連理는 두 몸이 한 몸이 된다는 흔히 남녀 간의 사랑에 비유 됩니다.
나아가서 부모와 자식 사이 친구와 친구 사랑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 모든 사랑을 하나로 이어진 두 나무로 형성화 됩니다.
나뭇가지가 서로 이어지면 連理枝라고 하고 줄기까지 이어지면 연리목이라 합니다.
두 그루의 나무가 너무 가까이 붙어 있으면 보통 죽는다고 생각 하는 데요 連理枝는 전혀 그렇지 않는다고 합니다. 연리지라는 나무들은 처음에는 가지가 하나씩 붙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 가지가 하나 되고 그리고 또 뿌리가 붙어서 하나가 되고 마침내 두나무는 한 나무가 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두 나무가 붙어서 하나가 되지만 각각 가지고 있던 본래의 개성은 그대로 유지 한다는 것입니다.
흰 꽃을 피웠던 나무는 여전히 흰꽃을 피우고 노란 꽃을 피웠던 나무는 그대로 노란 꽃을 피운다는 것입니다.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묘한 삶을 살아가는 연리지 입니다. 後漢書 채웅 전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후한 말의 문인인 채웅은 효성이 지극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고 합니다.
채웅은 어머니가 병으로 눕자 삼년동안 옷을 벗지 못하고 간호해 드렸습니다.
병세가 악화 되자 백일동안이나 잠자리에 들지 않고 보살피다가 돌아가시자 무덤 곁에 초막을 짓고 시묘 살이를 했습니다.
그 후 웅의 방 앞에 두 그루의 싹이 나더니 점점 자라서 가지가 서로 붙어 성장하더니 결이 이어지더니 마침내 한그루처럼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채웅의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와 자식이 한 몸이 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부모 간의 사랑보다는 남녀 간의 사랑을 비유 할 때 더욱 많이 쓰입니다. 그것은 당나라 시인 백거이가 쓴 長恨歌 때문입니다.
그 시에는 백거이는 당현종과 楊貴妃의 애절한 사랑을 연리지에 비유 했습니다. 그 후 연리지는 남녀 사이의 애틋하고 변함없는 영원한 사랑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사랑을 나무에 비유한 것은 생물학적으로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말입니다. 나무도 인간처럼 스트레스를 받고 충치도 앓으며 사춘기도 겪는 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고혈압과 빈혈증세도 나타내며 거기다 나무와 진한 사랑을 나눈다고 합니다.
그것이 인간이 나누는 그러한 사랑이나 감정은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여하튼 두 나무가 하나의 나무가 되는 연리지는 우리에게 참된 사랑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기에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숲속의 나무들은 좁은 공간을 나눠 갖고 살아 갑니다. 나눔의 방법이 정해진 것은 아니니 햇빛을 차지하기 위해서 남보다 먼저 쑥쑥 키 자람을 하고 가지와 잎을 잔뜩 펼쳐 놓아야 합니다.
자연히 다툼이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조금의 빈 자리라도 생겼다 하면 주위의 나무들은 우선 가지부터 들이밀고 봅니다.
서로가 부딪치면서 맞닿게 마련입니다. 처음에는 자기만 먼저 살겠다고 발버둥치지만 맞닿은 채로 오랜 세월이 지나다 보면 함께 협조해야 살아 남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조금씩 메워 나갈 수 있도록 아예 몸을 합쳐 한 나무가 되는 것이 더 유리 하다는 결론에 도달 합니다.
이렇게 맞닿는 두 나무의 세포가 서로 합쳐 하나가 될 때 우리는 연리지라고 부릅니다.
연리가 되는 과정은 자세히 알아 보면은 이웃한 나뭇가지나 가까이 심은 두 나무의 줄기는 차츰 굵어져 서로 맞닿게 됩니다. 해마다 새로운 나이테를 만들므로 나이를 먹어가면서 서로를 심하게 압박 합니다.
우선 맞닿는 부분의 껍질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여 파괴되거나 안쪽으로 밀려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맨살까지 맞부딪칩니다.
남남으로 만난 둘 사이에 사랑의 스킨십이 이루어지면서 물리적 접촉 단계를 지나 생물학적 결합을 시작 합니다.
먼저 굵기 자람을 담당하는 부름켜가 서로 연결해도 거부 반응이 없은지를 알아 봅니다.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메시지를 주고 받은 후 합쳐도 좋다는 뜻이 맞으면 두 나무의 세포는 운명적인 만남을 완성하기 위해 이어지기를 시도 합니다.
부름켜는 가진 물질을 서로 주고 받고 이어서 양분을 공급하는 방사조직을 서로 섞어 버립니다.
마지막으로 나머지 세포들은 맞닿은 선을 따라 차근차근 서로의 세포벽을 잇는 공사를 진행 합니다.
이렇게 생물학적 결합이 끝나 공동으로 살아갈 한 몸으로 완성 되면서 연리의 대장정은 막을 내립니다.
두 나무 세포가 결합하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결국은 하나의 나무와 똑같아 지는 것입니다.
이런 나무를 잘라 보면 마치 쌍가마처럼 한꺼번에 두 개의 나이테 두름이 들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미 하나의 몸이므로 양분과 수분을 같이 쓰는 것입니다.
불행히 한쪽 나무가 잘려 나가더라도 광합성을 하는 나머지 한쪽 나무가 양분을 공급해 주면서 살아 갈수 있습니다. 연리란 종류가 같은 나무 예를 들어 음나무와 음나무 참나무와 참나무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감나무와 고욤나무처럼 아주 가까운 친척 사이여야 합니다. 대체로 접붙이기가 가능한 나무는 연리는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소나무와 참나무처럼 종류가 전혀 다른 나무는 수십년이 아니라 수백년을 같이 붙어 있어도 그냥 맞대고 있을 따름이지 결코 연리가 되지 않습니다. 어쩔수 없이 서로의 피부를 맞대고 있을 뿐입니다.
세포의 종류나 배열이 서로 달라 부름켜가 연결 될수 없으며 양분 교환은 어림도 없는 것입니다.
이런 나무는 엄밀히 말하며 연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겉으로 같아야하는게 아니라 마음이 같아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마음과 마음이 하나로 흐를 때 우리 사회에 흔히 일어나는 남편과 아내가 헤어지는 이혼이나 혼자서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 애쓰다가 자살을 선택하는 불행한 일이 사라질 것입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하나로 흐를 때 찾아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