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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大餘)의 시와 대여로 살다간 연암 박지원
최창일 시인.이미지 문학평론가
작성 : 2022년 03월 29일(화) 16:46 가+가-
왜 같은 언어를 사용하여도 시인의 언어는 대여(大餘)와 영감(靈感)이 있을까. 대여란 여백을 말한다. 수묵화(水墨畵)를 치는 화가는 여백을 이용한다. 멀리서 보면 여백은 그림의 부분이다. 시가 수묵화와 일맥상통 한 점이다.
시인에게는 삶의 기상조건에 민감성이 있다. 자연의 나무가 태양, 구름, 바람, 흙. 그늘 등에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는 것과 유사하다.
산문과 시가 다른 점은 시에서 언어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시는 언어의 울림과 어떤 리듬에 실려있는 언어의 집, 고리다. 산문은 생각이다. 산문을 지배하는 생각들은 이해한다는 것이다. 한 편의 시를 이해한다는 것은, 시 속에 솟아나는 영감에 휩싸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문의 덕성이 명확성이라면, 시의 덕성은 감동과 암시적 환기력에 있다.
“시인은 영감을 받는 자가 아니라 주는 자다”라 폴 엘뤼아르(Paul Eluad. 1895~1952.프랑스 시인)의 말을 인식하면 이해가 빠르다.
오늘 대여의 시를 감상하는 행운을 만났다. 윤평현 시인의 시 한 편이 대여의 의미를 새기게 한다.
시인의 2013년 11월의 어느 가을날을 잠시 들여다보자. 시인은 민경욱 시인이 <너희들이 있어 풍성한 노을>이라는 시집의 출판기념회에 다녀왔다. 그리고 ‘시인과 이별 사이’라는 깊은 영감의 시를 만든다.
‘다정한 이 보내고/ 홀로 슬픔 앞에 서면/ 그리움은 산문이 되고/ 눈물은 시가 된다// 한 무더기 슬픔도/ 마음을 더하면 다시 길이 된다/길은 어디에도 있다/가지 않으면 어디에도 없다//눈부시도록 푸른 하늘이지만/ 누군가는 슬픈 하늘/눈물이 나도/울면서 울지 않는 법을 배운다//꿋꿋이 가야겠다 다짐하지만/ 아직/ 기쁨으로 가득한 시집은/ 이 세상에 없다//’
제목에서 이별의 표현에 ‘이별’의 시가 아닐까?, 단순한 해석으로 오류를 범할 뻔했다.
시인의 이별은 실상 이별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여의 절정이 도사리고 있다.
‘꿋꿋이 가야겠다. 다짐하지만 <아직 기쁨으로 가득한 시집은 이 세상에 없다>’는 명징함으로 마무리한다. <시인과 이별 사이>를 이렇게 전개하리라 상상이 가지 않았다. ‘아직 기쁨으로 가득한 시집은 이 세상에 없다’라는 것은 ‘기쁨의 시집이 나오기 전에는 이별할 수 없다’라는 것이다. 반전을 보여주는 시의 직유의 면모다.
서끌은 길거나 짧은 건축의 부재다. 전라도에서는 ‘서까래’의 표준어를 서끌이라는 방언으로 편하게 사용된다. 서끌은 가늘지만 건축가의 설계에 의하여, 건축 부재가 되며 고급 한옥을 만드는 재료다. 시의 언어 하나하나는 서끌과 다르지 않다. 시인이 어떻게 언어를 세우고 앉히느냐에 따라 세미한 언어는 큰 기둥이 되거나 우람한 건축으로 탈바꿈되는 것이다.
시인의 시에는 한옥의 서끌 부재들이 질서 정연하게 깔려있다.
한옥을 예로 든 것은 소박한 소재들이 고급 언어의 집을 짓고 있으며 시인의 시적 내밀은 한국적, 이라는 점을 강조함이다.
시인은 자기로부터 소외된 독자를 깨우고 있다. 언어의 천재라는 열하일기(熱河日記)의 박지원(1737~1805) 작가는 250년 전의 사람이다. 그는 우울증을 겪었다.
우울증은 자기로부터의 소외라는 것이 의학적 소견이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낯선 존재로 인식하면서 우울증은 오게 된다. 천재로 지칭 받는 연암은 영조와 정조 왕의 시대의 산물인 노론의 명문가 출신이다. 과거 시험장(지금의 창경궁)을 갔다가 질서 없이 부패한 과거의 현상을 목격하고 정치의 세계를 회의(懷疑)한다. 천재는 우울증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 연암이 우울증에 걸린 상황을 보면서 우울증이란 시대와는 무관한 병으로 짐작된다.
중요한 것은 그가 우울증에서 벗어났던 처방이 흥미롭다. 치료는 ‘글쓰기와 친구들과의 토론, 여행’이었다. 지금의 종로 3가 파고다 공원 근처에는 250년 전에도 하층 서민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박지원은 그곳의 서민들과 친하게 지냈다. 간혹 막걸릿잔도 기울이며 문학에 관하여 들려주고 토론하였다. 당시의 시대상으로서는 양반이 서민과 호형호제 하기는 그리 편한 건 아니었다.
박지원의 태도는 일회성이 아니었다. 그들은 박지원의 태도에 친근감을 느낀다. 노후엔 박지원이 정치적인 소외로 어려움을 겪자 젊었을 때의 친구들이 박지원의 생활을 돕는 우정이 나타나기도 했다. 나이 들어 중풍에 든 연암은 친구들을 불러 옆에서 시끌벅적하게 떠들게 하였다.
그리고 눈을 감으며 별이 되었다. 많은 작가가 있지만, 천재적인 호칭을 붙이기에 손색이 없는 작가라면 박지원을 올린다. 연암은 양반의 우월주의를 벗어나 서민과의 소통하는 생활의 큰 대여를 펼치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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