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지킬 때 주어지는 최대한의 자유
강나루 시인·시와사람 편집장
작성 : 2022년 06월 26일(일) 16:44 가+가-

몇 년 전, 주차 문제로 이웃과 얼굴을 붉힌 일이 있었다. 면허를 취득한 이래 주차 문제로 이렇게 골머리를 썩히기는 처음이었다.
대로에 이어진 조금 넓은 골목길에 있는 집으로 이사한 이후로 늘상 집 앞에는 길 좌우로 차가 주차되어있고, 그 때문에 빌라 주차장에 차를 넣고 빼기가 불편했었다. 하루 내 아파트 주변을 관리해주는 경비분들의 노고가 새삼스럽게 다시 느끼게 되는 상황이었다.
물건은 쓰고 나면 원래 있던 자리에 두는 것이 당연하고, 차는 주차장에 대어두는 것이 마땅하고, 여의치 않게 갓길에 주차하게 될 경우 통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 위치에 두고 반드시 연락처를 남기는 것을 상식으로 여기던 내게는 모든 비상식이 밀집된 곳이 바로 집 앞 골목이었다.
남의 집 주차장 입구에 차를 대어놓고는 차를 비켜달라는 정중한 전화에 오히려 차를 뺄 수 있는데 왜 귀찮게 하느냐는 적반하장은 이웃 간의 예의라는 것이 무엇인지 혼란스럽게 했고 이후 몇 주간 차를 바꿔가며 고의로 입구를 틀어막는 비상식적이고 몰염치한 행동은 내게 민원이라는 행동을 강요했다.
결국 여러 번의 민원제기를 통해 그 사람의 차를 주차장 입구에서 몰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겪은 공무원들의 남 탓과 변명은 민원인을 지치게 만들어서 일을 끝내 하지 않고 지나가겠다는 나태함의 끝을 내게 보여줬다.
나는 내게 주어진 자유가 매우 소중한 만큼, 가해지는 제한 또한 엄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현대사회는 투쟁을 통해 그러한 방향으로 자유를 쟁취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사회적 합의, 법을 통해 현실적으로 누릴 수 있는 범위를 제한하고 있고, 사회의 결속을 저해하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를 보장하는 모양새이다. 결과적으로는 과연 위법행위를 했는지를 관찰하고 처벌이라는 강제성을 행사하는 국가권력이라는 존재가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 자유의 범위를 제한하는 것이다. 인간은 획일화된 공산품이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사회현상이나 시스템이 등장하면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빠르게 허점을 파고들어 이용하려는 사람 또한 존재한다. 다양한 인물군상은 어느 시대에나 여러 형태로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국가라는 시스템은 늘 경계하고 관리감독, 또는 유지보수하기 위한 노력을 바쁘게 이어나가야만 한다. 하지만 현실은 안타깝게도 시스템이 오래 유지되면 관행이라는 타성이 붙어 노력을 둔하게 만들고 결국 보완하지 못한 허점이 늘어나 국가는 붕괴하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만큼 개개인에게 가해지는 제한 또한 엄격해야한다는 것이다. 불법적인 갓길주차를 행정인력의 부족이라는 편의적 이유로 방치하면 ‘여기까지는 괜찮겠지’의 범위가 점점 늘어나고 법을 지키는 사람이 바보취급을 당하게 된다.
우리는 최근에 IT혁명을 거치면서 이러한 현상에 한번 패배하고, 또 극복한 적이 있다. 소프트웨어를 불법으로 복제한 CD를 염가에 사고팔고, 인터넷에서 불법으로 받아 사용하고, 만화, 영화, 소설을 해적판으로 즐기면서, 제 가격 주고 정품 사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시대를 겪었다.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제작사와 창작자들이 피해를 감수하지 못하고 떠나면서 영구적인 손실로 남은 IT혁명의 어두운 역사였다. 뒤늦게 이러한 무단카피를 불법으로 확정하고 감시하는 체제를 구축하면서 IT혁명기의 혼란상을 극복했지만, 이때 얻은 교훈을 다른 영역으로 응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우리나라는 매일같이 여기저기에서 재개발이라는 토목사업이 기획되고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늘상 구시대의 도시계획 때문에 주차공간이 부족하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주거지역 인근의 불법주차를 묵인하고 있다고 변명한다. 결국은 재개발하며 가치가 오를 것이 명백한 보배로운 토지를 ‘공용주차장 따위’로 낭비하기 싫다는 자본주의적 이기심을 적당히 옹호하는 것일 뿐이다.
뉴스에서 온갖 종류의 엽기적이고 당혹스러운 사상 사건을 접하고 있다. 분노조절장애가 만연하고 우울증과 공황장애는 양식있는 현대인의 필수품이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이다. 나의 이득을 위해 남을 해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갈수록 치밀해지는 것 또한 느껴진다. 나의 권리와 자유는 교육받고 여기저기서 들어서 잘 알면서 타인의 권리와 자유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공교육은 사교육이 못하는 것을 해내야 한다. 인간을 실용성 있는 경제 도구로서 기르기보다 사회시스템을 존속·발전시킬 창의적이고 소통 가능한, 민주적 소양을 갖춘 인격자를 길러내기 위한 교육으로 변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최대한 자유롭기 위해서는 나와 너의 경계를 명확히 인지하고 침범하지 않아야 한다. 선을 명확히 알고, 선 내에서 최대한의 자유를 꽉꽉 눌러서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가 쉽게 계급화되고 자유가 필요 이상으로 억압되는 이유는 외부의 위협이 실재하고 사회가 충분히 보호받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국가권력에 과도하게 힘을 위임하기 때문이다. 상호 간의 자유를 최대한 침해하지 않고, 침해받지 않으리라는 상호 간의 믿음이 싹틀 때야말로 최대한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며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데 가책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사회는 자유의 가치가 그 정도로 하찮은 사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