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심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이창용 前 순천대학교 외래교수
작성 : 2022년 07월 04일(월) 17:02 가+가-

성경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야고보서1:15)라는 말씀이 있다.
최근 10살의 모 초등학생의 체험학습 신청과 일가족 3명이 주검으로 발견된 사건은 정말 끔찍하면서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온 나라가 충격에 휩싸였다.
그들의 사망원인은 명확하진 않지만 사업실패와 채무 때문이 아닌가 하고 추정하고 있다.
그들의 일그러진 생명관에 대해 우리 모두가 경고를 받아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어 교훈적인 이야기들을 모아 마음에 새기는 계기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
최근 가상화폐 루나로 인하여 하루아침에 가진 돈을 모두 날리고 빈털터리가 된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는 욕심이라는 단어가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사회를 꿰뚫어 보는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욕심의 사전적인 의미는 ‘어떠한 것을 정도에 지나지게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되어 있다.
최근 더더욱 걱정이 되는 것은 요즘 들어 부쩍 살기 어려워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가난을 숙명처럼 여기고 힘들어도 견디고 고생하며 살아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반면에 처음부터 가난한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며 근검, 절약, 성실로 차근차근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자활과 자립정신이 바탕이 되어 한 단계 한 단계 가난을 이겨 나감으로써 좀 더 나은, 좀 더 부유하게 삶의 수준을 상승시켜 가는 자족과 보람이라는 덕목을 잘 갖추며 지혜롭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일확천금이란 과욕으로 떼돈을 벌어 과시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근면, 성실하게 돈을 모으기보다는 투전판에 끼어들어 노름으로 가산을 탕진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경우 이곳저곳에서 급전(急錢)을 차용하는 것은 물론 무리한 투자도 서슴지 않아 실패의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어 결국 눈덩이처럼 커진 빚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아 왔다.
또한 우리 은행 직원의 600억 원대의 횡령 사건이나 새마을금고 여러 지점에서 수십억 원 등 금융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과감한 횡령사건이 우리를 씁쓸하게 하고 있다.
그들은 지능적인 수법으로 너무나 쉽게 남의 것을 훔쳐서 자기 것으로 만든다. 그들에 비하면 차라리 은행이나 금방 털이를 한 복면강도들의 죄는 속된 말로 ‘새 발의 피다.’ 그들은 복면강도들 보다 지능적이고 악랄하다.
오랜 기간 연구하며 지속적으로 도둑질하는 수법이 사람들을 경악하게 한다. 좀 더 편하게 좀 더 쉽게 좀 더 많이 야금야금 훔친 대도(大盜)들이다.
배가 고파서 빵을 훔친 죄로 옥에 갇혀 징역형을 선고받은 장발장처럼 생계형 범죄와 비교하면 금융권의 횡령사건은 종신형을 다섯 번쯤 받아야 마땅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욕심이 앞설 경우 결코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진리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경계의 교훈은 수도 없이 많다.
톨스토이의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에 가난한 농부 파홈이 등장한다.
자기 땅을 갖는 것이 소망이던 파홈에게 마을 촌장이 “당신이 하루 동안 돌아다닌 땅을 일천 루블만 받고 모두 주겠다. 단, 해 지기 전에 출발점으로 돌아와야 한다.” 농부는 해가 뜨자마자 출발했다.
땅은 비옥했다.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갈수록 더 좋은 땅이 나와 돌아서지 못한다. 어느덧 해가 기울고 농부는 지칠 대로 지쳤지만 힘을 다해 달렸다. 마침내 출발지로 돌아온 그는 지쳐서 쓰러져 죽고 말았다. 농부에게 필요한 땅은 결국 무덤 자리뿐이었다. 지나친 욕심이 결국 파흠을 죽음으로 몰았다.
성경은 우리를 철저하게 교훈하고 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결국 욕심이 죽음에 이르는 주범이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예리코를 점령하고 베텔 동쪽의 아이를 치면서 대패하게 된 이스라엘이 주님의 궤 앞에서 저녁때까지 엎드려서 “차라리 요르단 강 건너편에 사는 것으로 만족할걸…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영문도 모르고 떠들어대자. 주님께서 “내게 바칠 완전 봉헌물을 가로챈 자가 있어서 내가 그리 만들었으니 그자를 가려내어 처벌하라.”라고 하신다.
이에 여호수아는 지파별로, 씨족별로, 집안별로 , 장정별로 하나하나 가려내니 아칸이란 자가 잡혀 나왔다.
“제가 전리품 가운데서 좋은 겉옷 한 벌과 은 이백 세켈, 쉰 세켈의 무게가 나가는 금덩이 한 개를 탐이 나서 제 천막 안 땅속에 은을 밑에 깔고 숨겼습니다.” 고하니 그것들과 더불어 그의 아들딸, 소 나귀 양 떼 천막과 그에게 딸린 모든 것을 아코르 골짜기로 끌고 가 돌을 던져, 불에 태워 없애버렸다.
그런 후에야 주님께선 아이 땅을 이스라엘에게 넘겨주셨다. 고 한다.
견물생심이라… 내일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오늘 눈앞의 것에 현혹되어 순간의 선택이 죽음으로 이끌고 마는 모습이 좋은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돈이 생명보다 귀할 수는 없다.
죽을 각오로 살아라고 충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