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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미함이 있는 지도자를 꿈꾸며
최창일 시인.이미지 문학평론가
작성 : 2022년 06월 28일(화) 16:47 가+가-
무협지는 장풍을 얼마나 실감 나게 일으키느냐에 독자를 휘감는다. 그중에 손바닥 장풍으로 상대를 통쾌하게 날리는 묘술은 절정이다.
바야흐로, 21세기 무협지의 장풍은 옛 이다. 여의도 정치인으로 살아가는 데에는 장풍, 아니 입으로 바람을 일으키는 ‘입 풍’ 이 왔다.
과거를 묻지 마라, 여의도엔 역대급 입 풍 선수들이 총집합됐다.
신출귀몰 입 풍 전성시대다.
선수들 이름은 호명하지 말자.
하나같이 역대급 선수들이 아닌가. 그야말로 신무기, 입 풍으로 바람을 실감 나게 일으키느냐에 살아남는다. 그들에게는 각자의 장기도 있다. 특히 법을 전문으로 한 법률가의 입 풍은 법전이라는 거대 힘을 발휘, 이전의 입 풍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을 등에 업은 유튜버들은 대량의 무기인 스피커를 동원하여 입 풍의 면모를 보여준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 입 풍의 위력을 보이기도 한다.
전직 대통령을 이웃에 둔 촌노들은 잠을 설치며 입 풍 후유증에 병원 신세를 지는 형국이다. 입 풍은 잘만 하면 돈벌이도 된다. 수십억을 꿰찬 입 풍 유튜버도 존재한다. 입 풍은 소설 속이 아니라 현실이다. 한때는 정치를 단수로 표현됐다. 3김 시절이다.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을 지칭할 때 정치 9단이라 했다. 그들 정치력에는 누구도 부인 하지 않는다. 무협지가 보여주는 손바닥의 장풍보다 정치의 도를 가진 장풍 자들이었다. 그들은 아련한 전설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정치는 상황 속의 존재로 펼쳐진다. 동시에 상황을 넘어서는 가치를 추구하면서 펼쳐가는 것이다. 물론 모든 정치가 상황을 넘어서는 가치를 추구한다면 선정의 정치다. 시대가 변하듯 정치는 무모, 무개념의 정치로 변하고 있다.
인욕을 개념의 주축으로 펼치면서 물욕과 무개념 논리 상황이 펼쳐진다. 정치의 9할은 언어다.
언어로 소통하고 교감을 한다.
문제는 그 언어들이 궁극의 가치실현과는 멀다는 것이다.
조선의 정치사를 올라올라, 들어가 보면 정치철학이 숨 쉰다. 좌의정을 지낸 우암 송시열은 의(義)와 직(直)으로 정치를 했다. 공자, 맹자, 주자 세 성인이 서로 주고받은 마음의 법이 오직 ‘직(直)’ 한 글자이니 이를 마음에 새기라고 했다.
물론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의와 직을 논하는 것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 등 엉뚱하고 뚱딴지같은 유토피아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흔히 공자 맹자 왈을 하면 현실 부합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대는 그만큼 변했기 때문이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공자의 가르침에 선뜻 동의할 사람은 많지 않다.
여의도 입 풍자들은 코웃음 칠 것이다. 하지만 조선 시대를 움직인 정치인들은 선인의 언어에 귀 기울였다. 우리의 정치도 조선 시대와 그 맥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서구의 정치인과 지식인들도 ‘음미함이 없는 정치는 정치가 아니라 한다.’ 이와 비슷한 말은 소크라테스 선배도 말했다. “음미함이 없는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라고 일찍이 외쳤다.
지도자의 말 같지 않은 말이 여과 없이 사용되고 비판도 없는 시대를 맞았다. 커피도 여과지에 걸러서 마실 때 커피 향이 살아난다.
그 여과지를 얼마나 잘 사용하느냐가 커피 맛과 향의 관건이다.
둥근 사각형이라고 말하는 대통령이 있다면 그를 멋있다, 할 것 같은 언론의 지형이다.
대통령실에서 발표한 윤석렬 대통령 행보에 대한 홍보문이 의아스러움을 넘어 마음이 아프다.
대통령의 상시적 ‘도어스테이핑’이 총 12회라는 자찬이다. 무슨 뜻인가 귀를 기울여도 생소하다.
인터넷을 뒤져도 없다. 옥스퍼드사전을 펴봐도 없다. 여과 없이 기사에 인용하는 기자의 태도도 문제다. 시도반은 이를 두고 저렴한 기사라 칭했다. 불과 10여 일 전에는 영어로 “내셔널 메모리얼 파크라고 하면 멋이 있는데 국립추모공원이라고 하면 멋이 없다.”라는 말에 밭에서 잠자던 파들도 파하고 웃었단다.
정치께나 한다는 선배 정치인들은 국어사전을 끼고 살았다는 소문이 있다. 김종필 전 총리가 국어사전을 펼치는 것이 취미라는 말을 두고 한 듯하다. 한글을 사랑하는 것도 소통의 기본이다.
알아듣지 못하는 둥근 사각형 같은 영어를 사용하며 영어범람을 만들지 말자.
법전을 덮고 국어사전을 펼치며 음미함이 있는 소통의 지도자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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