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진화, 예술의 진화
강나루 시인·시와사람 편집장
작성 : 2022년 04월 03일(일) 16:42 가+가-

오랫동안 ‘현실’이라는 말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이 현실이라는 말 앞에 몇 가지 접두사가 붙기 시작했다. ‘가상현실’, ‘증강현실’이 그것이다. 가상현실이란 컴퓨터 메모리상에 구축한 가상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고, 증강현실은 익히 알고 있는 현실에 전자정보를 추가적으로 덧붙인 것을 말하는데, 이 모두 IT기술의 발달을 통해 최근에 실용성이 입증된 것들이다.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은 대부분의 환경에서 여러 사람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활용된다.
현실의 모든 물리법칙이 적용된 가상세계에서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물리적 한계로 어려운 과학실험을 반복하고, 색맹이 세계를 더 다채로운 색으로 구분해서 볼 수 있도록 시야를 증강해주고, 여러 경험의 접근성을 개선시켜준다.
인터넷이 처음 확산되기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은 국가도 종교도 인종도 성별도 없는 완전평등한 민주주의의 장이 펼쳐질 토양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 인터넷은 국가, 종교, 인종, 성별의 전쟁이 확전되고 심화되는 끝없는 전쟁터가 되어있다. 혹자는 인터넷의 익명성이 이러한 차별적 범죄를 양산한다며 실명제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내 견해는 다르다.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이 수많은 사람에게 충분히 현실적인 무게를 체감시키지 못하는 놀이터에 불과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현실이었다면 한번 더 생각해봤을 말을 쉽게 내뱉고 퍼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은 경험을 나눈다. 같은 경험을 백명의 사람이 백한 가지로 인지하는 것이 인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누군가는 실망하고, 누군가는 쾌감을 느끼고, 누군가는 감독의 전작을 찾아보고, 누군가는 주연배우의 전작을 찾아본다. 홀로 조용히 게임을 즐기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고, 여러 사람과 경쟁하고 협력하며 파티처럼 즐기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다. 시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 소설을 읽는 사람이 있고, 분석적으로 읽으며 마치 머릿 속에 시뮬레이션하듯 소설을 읽는 독자도 있다.
이미 이루어진 역사를 두고 매 시대마다 평가가 달라지는 것 또한 여러 개인들이 변해왔기 때문이다. 현대는 그저 그 개인을 제대로 발견한 첫 번째 시대일 뿐이다.
내가 어린 시절 보던 영화나 드라마들에서는 사랑이라는 것이 참 비밀스러웠다. 오직 둘만의 것이지만 모두가 비밀스럽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것 같다. 두 사람의 사랑을 주변은 모두가 알고 있고 사랑을 방해하려는 사람, 사랑을 관전하며 답답해하거나 대신 행복해하는 사람, 지지하는 사람, 두 사람의 사랑이 공공연해지고 모두의 관심을 끄는 사건이 된 것 같다.
고작 십 수 년 만에 세상이 변한 것이다. 사랑이라는 개인사적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더 이상 소중히 감추어야할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과시할만한 자랑거리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질 수 있는 소모품처럼 여겨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극에서도 남성의 역할과 여성의 역할이 허물어져서 호들갑떠는 남성과 진중한 여성이 더 이상 낯선 그림은 아니게 되었다. 최소한 성별의 선입견은 상당히 사라졌고, 성별의 고전적인 틀에서 벗어나는 다양한 시도들이 인정받을 토양이 마련된 것이다.
요즘 정치인들이나 경제계에서는 규제 철폐를 자주 입에 담는다.
하지만 실제로 규제와 같았던 인식이 하나 둘 허물어져가는 곳은 우리 사회 그 자체, 그리고 예술의 영역이다. 건방진 말일 수도 있겠으나, 고상한 시, 소설, 수필, 클래식음악, 한국화, 서양화, 데생, 건축의 가치에 비해 폄하되던, 서브컬쳐로 묶이는 부류의 문화들이 점차 서브컬쳐라는 이름표를 떼고 예술의 범주로 넘어오고 있다.
어쩌면 예술의 범주가 확장해가고 그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현실은 점점 그 범주를 넓혀가고 있다. 예술 또한 그 범주를 넓혀가고 있다. 현실은 실존하는 세계뿐만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보조해주는 정보와 실존하지 않으나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세계 또한 현실의 범주에 들어서고 있다. 예술은 과거 소설과 영화, 만화가 그러했듯이 여러 서브컬쳐가 예술의 울타리 내로 들어서고 있다. 중앙화는 여전히 무너지지 않고 있으나 점차 분산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정보는 보편적인 것이 되어간다.
다만 그것을 창작하고 향유할 수 있는 개인들은 여전히 과거에 있다. 집단의 논리에 여전히 일희일비하고 세밀하게 구분하여 차별하던 관습을 버리려 하지 않는다.
우리의 전 세대가 그러했던 것을 비판하며 자라왔으면서 말이다.
세계가 확장하고 있음에도 인간은 불변하는 모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