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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 정반합의 발버둥
강나루 시인·시와사람 편집장
작성 : 2022년 08월 28일(일) 16:46 가+가-
세상은 순환의 원리로 이루어져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운동장 구석 수돗가에서 수돗물을 틀어놓고 땅을 파서 수로를 만들며 놀았던 적이 있다. 땅을 깊고 길게 파고 물을 조금씩 흘리면서 만들어진 진흙을 잔돌로 쌓은 수로 사이사이에 펴 바르며 탄탄하게 만들었다. 어느샌가 또래의 아이들도 붙어서 같이 수로를 만들다 보니 나무뿌리처럼 길고 넓게 수로가 확장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물을 흘려보내도 흙탕물이 넘쳐흐를 뿐이었다.
집 앞 개천에 흐르는 시냇물처럼 맑은 물의 흐름을 볼 수 없었다.
내심 실망하고 있을 때, 지나가던 체육복 차림의 선생님이 ‘아야, 고인물이 빠지게 만들어야 깨끗해지지. 흙장난도 계획성 있게 해야 재미가 있어야!’라며 우산 끝으로 하수구 쪽 흙담을 허물어서 물길을 터주었다. 잠시간 흙탕물이 빠져나가니 정말로 수로에는 맑은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결국 한참 후 다른 선생님께 혼나면서 우리의 수로는 도로 매몰되며 끝나고 말았지만 깊게 기억에 남은 경험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도덕 시간에 정반합을 배울 때 저 수로의 경험이 떠올랐다. 고인 물은 새 물이 밀어내고, 새 물은 다시 뒷물에게 밀려난다. 이 반복되는 밀어냄으로 수로는 건강한 수질을 유지했다. 하지만 일부 소용돌이치며 물이 잘 빠지지 않는 수로는 물이 탁하거나 수로를 빠르게 망가뜨리는 등 어떤 문제를 일으켰다.
고인물이 잘 빠지지 않도록 설계된 수로 시스템이 수로 자체를 망가뜨리는 것이다. 이런 어린 시절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순환이라는 개념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순환은 보조 없이 스스로 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올바른 시스템을 갖추면 더욱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데 사회인으로서 여러 경험을 하면서, 우리 사회는 순환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여러 시민단체를 보면서 그런 편견이 굳건해졌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는 인간을 노지에서 끝없이 생산되는 천연자원인 양 쉽게 다루고 쉽게 죽였다.
그러므로 민주화와 인권보호를 위한 투쟁은 아주 중요하고 무거운 가치였다. 과거 운동가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날 누구나 인권이 아주 큰 가치를 지님을 부정하지 못하고, 민주주의의 열매를 달게 취하고 있다. 민주와 인권이라는 개념이 지식인과 운동가들의 투쟁 구호에서 대중의 보장받는 권리로 확대된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인권팔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매우 부정적인 단어인데, 대부분의 인권단체는 이 인권팔이라는 단어로 비하당하곤 한다. 왜냐하면 대중이 이해하는 인권과 시민단체가 명분 삼는 인권 사이에 부정적인 괴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대의 과제를 해낸 몇몇 인권단체들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 목표를 수정하지 않고 구태의연하게 버티려다 보니 보다 과격해질 수밖에 없는 탓일지도 모른다.
한동안은 시민단체의 인물들을 만나는 일이 잦았다. 지금도 일하면서 만나는 문인 중 여러 문학 활동과 더불어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만나는 그 누구나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는 더할 바 없이 선하고 어울리기 좋아하고 논리와 명분을 중요시한다.
헌데, 단체로서의 그들은 배타적이고 이익을 위해 기꺼이 체면을 버릴 각오를 가지고 있다. 혹은 체면을 위해 원칙을 어기기도 한다.
헤겔이 변증법을 도식화한 결과물이 정반합이라는 세부적인 것은 모르더라도 누구나 정반합이 어떤 것인지는 안다. 서로 모순되는 정과 반의 갈등을 겪으며 정과 반이 모두 퇴출되고 정과 반의 장점을 종합한 합이 등장하고 합은 다시 정이 되어 반과 갈등하는 과정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시민단체 또한 그러해야 했다.
하지만 정이 반을 거부하고 억누르면 반은 따로 떨어져 나와서 작은 정이 되길 반복하다보니 합은 도출되지 않고 오직 정과 정이 대립하는 정만의 사회가 되었다.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고착되면서 정반합의 순환이 망가진, 소용돌이치는 수로는 흙탕물이 요동치며 수로를 망칠 뿐이다.
나는 그 속으로 걸어들어갈 자신이 없어서 뛰쳐나왔다. 들어가서 버틸 자신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내가 될 자신이 없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나는 언제까지고 균형감을 가진 채 예리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다. 고착된 갈등의 무대에 오래도록 서있는 나는 분명 어느 한쪽의 이익 관계에 함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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