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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우정과 애증 사이의 고통
최창일 시인.이미지 문학평론가
작성 : 2022년 08월 23일(화) 16:47 가+가-
이탄(1940~2010) 시인과 최하림(1939~2010) 시인은 동인으로 맺어진 우정의 친구다. 한 주 한 번씩 만들어 온 시(詩)를 들려주고 촌평을 듣는다. 이탄이 만든 시에 최하림은 느낀 점을 가감 없이 평하곤 했다. 듣는 이탄 시인은 당황스러운 적이 많았다고 시(詩) 도반과 대화 중 회상하곤 했다. 만든 시에 아픈 곳을 적나라하게 비평을 했기 때문이다. 심한 평론이 오가고 다시는 보지 않겠다. 붉힌 얼굴로 헤어지곤 했다. 집에 돌아온 이탄은 화를 누른다. 곰곰이 생각하면 최하림 시인의 지적이 옳았다.
이탄은 말없이 다시 약속장소에 나가곤 했다. 최하림 시인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토론의 친구가 되곤 했다.
시인들은 멘토에 의해 발전한다.
동인은 멘토다. 멘토의 조언과 살핌에 성장한다. 간혹 도를 넘어 우정에 금이 가는 경우가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 곳은 늘 이해관계가 있기 마련이다.
박인환(1926~1956)과 동인을 같이 김수영(1921~1968) 시인은 박인환이 세상을 떠난 후에 “나는 인환을 가장 경멸한 한사람이었다. 그처럼 재주가 없고 그처럼 시인으로서 소양이 없고 그처럼 경박하고 그처럼 값싼 유행의 숭배자가 없었기 때문이다”라며 막말을 퍼붓는 예도 있다. 김수영 시인은 신사적이고 지성의 시인으로 평가된다. 그런 시인이 박인환에 격한 말을 한 것은 그들만이 알 일이다.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2016년, 프랑스)은 작가의 우정을 다룬 영화다. 화가 폴 세잔(Paul Cezanne, 1839~1906)과 소설가 에밀 졸라(Emile Zola, 1840~1902)의 우정을 다루었다. 프랑스 남부 엑상프로방스의 중학교 시절부터 둘은 단짝으로 깊은 우정을 쌓아갔다. 청년이 되어 파리로 올라와서도 예술혼을 불태우는 사이로 지냈다. 영화는 두 예술가가 겪는 인생의 흐름을 차분하게 조명한다. 세잔을 대하는 에밀의 태도가 영화의 초점이랄 수도 있다. 소설가로 승승장구하는 에밀은 세잔을 걱정하는 듯하면서도 타인 앞에서는 그를 평가 절하한다. 그러면서 세잔의 자유분방한 성향을 동경하고 그의 천재성에 자신도 모르게 질투하는 애증이 나타난다. 30년이 넘는 우정이 1886년에 발표한 소설 <작품>으로 인해 둘은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된다. 이 자전적 작품에는 화가 클로드와 소설가 상도즈가 등장한다. 이들은 각각 세잔과 졸라 자신을 모델로 삼았다. 문제는 소설에 묘사된 클로드가 화단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는 내용으로 그려진다. 소설에서 세잔을 괴팍하다 못해 광기 어린 실패자로 그린 졸라에게 세잔은 크게 분개하고 친구 관계를 청산하기에 이른다는 영화다.
소설 <작품>을 읽어보면 친구의 결별이 반드시 <작품> 소설 때문만은 아닐 것으로 읽힌다.
오랜 친구 사이지만 평소에 자자란 일들이 쌓여가다가 <소설>이라는 작품이 결별의 이유로 부각 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마치 이혼의 부부처럼이다. 영어의 신조어 ‘프레너머’(frenemy)라는 말이 있다. 친구(frend)와 적(enemy)을 합한 말이다. 이 신조어는 세잔과 졸라의 관계를 설명하기에 적합한 표현 같다.
우정과 경쟁, 애증이 갈린 미묘한 관계가 함축된 것으로 보인다.
작은 균열이 큰 균열로 변해가는 예술가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그려진 영화다. 그렇다고 예술가들 사이에서 우정이 힘들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이 예민한 작가들이기에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청록파 시인 박목월과 조지훈은 다섯 살 차이다. 목월이 다섯 살 위다. 그러나 그들은 친구다.
경주에 있는 목월에 지훈이 어느 봄날 찾는다. 복사꽃이 피는 봄이지만 진눈깨비 뿌리는 괴팍한 봄이었다. 석굴암에 오른 시인은 나무 그늘에서 술을 나눠 마신다.
취기가 오르고 지훈은 추위에 기침한다. 목월은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오한으로 떨고 있는 지훈에게 입혀준다. 외투가 아니라 가슴 데워주는 우정의 가슴 난로다.
그들은 자옥산 기슭에 방 하나를 얻어 그동안 밀려있던 시에 관한 그리고 그들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지훈은 <완화삼> 시를 만들어 목월에게 보낸다. 완화삼의 뜻은 ‘꽃이 소매에 떨어지는 것을 즐겁게 감상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목월은 지훈의 시에 보답하는 뜻으로 <나그네> 시를 만든다. 목월은 지훈에 보내기 위한 나그네를 100번 이상을 손을 보았다.
시성 목월이 많은 시간을 두고 <나그네>에 손을 본 것은 우정에 대한 예의와 정성으로 보인다. 거룩한 우정은 거룩한 시를 남긴다는 하나의 사례다.
목월은 나그네를 만들기 위해 ‘다’의 종결 어미를 사용하지 않는 것에 중점을 두기까지 신경을 썼다. 그들의 우정은 한국 시단의 자랑인 청록파(靑鹿派)로 남고 있다.
청록집 시집은 후학에 시의 교과서처럼 이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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