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건너편으로 가는 삶, 노 시인과의 대화
최창일 시인.이미지 문학평론가
작성 : 2022년 05월 10일(화) 17:00 가+가-

나이 차이가 있지만 노 시인은 학인을 시반(詩伴. 시의 길을 동행)이라 부른다. 간밤 늦은 전화다.
“지하가 갔어.” 김지하 시인과 동향인 노 시인은 지하라 부르는 것은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라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해 12월에는 이성교 시인이 가더니만 올해 1월 10일에는 신규호 시인도 갔어.”
시인은 최근, 왕십리 돼지갈빗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기형도 이야기도 진지하게 했었다. “기형도가 죽기 전, 그를 시인으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거야. 그가 죽기 전, 기 시인이 준비한 시집이 나오게 되면서였지. 문학평론가로 크게 명성을 올린 김현이 해설을 하면서야. 김현은 기형도의 죽음을 신문의 1단 기사로 접하면서 상당한 충격을 받은 모양이야. 기 시인의 해설의 삼 할이 죽음에 대하여 깊은 애도로 보여요. 29세로 생을 떠난 젊은이에 대한 애상(哀想)치곤 깊은 인상으로 일갈했다고 봐.
아마 김현은 기형도와는 일면식도 없었다지. 난 말이야 김현의 해설을 보면 김현 스스로가 죽음에 대하여 응시하는 시간이었나 싶어. 그가 저 건너로 가지전(죽음) 마지막 몇 해 동안, 죽음에의 예감에 집착한 자료들이 있어요. 왜냐면 김현도 40대의 나이로 저 건너로 이사를 했어. 그러니까 기형도가 죽고 난 그다음 해일 가야.” 시인의 이야긴 듣고 보니, 김지하 시인의 죽음을 통하여 내면의 속을 털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김지하 시인의 이야기다.
노 시인은 김지하 시인을 돌아보면 여러 생각이 든다고 한다.
김지하는 1964년 6월 ‘서울대학교 6·3 한 일 굴욕 회담반대 학생총연합회’에서 조사를 쓰면서 그의 인생은 뒤틀린 생의 길에 들어섰다. 지하는 1966년 7년여 만에 졸업하고 시 전문문예지에 1969년 ‘황톳길’ ‘비’ 등 다섯 편으로 등단을 한다. 등 단 후 사상계에 권력층의 부정부패를 풍자한 담시(譚詩) ‘오적’을 발표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오적이란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 등 다섯 가지 유형으로 개발독재 시대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이들을 을사오적에 빗대 비판한 정치 시사이자 풍자시였다.
이 시로 사상계 발행인과 편집인이 구속됐고 잡지는 정간됐다.
박정희 정권은 이 시가 “북괴의 선전 활동에 동조”한 것이라며 반공법 위반 혐의로 김지하 시인 역시 구속됐다. 국내의 활발한 구명 운동으로 한 달 만에 석방됐다.
1970년 12월 첫 시집 <황토>를 출간했다. 이후에도 고인은 민주화운동 및 저항시 발표에 전념했다. 1975년 발표한 ‘타는 목마름으로’는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담은 1970년대의 기념비적 저항시로 꼽힌다. 김 시인은 민주화운동으로 도피 생활을 거듭하던 중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체포돼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사형이 구형되자 장 폴 사르트르, 놈 촘스키 등 세계적 석학들이 석방을 요구하는 호소문에 서명하는 등 활발한 구명운동이 일었다. 1975년 2월 형집행정지 처분으로 약 10개월 만에 출옥했지만, 출소 후 인혁당 사건이 조작되었음을 폭로하는 칼럼을 발표했고, 다시 체포돼 수감됐다.
결국, 약 7년간 수감생활을 한끝에 1980년 1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7년 가까이 옥살이를 하는 동안 아시아·아프리카 작가 회의는 ‘제삼 세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로터스 상 특별상을 김 시인에게 수여했다. 1984년 사면 복권 후 그의 저작들도 해금되면서 1970년대 작품들이 다시 간행됐다.
노 시인은 다시 개인적인 소회를 말한다. “지하가 이해가 되지 않는 곳이 있어요. 그토록 군사정권에 핍박을 받았어요. 사형을 받고 무기로 감형을 받았지만 자신처럼 민주화 운동을 하며 목숨 던지는 젊은이들에게 ‘죽음의 굿 판‘을 치우라는 비판을 했어요. 그리고는 2012년 대선에서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공개 지지하기도 했지. 이런저런 지하의 삶들이 석연치 않은 구석들이 많지 않나 싶어.”
시인은 질문과 같은 말을 흐리면서 끝을 맺었다.
시인과 왕십리 그날 이후, 생각했다. 노 시인도 삶도 끝을 인식한듯하다. 삶의 끄트머리에 와 와있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근작, 시인의 시를 보면 시간과의 숨소리들이 담겨있다. 삶의 궁극적 근원으로 서의 ‘욕망’의 문제 위에서 가지를 치고 있다는 것, 또한 의미심장하다.
파도처럼 살다간 김지하 시인도 그렇게 건너편으로 갔다. 차라리 따듯한 시간에 떠난 그가
아름다운 파도처럼 보인다. 어차피 인생, 저 건너편으로 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