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이 없는 세계, 약동하는 생명력
강나루 시인·시와사람 편집장
작성 : 2022년 05월 29일(일) 16:59 가+가-

코로나19 판데믹 직후, 지구에서는 백사장에서 수많은 새끼거북이 알을 깨고 세상에 나왔다.
산양은 더 많은 풀을 찾아 어제보다 조금 더 내려왔고 판다와 사자 등 수많은 동물은 봄답게 새 생명을 잉태했다. 혹독한 겨울을 극복하고 다시 일 년을 시작한 것이다. 자이언트 판다 한 쌍이 10년 만에 짝짓기를 했다고 뉴스거리가 되었다. 동물원에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짝짓기를 했다고 한다.
백사장에 거북이 알을 낳은 것 또한 백사장에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산양은 사람과 차가 다니지 않는 마을로 더 내려와 잔디를 뜯고 정원수를 뜯어먹었다.
이상한 것 없다고 여길법한 자연의 일면들인데도 여러 매체에서 뉴스로서 다뤄졌다. 사실은 산업화 이후 인간이 지구의 방방곡곡을 들쑤시며 다니게 되어 당연하지 않은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제작한 「인류멸망보고서」라는 연작다큐멘터리의 여러 주제 가운데 ‘어느 날 갑자기 지구상에서 인간이 모두 사라진다면?’이라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런데 마침 다큐멘터리의 예상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으니 인간이 지구의 건강을 해치는 주범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누구도 인간종이 자연의 일부이자 지구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지구에서 태어난 모든 동식물의 공통적인 흔적을 공유하고 있으며 지구를 벗어나서는 정상적으로 살 수 없다는 과학적 근거만을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고 살아있는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과 자비심을 강조하는 우리의 전통적인 세계관에 근거를 둔 이야기 또한 아니다. 선천적으로 이기적인 우리의 내면의 이야기이다.
인류사는 전쟁으로 점철되어있다고 한다. 그러나 세계대전 이후로 ‘선진국’으로 일컫는 국가들끼리 군대와 군대가 맞붙는 전쟁이 사라졌다고 여겼지만 근래에는 또다시 유럽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인종적이든 문화적이든 아주 가까운 족속 간의 전쟁이니 6·25에 비할만한 비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진국가들이 전쟁을 멈춘 배경은 이기적인 욕망이 냉정하게 셈을 한 결과이다.
저들과 전쟁해서 얻는 이득보다 잃는 손해가 더욱 크다고. 현대사회는 인간을 경제적 가치로 판단한다. 산업화는 노동자를 전문가가 아니라 공장의 부속으로 전락시켰는데, 그 결과 노동자라는 부류의 가치는 밑도 끝도 없이 폭락하고 말았었다. 인간뿐만이 아니다. 희소한 동물, 동물의 부산물, 광물과 자원, 심지어 시간과 사상마저도 가치가 매겨진다. 우리가 선천적으로 이기적이고 이해타산적이라는 사례증명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창궐하기 시작하던 지난 2020년 초, 전 세계는 죽는 소리를 냈다. 사람의 왕래가 끊기며 경제교류가 거의 멈춰서였다. 이 시대를 두고 당시 질병관리본부 부본부장이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이제 다시 오지 않습니다. 이제는 완전히 다른 세상입니다.’라며 ‘뉴 노멀’의 시대를 선언했다. 그리고 그사이 지구는 19세기 산업화 이전의 마땅히 자연스러운 자연을 복원해나가고 있었으니 참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뉴 노멀이라는 말이 참 무섭게 느껴졌지만 곧 익숙해졌다. 익숙한 삶의 형태를 깨고 새로운 형태로 바꿔야한다는 것인데, 사람 간의 거리를 두고, 신체를 깨끗하게 유지하고 아플 때는 반드시 쉬도록 한다는 뉴 노멀의 기본요소는 딱히 새로운 것이 없어 보여 익숙해졌다.
사람은 마땅히 타자의 사적 공간을 배려하고, 타인과 스스로에 대한 예의로서 몸을 항시 정갈히 유지하고, 아플 때 쉬게 배려해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저 그동안 우리가 배려받지 못했고, 행동에 더욱 유의해줄 것을 당부하는 것일 뿐이다.
지구, 자연에게도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 태평양에 여러 쓰레기 섬이 있다고 한다. 세계적인 산불이 빈번하다고 한다. 여러 전문가들이 폭염과 가뭄 등 이상기후를 매번 경고하고 있다. 이제는 선을 완전히 넘었다고. 지금 필요햔 ‘뉴 노멀’은 자연을 배려하고, 자연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아픔을 치유해주는 ‘당연한 것’이다.
산업화의 시대에 노동자들은 기계를 때려 부쉈다. 노동자들이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이유가 노동자의 가치를 떨어뜨린 기계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그러한 기계가 더욱 많아지고 더욱 정밀해지고 더욱 영리해져서 인간이 설 자리는 점차 사라지고만 있다.
그러한 와중에 발생한 코로나19 판데믹은 어떻게 본다면 구시대의 ‘노멀’을 밀어내고 ‘뉴 노멀’을 불러오는 도화선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세계는 좀 더 느려지고 자연을 치유해야 한다.
바다거북의 산란기에는 해변을 비우고 차를 줄이고 동물원 동물들에게도 사생활이 있음을 확실히 인지해야 한다.
세계가 공장을 멈춘 지난 2년, 하늘이 얼마나 쾌청했는지 생각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