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문민용 논설위원
작성 : 2022년 03월 23일(수) 16:59 가+가-

1940년대 미국의 한 법정에서 있던 일이다. 노트르담 미식축구팀의 센터 포지션을 맡고 있는 프랭크 사만스키라고 하는 축구 선수가 어떤 민사 소송에 증인으로 법정에 서게 됐다. 판사는 그에게 질문했다. “당신은 노트르담 미식축구 팀의 선수입니까? “예, 그렇습니다.”라고 사만스키가 대답하자 판사는 약간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다시 질문했다. “그래요? 그럼 당신은 스스로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춘 센터라고 생각합니까?” 사만스키는 잠시 생각하더니 당당하게 말했다. “역대 센터들 중 가장 뛰어난 센터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대답으로 인해 그곳에 있던 방청객들이 놀랐고, 특히 그가 속한 노트르담 팀 감독은 더 놀랐다.
왜냐하면 그 선수는 평소에는 아주 겸손하여 언제나 스스로를 낮추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재판이 끝난 뒤 감독이 이 선수를 데리고 나가면서 물었다. “자네, 평소에는 그렇지 않더니 오늘은 어떻게 ‘내가 최고다’하고 당당하게 말한 건가?” 그러자 사만스키가 대답했다. “저는 재판장 앞에서 손을 들고 진실 외에는 말하지 않겠다고 선서를 했습니다. 그래서 진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라틴어로 진실이라는 단어는 시네 세라(sine cera)이다. 이 말은 해석해 보자면 ‘햇빛에 시험하다’라는 뜻으로 즉 ‘밀칠 하지 않은’이라는 뜻이다. 고대 도자기 산업이 발달하던 시기가 있었다. 값싼 도자기는 두껍게 만들기 때문에 불에 구워낼 때에 금이 잘 가지 않지만 값비싼 도자기는 얇게 만들고 가볍게 선명한 색깔을 넣기 때문에 불에 구워내기 전이나 구워낸 후에 금이 가는 일이 많았다. 정직한 도공은 이런 도자기는 깨어 버리지만 많은 도공들이 이렇게 금이 간 도자기를 색소에 딱딱한 밀초를 섞어 갈라진 틈에 메꾸어 유약을 발라 상품으로 내어놓았다.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 도자기를 햇빛에 비추어 보면 밀초를 메꾼 자국이 드러나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자국이 없이 깨끗하게 구워진 훌륭한 도자기에는 ‘sine cera’라는 글을 새겼다. 그 말이 ‘진실’이라는 단어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오래전 시라쿠스의 왕이 있었다. 그는 허영심이 많고 교만한 독재자였다. 그는 스스로를 위대한 시인이라고 생각하여 늘 시를 쓰고 낭독하곤 했다. 사람들은 독재자인 그가 두려워 거짓으로 그의 시를 칭송했지만 왕은 그 칭송을 즐기고 만족해했다. 자만해질 대로 자만해진 당대에 가장 학식이 높았던 철학자 필락시노스를 궁으로 불렀다. 당연히 다른 이들처럼 자신의 시를 칭송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시를 낭송했지만 필락시노스는 솔직하게 시가 형편없다고 비평했다. 그의 비평에 대노한 왕은 그를 지하 감옥에 가두었다. 하지만 훌륭하고 지혜로운 필락시노스를 향한 탄원이 쇄도하자 왕은 만찬 자리에서 다시 그를 불렀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자신이 쓴 시를 낭송한 다음 그에게 물었다. “나의 시에 대한 당신의 의견을 말해 보시오.” 왕의 말에 그는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을 끌고 온 병사들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나를 다시 지하 감옥으로 데려가게나!” 그는 끝까지 거짓을 말하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명품을 보면 진품과 가품이 쉽게 구분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가공의 섬세함의 차이가 매우 크다. 하지만 가품을 쓰는 사람은 본인이 쫓고자 했던 명품 그 본연의 가치보다 허황된 자신의 욕망에 치우치게 되면서 가품을 통해 거짓되게 자신을 치장하며 인위적인 삶에 빠져버린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깨끗한 재료와 정직한 조리법으로 요리하는 것이 아니라 조미료나 향료 맛에 혀가 길들여지면 그 재료 본연의 맛과 가치는 사라지고 자극에만 끌리게 된다. 거짓된 것에 이끌려 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거짓이 가득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진실한 마음과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바보 같고 어리숙하게 느껴지곤 한다. 진실은 나약하고, 진실은 느리고, 진실은 더딘 것만 같다. 하지만 그건 우리의 오해로 진실의 가치가 상실되어 버린 것이다.
진실이 가진 힘은 고귀하고 놀랍다. 진실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진실은 어두움에 갇혔던 현실을 바꾼다. 우리의 마음에 잠자고 있던 진실과 순수함을 따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