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으면 알아주지 않는 시대
강나루 시인·시와사람 편집장
작성 : 2022년 07월 03일(일) 16:52 가+가-

집을 리모델링하면서 축 늘어진 동축케이블을 없애달라고 했다.
유선전화도 없앴다. 이제는 인터넷 선 하나면 전화선도 동축케이블도 없어도 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90년대, 어른들은 TV를 바보상자라 하였다. 선생님들도 바보상자라 하였다. 부모님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TV는 일방적으로 정형화·획일화·단순화된 정보를 들이밀어서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 단서를 추론하고 근거를 가공하는 고등사고가 불필요하므로 훈련이 전혀 안 된다는 이유였다. 그러므로 상상력을 끊임없이 발휘해야 하는 책을 많이 읽고 다양하게 읽으라 권하였고, 권유에 따라 책을 많이 읽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정보의 바다에서 살고 있다. 바닷물은 담수로 가공하지 않고서는 사람이 섭취할 수 없다. 정보 또한 신뢰할만한 근거를 갖춘 쓸만한 정보로 가공해야만 정보로써 사용할 수 있으니 정보의 바다라는 비유는 대단히 통찰력 있는 표현이라 할만하다. 게다가 스마트폰을 잘 때도 손에서 떼어놓지 않아야 하는 시대가 된 탓에,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다. 모든 사람이 연결되었으므로 잘 때도 다른 사람과 떨어져 홀로 고독할 수가 없다.
TV를 바보상자라 부르던 내 어린 시절의 어른 세대들도 스마트폰은 손에서 쉽사리 떼어놓질 못하고 유튜브를 보거나 뉴스를 보거나 카카오톡을 한다. 불과 20여 년 전처럼 일방적으로 제한적으로 제공된 정보 안에서 판단해야 하는 시대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정보 가운데 진실을 찾아내야 하는 시대에 사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어린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나’를 드러내는 데 거침이 없다는 느낌이 든다. 나의 정보를 숨기고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SNS를 포함한 수많은 경로로 스스로를 알리고 홍보하는데 열을 올린다. 사소한 일상도 ‘나’를 브랜드화하기 위한 장치로 포장하여 공개한다. 브이로그나 사진 사이에 자연스러운 척 직장, 차 키, 명품가방 등을 드러내어 자랑하기도 한다. 각기 드러냄을 통해서 노리는 바가 다르겠지만,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지향하는지를 적극적으로 말하고 있다.
수년 전, 같이 일하던 네 살 어린 동생이 식당 TV에 나오는 초코파이 광고를 보다가 문득 말했다. “말도 않고 바라보기만 해도 알면 싸움밖에 안날텐데. 형, 생각해봐요. 절에서 도 닦는 스님들이나 이심전심이지, 우리는 계속 회의해도 끝이 안 나서 점심 먹고 또 하잖아요?”
나는 평소 초코파이 광고를 보면서 초코파이는 ‘과자’라는 명제 앞에 나눠 먹는 ‘정(情)’이 있는 과자라는 이미지를 부여한 것이 참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홍보문구에서 ‘말하지 않고도 알면 싸움이 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신선했다. 게다가 긴 시간 회의를 통해서 서로 의견을 나누었음에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말하지 않고서도 서로 마음을 알 수 있으면 싸움만 남는다는 주장이 대단히 현학적으로 느껴졌기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느냐고 물었더니, 같이 보지 않았느냐고 되물어왔다.
같은 회의의 모습과 광고를 보고서도 이렇듯 말하지 않고서는 서로 무슨 생각에 어떻게 이르렀는지를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언어가 발전하고 사회가 발전하여 수많은 협의도구들이 등장했으리라 생각하니 어린 친구들이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끝없이 말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밤, 아파트 관리실에서 안내방송을 했다. 집 어디에서도 스피커를 보지 못했는데 방송이 흘러나와 깜짝 놀랬는데, 도배할 때, 스피커를 덮어버렸기 때문에 스피커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꼭 벽이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웃었다. 갈수록 새로워지는 이 시대는 정보가 너무나도 많아서, 직접 정확하게 말해야만 올바르고 오해 없이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