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을 읽어야 시인이 되느니라
최창일 시인·이미지 평론가·<시화무> 저자
작성 : 2022년 10월 25일(화) 16:03 가+가-

권일송 시인은 그리스도인을 “시편을 노래하는 사람들”이라, 말하곤 했다.
권 시인은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시편에 관하여 기독교인보다 더 깊이를 가지고 시편을 논하곤 했다. 시편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가장 서정 깊은 순결의 찬미라는 의미를 담는다.
시편은 성경의 다른 부분보다 영혼 깊은 곳의 부르짖음과 청원, 감사와 원망, 축복과 저주의 기도로 쓰였다. 권 시인은 언어에 관심이 컸다. “성경의 원어인 히브리어는 시적인 운율을 가진 언어로 봅니다. 그런 면에서 시편은 히브리인에게 노래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말하는 권 시인은 시편을 수차례 차례 읽었으며, 시적 형식을 갖춘 시편의 우월함을 말했다.
권일송 시인은 최민순 시인을 소개했다.
최민순 시인은 신부이며 ‘두메꽃’시를 비롯, 많은 시를 남겼다. 최 시인은 시적 감성도 크지만, 최민순 역 시편이나 문익환 목사의 역이라 할 수 있는 시편은 뛰어난 주옥의 번역이라 일러준다.
권 시인은 최민순 시인과 문익환 목사가 번역한 <공동번역 성경>의 시편은 시인들에게 읽기를 권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 시편>도 추천을 했다. 히틀러 정권에 저항하다 희생한 독일의 본회퍼 목사가 쓴 시편 관련 저술들을 소개하며 시간이 되면 한 권쯤 서가에 두고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 했다. 권 시인은 종교적인 의미의 시편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다. 시인에게 고대 히브리 겨레의 종교 시 모음이 종교인을 떠나서 시인에게 왜 중요한지 알게 될 것이라 했다.
기독교인들은 시편을 통하여 기도하는 법을 알게 되지만 시인에게는 ‘시의 기본’을 알게 하는 중요한 ‘시 교과서’라 소개한다. 시편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내 마음의 온갖 정감들을 들어 올린다면 시인에게는 자연을, 인간을 들어 올리는 비유와 은유를 알게 한다. 시편은 시인에게 시의 경건과 상상을 일러준다. 인생을 위로하고 죄인을 대하는 법을 부드럽게 전해준다.
인간은 한평생을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은혜를 이어받아야 한다. 시편은 그러한 강을 이루고 있다.
시편은 성경 66권의 한 가운데 자리한다. 시편이 기록된 연대는 BC. 15-5세기로 보고 있다. 밝혀진 것 중 연대가 가장 빠른 시는 모세가 쓴 한 편의 시(90편)로 본다.
시편의 150편 가운데 다윗을 비롯한 여러 명이 저자가 있다. 저자가 밝혀진 100편은 다윗(73편), 아삽(12편), 고라 자손 (10편), 솔로몬(2편), 모세(1편), 해만 (1편), 에단 (1편) 등이다. 나머지 50편 가운데도 다윗의 시가 많은 것으로 추정을 한다.
시편은 성경에서도 달걀의 노른자와 같다. 광범위한 시대적 배경과 가장 깊은 신학적 내용은 물론 넓은 독자층을 가졌다.
비 종교인이 시편을 읽기 위해 성경을 산다는 사실이 이를 말한다. 시편에는 국가적인 의미의 시, 역사 시, 왕의 시, 회개 시, 저주 시 등 다양성의 시적 내용을 담고 있다.
시편이 한국에 번역된 시기는 1898년으로 본다. 번역자 피터스 목사는 재정 러시아(오늘날 우크라이나)사람이다. 그는 한국에 온 지 2년이 지나자 한국어에 완전히 능통하게 되었다. 그는 구약 성경이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는 권서(券書) 일을 하면서 틈틈이 그가 히브리어로 애송하던 시편을 한국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권서 인은 매서인 이라고 한다. 쪽 복음으로 전도하는 것을 이른다, 성경 66권이 나오기 전에는 쪽 복음이 먼저 읽히는 경우였다. 피터스 목사가 번역한 성경은 영어 혹은 중국에서 중역한 것이 아닌, 능숙한 히브리어로 원문에서 직접 번역한 것이다. 그 결과 예순두 편의 시편을 번역했다. 1926년 피터스 목사가 구약개혁위원회의 평생 위원으로 위촉을 받고, 통달한 히브리어를 활용한 구약 개역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그 기간은 11년간이 소요되었다. 성경이 히브리어에서 독일어, 일본어, 중국어를 거쳐 한국에 번역되었다. 중요한 것은 피터스 목사가 히브리어로 성경을 번역한 것이 한국의 기독교인에게는 원문의 성경을 보게 된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시편은 한문 번역을 넘어, 다시 히브리어에서 직접 번역되었다는 것은 시편의 운율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시경의 한시를 아무리 잘 번역하였다 하여도 시의 운율은 전혀 느낄 수 없다. 뜻만을 알게 할 뿐이다. 최민순 시인 신부와 문익환 목사께서 번역한 시편을 대하게 된 것은 우리 시인들에게는 말할 것 없이 기독교인들에, 은총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