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왜 읽어야 하는가?
최창일 시인.이미지 문학평론가
작성 : 2022년 03월 15일(화) 16:59 가+가-

시를 왜 쓰며, 시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러한 물음에 속 시원하게 답을 한 사람은 없습니다.
내로라하는 원로 시인과 석학도 모르겠다는 것이 답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미 시를 가까이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20세기의 최대의 역사적 대 사건은 휴대전화기의 탄생을 말합니다. 20세기가 아니라 인류 역사상, 최대의 변화를 가져온 사건으로 분류가 됩니다.
휴대전화를 만든 사람은 스티브 잡스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연구하면서 생각의 벽이 나타나, 막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시집을 펼치곤 했습니다.
시를 읽으며 정신의 휴식을 취하며 상상력을 키웠습니다. 이 같은 사례를 든 것은 신이 천지를 창조한 이후 가장 놀라운 일을 만든 과학자가 시를 가까이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분석자는 천지창조 다음으로 휴대전화기 발명을 평가하기도 합니다.
시를 대표적으로 표현된 책은 성경의 시편을 듭니다. 또 다른 책은 공자가 그의 제자들과 선학들이 지은 시를 편집한 시경(詩經)을 듭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시학도 있습니다. 세 종류의 책이 시집의 원서(原書)와 같다고 봅니다.
시학은 아리스토텔레스가 2400년 전 펴냈습니다. 당시 그리스인의 삶에 뿌리고 두고 만들어진 시 전문서입니다.
시편은 성경 66권의 한 가운데입니다. 시편의 기록 역사는 3천 년 전입니다. 마치 달걀의 노른자와 같이 66권의 중심에 있습니다.
시편 중에서도 알려지고 사랑을 받는 부분은 23편입니다. 여러분이 들었음 직한, 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니…. 로 시작되는 노래가 23편입니다. 성경 학자들은 시편을 성경의 요약이라 합니다.
시를 공부하는 시인들은 기독교를 믿던, 안 믿던 시편을 읽어야 함을 알고 있습니다. 시편은 시가 갖는 은유, 직유, 비유의 보고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열중으로 시를 공부하려는 학인들에 해당하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또 다른 시경입니다. 시경은 305편의 시가 들어 있습니다.
시경이 만들어진 시기는 2700년 전의 일입니다. 공자는 나라의 부름으로 법무부 장관직을 5개월여 하였습니다.
정치 세계가 오늘이나 그때도 그랬던 모양입니다. 중상모략으로 아주 짧은 장관직을 수행하고 정계를 떠나야 했습니다. 공자는 정치에 회의를 느끼고 중국의 방방곡곡을 다니며 선학이 쓴 시를 모으며 시 공부를 시작합니다.
공자는 시를 공부하며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정리를 합니다.
1. 시는 마음의 감정을 일으켜 나와 타자에게 감동을 만든다. 마음으로 느낀 것을 표출한다.
2. 시는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게 해준다. (혜안)
3. 시는 사회적인 동물이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세상과 소통하며 타락에 이르지 않게 한다. 요즘 말로 IQ(지능지수)보다 EQ(감성지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성공한 사람은 감성지수가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통계는 말한다.
4. 시는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원망도 직접 하지 말고 풍자로 해야 한다. 풍자는 상대를 기분이 나쁘지 않게 한다.
5. 시는 가까이는 부모를 모시게 하고 멀리는 임금을 섬기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공자는 인간의 정체성을 깨달으려면 새, 짐승, 풀,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시는 서정성을 중요시합니다.
자연을 통하여 은유와 비유로 감동을 만들어 갑니다. 시경에는 100여 종의 나무 이름이 등장합니다, 나무를 통하여 자연의 원리를 알게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식물은 200여 종이 넘습니다.
성경과 시경만이 유일하게 나무와 식물이 많이 등장합니다. 식물도감을 제외하면 유일합니다.
중국에는 ‘시회’(詩會)가 있습니다. 시회의 탄생은 역사가 깊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시회가 들어왔습니다. 오늘날의 백일장을 하는 것은 중국 시회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궁중에서 정초에 사대문 안의 백성에게 백일장을 열었습니다. 장원한 한시(漢詩)입니다. 이와 같은 토론은 유럽에도 있었습니다. ‘살롱’(Salon)이라는 것입니다. 살롱은 이탈리아어서 유래된 프랑스어로 응접실이라는 의미입니다. 17세기 프랑스 상류 사회의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이 읽은 책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것입니다.
오늘 한국에 살롱이라는 이름의 술집은 유럽의 살롱문화에서 유래된 것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오용된 일들입니다.
시를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시는 타자가 생각하지 않는 방향에서 만들어진 언어의 집입니다. 내면의 소리입니다.
‘구름이 흘러간다’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자고 가는 저 구름아’(월탄 박종화의 글)로 표현하는 것이 시적 구사입니다.
시는 주관적 이기 보다는 객관적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듯이 주관적이란 나의 생각일 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았던 시는 김소월의 ‘진달래’였습니다.
최근 설문은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애송시로 말합니다. 아마도 윤동주에 관한 재발견으로 보입니다.
근간에 고인이 되신 이어령 작가는 무신론자의 대표였습니다. 그가 말년에 들어 시편을 읽는 기회가 되고 시집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시대는 혐오에 지친 사회로 표현합니다. 혐오는 혐오하는 사람들이 연대를 만듭니다.
연대의 혐오 후에 오는 것은 외상 후 스트레스를 가져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는 전쟁을 치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정신적 병입니다.
오늘 이 같은 현상에서 벗어나는 길은 시를 읽어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