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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산책하는 것이다
최창일 시인.이미지 문학평론가
작성 : 2022년 08월 16일(화) 16:48 가+가-
20년 전이다. <보리밭>의 작시가 박화목(1924~2005) 시인과 이덕수 시인은 세종문화회관 옆 회전 초밥집을 즐겨 다녔다.
박화목 선생은 맥주 한 컵이 정량이었다. 맥주 한잔에 흥이 넘치면 깊이 있는 시 이야기도 하셨다.
인상적인 것은 시의 세 음절에 관한 말씀이다. 한국말 가운데 아름답게 들리는 말은 대개 세 음절이다. 선생이 작시한 보리밭을 예로 든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돌아보면 아무도 뵈이지 않고/저녁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보리밭의 제목도 그렇지만 ‘사잇길’ ‘부르는’ ‘멈춘다’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귓가에’ ‘아무도’ ‘뵈이지’ ‘저녁놀’ ‘하늘만’ ‘차누나’와 같은 세 음절로 만들어진 노랫말 시라 설명한다. 불과 여섯 행의 짧은 시어지만 열두 개의 세 음절이 들어간 시다. 선생은 보리밭의 대중성을 얻은 것은 한국인이 유난히 세 음절의 미학에 젖어 든다는 것이다.
‘있다’ ‘멈춘다’ ‘들려온다’와 같은 종결 어미는 모두 ‘다’로 끝난다. 현재형이든 과거형이든, 혹은 미래든 글의 종결에 이르면 모두가 ’다다다‘의 기관총 소리를 듣는 것 같다. 시인은 시의 건축에 뼈대라 할 수 있는 말운(末韻)의 의미와 변화에 연구할 수밖에 없다. 한국말은 누구나 쓰다 보면 ‘다’를 벗어 날 수가 없다.
화목 선생 또한 세 개의 행에서 ‘다’로 맺었다. 그러면서 한국말의 ‘다’는 누구나 벗어 날 수 없는 숙명과 같다. 앞으로 시를 계속 쓰는 시인들이라면 이 부분에 연구하면 좋은 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조언했다. ‘다’를 종결로 어미로 사용하지 않고 시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박목월의 ‘나그네’ 는 ‘다’의 종결 어미를 사용하지 않는 대표적인 시로 본다.
시는 다분히 음악성을 지닌다.
보리밭, 사잇길, 부르는, 멈춘다,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귓가에로 이어지는 공간의 이미지는 시의 여유와 깊은 사유를 남겨준다.
한국 사람은 공간의 형태학을 즐긴다. 한국화의 멋은 공간이 주는 여백 미다. 우리가 음악 시간에 만난 ‘그리운 금강산’ ‘성불사’ ‘장안사’와 같은 가곡도 공간의 여백이 곁들여진 시다. 시에서 음이나 이미지를 최종적으로 결정짓는 것은 의미의 깊이며 요소다. 권일송 시인은 시에 있어서 소리가 ’의미의 가락’이라면 그 이미지는 ‘의미의 그림자’인 것이라 했다. 시는 가락과 그림자의 중심을 지나 의미의 심장으로 향한다.
시에서 세 음절의 중요성을 박화목 선생에 듣고, 시(詩) 도반은 ‘시화무’ 시집을 세 음절의 제목을 붙였다. 세 음절의 덕인지, 비교적 독자와 평론가의 집중을 받은 셈이다. 한국현대시인협회 시인상(2019년 42회)을 받기도 했다.
근간에 인기 드라마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도 세 음절이 세 개로 겹쳐진 제목이다.
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김광섭 ‘저녁에’, 이육사 ‘청포도’, 이상 ‘오감도’, 김광균 ‘외인촌’, 윤동주 ‘자화상’, 김동환 ‘웃은 죄’와 같은 시인들의 세 음절의 제목의 시가 독자의 사랑을 받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1972년 평양에서 개최된 역사적인 첫 남북적십자 회담에서 우리 측 이범석 수석대표와 북측 김태희 대표단장이 손을 맞잡고 같이 부른 노래가 라나에로스포의 ‘사랑해’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뒤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의 가사는 세 음절의 대표적인 대중가요다. 거기에 ‘예예예’의 추임새 또한 세 음절의 극치를 보여준다.
사랑해는 60년대 말 대학가에서 불리던 작자 미상의 노래를 라나에로스포가 1971년 1집 앨범에 수록하면서 대중에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동네의 이름도 세 음절이 대다수다. 옥수동, 이문동, 쌍문동, 혜화동, 신설동, 동대문, 남대문, 서대문이 모두 세 음절이다. 대학의 명칭도 긴 명칭을 다수의 대학이 세 음절로 고쳐 부른다.
서울대학교를 서울대, 연세대학교를 연세대, 광운대학교를 광운대로 부른다. 우리나라 사람의 이름은 고려 시대부터 성을 합하여 세 음절로 사용하였다. 음식의 이름도 설렁탕, 추어탕, 갈비탕과 같은 세 음절의 이름이 많다. 상당수 영어의 표기도 한글 세 음절로 고쳐 부르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방한한 낸시 펠로시도 언론은 ‘펠로시’로 부르고 있다.
음절의 미학은 시의 리듬을 살린다. 우리는 가락을 탄다. 노래에서 그루브(groove, 박자)가 있다는 말을 흔히 쓰고 있다. 노래가 박자를 타고 놀 듯 시는 리듬에서 놀아야만 시가 곱고 부드러워진다.
‘보리밭’이나 ‘나그네’의 시는 리듬을 타면서 그 말의 휴지부(休止符), 아름다움을 증폭시킨다. 울림이란 시가 갖는 음운이다. 움직임을 보여주는 시각적 이미지와 부합되어가는 언어건축의 절미다.
시는 읽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서 산책을 하는 것이다. 시는 언어의 정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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