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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랖 유감
김 요 한 시인·목사
작성 : 2015년 10월 01일(목) 17:38 가+가-
오지랖이란 본래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이름이다.
가까운 친구중에 이 오지랖 때문에 때로는 칭찬을 듣고 또 때로는 핀잔을 받고 시류에 맞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취급되는 안타까움도 있다.
그러나 나는 두판단중에 오지랖을 이해하고 옹호하고 싶은 것은 세상이 자기중심에 치우쳐 각박해지고 그럴수록 오지랖을 거둬 들이고 자기일에만 치우침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오지랖이 넓다”는 뜻을 표준국어사전은 주제 넘어서 아무일에나 쓸데없이 참견하다.
염치없이 행동하다에 곁들여 치마폭이 스물네폭임에 비유하였다.
오지랖이 지나치다는 평을 받는 친구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한번도 자기이익에 치우침이 없다는 것이고 손해볼 줄 알면서도 상대방의 어려움에 자연스레 참여하거나 필요를 채워주는일에 시간과 체면을 투자하면서까지 동참하는 것이다.
그래서 쓸데없는 일에 지나칠만큼 욕심이라는 내침을 당해도 오히려 그일을 즐기는 것을 보면서 오지랖을 가볍게 비판하는 일은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이 시대의 아픔은 진실이 사라지고 그도 말미암아 믿음 상실된점이라면 오지랖을 인간본연의 순수성에서 이해하고 싶다.
갑으로 분류된 강한편에 강함을 더하기 위한 다가섬을 오지랖이라 부를수 없음을 상기시켜보면 오지랖은 좀 더 많이 넓게 퍼져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뻔히 자신에게 득될것이 없음을 알면서 을의 편에 섬을 주제 넘는 일이라 평가해서도 안될것이며 이일 저일 가리지 않고 쓸데없이 참견한다고 비하해서도 안될 것이다.
치마폭이 스물네폭이니 얼마나 넓게 펼쳐지겠는가. 내앞길도 가름하기 어려운판에 남에 일에 주제 넘을 만큼 참견함에 이기적인 계산이 배제 되었다면 그런 오지랖을 격려해야 할 것이다.
그 친구는 직장을 잃은 친구를 안타까워한 나머지 애써 취직을 청탁하고 그뒤 그 친구가 회사에 손실을 끼쳐 입장 난처하게 되었고 주위에서 오지랖을 떨더니 왜 그렇게 어려움에 처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이제는 그 친구 오지랖을 그쳐야 한다고 했다.
세상은 나만의 세상이 아니요 너와 내가 공존하는 우리의 세상이다.
내 일이 아닌일에 기꺼히 참여하고 이웃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서 펼쳐진 오지랖이라면 거짓과 온갖 회유가 난무하며 자기만을 돌보는 세상에 신선한 감동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노동개혁을 꺼낸이후 정년을 앞둔 한직장인은 중장년 노동자가 눌러 앉아 청년 일자리가 없다하고 그들이 고임금을 챙겨가기 때문에 청년들에게 돌아갈 몫이 적다 하니 요컨대 늙은 노동자는 도둑놈 같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다고 했다.
물론 청년들은 안다 제아버지와 삼촌으 밥그릇이 사라진다고 저희들 밥그릇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국가정책에 오지랖을 동원하라고는 주문할 수 없으나 기껏 국가혁신 정책이라고 떠들어봐야 그 진실과 순수성을 믿지 못하는 세상이 안타깝다.
지난 추석 부모와 자식이 모처럼 둘러 앉은 자리엣 부모는 도둑놈으로, 자식은 바보로 만드는 거짓 말을 버젓이 늘어놓는 세상이다.
청년 일자리 35만개 창출이라는 어엿한 거짓말이 아예 생활화되고 있다. 무관심이 이토록 무섭다는 이야기다. 관심을 가지고 오지랖을 떪이 더 나을거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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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h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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