 두 명이나 감옥에 가는 시간도 있는가하면 스스로 목숨을 던지는 비운까지도 보았다. 한편의 영화와 같은 정치, 대통령들의 영욕의 세월이었다.
한국의 정치는 정치인이 아니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경제에 개입하고 교육에 개입하고 문화에 개입한다.
국부(國富)론의 경제학논리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양김은 국부론에 접근 하고자 노력한 지도자들이라고 평할지 먼 후일 사가(史家)에게 맡긴다.
요즘 무수히 많은 기업이 예술 작가와 콜라보레이션을 시도 하고 있다.
기업과 예술은 상업이라는 경제 논리가 개입된다. 부단히 노력하고 변화되어야 한다. 정치는 국부론에서 주장하듯이 다양한 분야에 힘이 되는 영양제가 되어야지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양김은 지금의 정치가 또 하나의 발 돋음을 권하고 떠났다.
기업은 기업이 하게하고 교육은 교육가가 하게 하여야한다. 그것이 정치의 발전이다.
정치도 과학처럼 발전하고 변해야 한다. 양김은 꾸준히 변모하고 발전의 모습을 보였다. 한 번도 제자리에서 뜀뛰기를 하지 않는 정치인들이다.
그들은 실험정치를 하지 않았다. 실험은 성숙을 위한 수단이다. 양김이 평가 받는 것은 완성의 정치력에서 통치를 하였다. 아마추어리즘이란 시행착오를 하는 연습생을 말한다. 통치자는 수많은 시련과 역경 속에서 통치를 하게 된다. 아마추어리즘이 있어선 안 된다. 젊고 유능한 정치인들은 양김의 정치 지도를 본받아 국민을 담는 옥빛 도자기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양김이 하늘나라로 가면서 남기는 유언이다.
중국역사에서 만세(萬世)의 사표(師表)라는 공자는 벼슬자리를 얻기 위해 13년이나 중국각지를 유세하고 다녔으나 어떤 왕도 그에게 제상 자리를 주지 않았다. 장자는 왕들로부터 제상 자리를 권했으나 권력은 썩은 쥐이며, 그것은 탐하는 자는 올빼미뿐이라고 거절하였다.
부패한 세상을 조롱하며 자유를 추구하고 정의가 무엇이고 참된 자유가 무엇인지를 추구한 장자였다. 이제 한국의 지도자들이나 지도자의 열망을 담고자 하는 이들은 양김이 추구한 민주적 태도에 묵상하고 침잠하면서 거듭나야 한다.
정치는 눈으로 보이는 이 세상보다 더 큰 어떤 세상을 열어주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