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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민중의 노래
강나루 시인·시와사람 편집장
작성 : 2022년 07월 17일(일) 16:59 가+가-
수년 전, 홍콩에서 송환법에 반대하는 항쟁이 벌어졌고 온 세계가 지켜봤다. 당시 우리나라 언론매체들은 누구의 눈치를 보는 것인지 집회, 시위라고만 애써 점잖게 표현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항쟁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았다. 각종 언론과 인터넷 매체들을 통해 홍콩 시민들의 인터뷰를 듣노라면 유달리 한국의 시선에 호의적인 듯한 모습을 보였고, 항쟁 현장마다 한글로 적힌 “광복홍콩 시대혁명”이라는 그들의 슬로건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왜인지는 그들이 이미 수차례 명백히 밝혔다.
한국의 민주화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주류언론에는 5·18광주항쟁이 유독 언급되지만 유튜브에서 봤던 어떤 인터뷰 영상에서는 4·19와 부마항쟁과 6·10항쟁에서부터 우리조차도 근현대사에 깊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서야 알기 어려운 6·3항쟁과 5·3인천항쟁까지도 줄줄이 언급하는 대학생이 있었다. 그 대학생에게는 우리나라 민주화의 역사가 한 줄기 희망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급박하고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자신들에게 닥쳐올 희생의 미래가 결코 무가치한 것으로 스러져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 말이다.
나는 수년 전『제38주년 5·18민중항쟁기념행사 백서』 출간을 전담했는데, 덕분에 광주전남을 넘어 전국에서 어떻게 5·18을 인식하고 있는지를 행사의 내용과 방식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주로 호남에서는 추모와 기억, 그리고 기록이라는 측면이 강했고, 영남에서는 5·18이 어떤 사건이었는지를 정확하게 알리는 데 주력했고, 수도권에 가까워질수록 부조리에 대한 저항, 불합리에 대한 해방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려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홍콩우산혁명 때,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이라는 곡을 부르곤 했는데, 『레미제라블』의 뮤지컬곡이다. 자유를 주제로 하는 1막의 가사인 점, 그리고 현재 그들이 부르는 「영광이 다시 오길」이라는 또 다른 곡에서 ‘솟아올라 침묵을 뚫고 울리는 함성을 외쳐/ 바란다, 여기에 자유가 돌아오기를’이라고 호소한다는 것이 바로 홍콩시민이 바라는 것이 과거나 지금이나 자유라는 점을 명확히 알 수 있는 근거이다.
약 2,200년 전 중국은 제자백가의 서책을 불사르고 유생들을 죽여서 역사와 문화를 말살하려고 시도했었다. 분서갱유다. 약 삼백오십 년 전 똑같은 시도가 무려 반세기 동안 다시 일어났다. 문자의 옥이다. 약 오십 년 전에도 있었다. 문화대혁명이다. 유사 이래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고 탄압한 유일한 사례가 모두 중국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중국에서 또다시 자유로운 도시의 자유를 빼앗으려 시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땅에서는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
6·25 이후 우리의 삶은 두 갈래 길이었다. 자유, 경제. 국가라는 집단의 입장에서는 수십 년간 반복된 독재자의 등장에 저항하여 자유와 그 수단인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항쟁, 더 이상 국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무력이라는 측면에서의 경제 성장. 개인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독재자에게 미래를 강탈당하지 않기 위한 자유의 쟁취를 위한 투쟁,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기 위한 경제적 성공.
이 두 갈래 길은 흔히 알려진 DNA 모형과 같이 서로 만나지 않으면서도 촘촘히 연결되어 같은 목표를 지향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개인의 자유가 침해받지 않으며 삶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미래이다. 한없이 자유롭더라도 삶의 목적을 발견하고 성취할 토양이 마련되지 않은 사회라면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반대로 경제적으로 아무리 풍요롭더라도 내 삶에 자유가 없다면 어떠한 것도 성취하지 못하고 사회의 부속으로 소모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좌충우돌의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는 있으나 착실히 자유를 쟁취했고 경제적으로도 대단한 성취를 해냈다. 다만 성숙해지기를 기다릴 뿐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 징조로 도처에서 개인들이 국가에 필요한 바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했고, 국가는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여러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정치에 대한 실망이 더이상 환멸과 체념으로 수렴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직접 해내겠다고 나서는 배경에는 부모님들과 부모님들의 부모님들이 일구어낸 자유와 경제가 존재한다.
저 홍콩의 역사를 보고서 연세대학교 대나무숲에 누군가가 이런 글을 썼다. “인간은 현명하다. 그래서 가망이 있는 싸움인지 아닌지를 쉽게 안다. 인간은 어리석다. 그래서 가망이 없는 싸움임을 알면서도 죽으러 나간다. 인간은 고결하다. 그래서 가망이 없는 싸움에서 결국 승리한다.”
이 글을 읽으며 자유는 인간의 이음동의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싸우고 지고 다시 싸워서 지고 또다시 싸워 지고 말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여러 번 일부의 자유들을 쟁취해냈고 어디선가는 여전히 새로운 자유 혹은 잃어버린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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