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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극(劇)의 시인 김수영
최창일 시인.문화이미지심리학자
작성 : 2021년 11월 30일(화) 16:43 가+가-
비록 한 권의 시집을 남겼지만 후학의 관심을 받는 시인은 김수영이다.
김수영 시인이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김수영 시인과 더불어 김종삼, 조병화, 박태진 시인, 소설가로 이병주, 장용학, 유주현, 김광식도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작가마다 행사들이 있다. 유독 눈여겨 보이는 행사가 김수영 시인이다. 김수영 시인은 1959년에 펴낸 <달나라의 장난>한 권의 시집이 전부다. 그가 남긴 시는 어림, 180여 편, 산문 100여 편, 한편의 단편소설이 전부다. 그렇지만 김수영 시인은 특별한 시인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김수영 시인 관련 석. 박사 논문이 330여 편에 달한다. 180수의 시, 한 권의 시집을 가진 시인에게 학문적으로 접근한 후학이 많다는 것은 특별함이다.
시집이 많아서 좋은 시인만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한 시인은 김규동 시인이다. 스승 김기림 시인이 시집이 3권이 전부인데 자신의 시집이 배가 더 많은 6권을 냈다며 스승에 부끄럽다 했다. 김규동 시인은 북한에서 오로지 김기림 시인을 스승으로 모시고자 월남한 한 시인으로도 특별하다.
윤동주 시인도 그렇다 사후에 한 권의 시집. 70여 편의 시가 전부다. 윤동주 시인도 작품 수에 비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해방 후 국민에게 좋아하는 시인을 물으면 김소월이었다. 근간에 들어 윤동주 시인이다. 대학생들에게 좋아하는 시인을 설문하면 단연 윤동주 시인이 앞지른다. 시인들은 윤동주 문학상을 좋아한다. 한 번쯤 받고 싶은 문학상이라 한다.
윤동주 시인이 처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을 알기에 그럴 것이다.
김수영 시인의 시는 솔직히 어렵다는 말을 한다. 그렇지만 김수영 시인처럼 시를 쓰고 싶다는 문창과 학생들은 많다. 김수영의 시는 달나라를 탐사하듯 읽어야 한다. 어렵기 때문이다. 미묘하다.
어렵다는 것은 난해하다는 것도 포함이 된다. 유종호 교수는 김수영의 시는 어렵지만 현란하고 다채롭다. 서정주 시인을 ‘전통미의 시인’, 권일송 시인은 ‘저항시의 본보기며 풍류의 미감’을 만드는 시인, 김소월을 들어 ‘이별의 정한’ 백석은 ’북방 정서‘라 평가한다.
윤동주 시인이 시로서 ‘정신세계를 완성’한 시인이라면 김수영 시인을 ‘자유와 사랑’의 시인이라고 평한다. 권일송 시인은 김수영 시인을 들어 지성의 기수라 했다.
마포의 노상에서 안타까운 생을 마친 김수영 시인을 들어 번쩍이는 천재가 갔다며 아쉬워했다.
김수영 시의 ‘풀’이 노래하듯 그의 시의 주제들은 일상의 소소함이 확대경으로 보인다. 거미, 이, 하루살이, 풍뎅이, 자, 사진, 토끼도 있고 영사판, 부부싸움, 양계일, 집안에서 잡동사니로 사용하는 물건들이 시에 등장한다.
김소월 시인이 김억을 스승으로 두었듯 대다 수 시인들은 스승이 있다. 김수영은 제자도 스승도 없었다. 김수영은 독학으로 시를 공부했다. 요즘이야 시의 압축미를 쫓는다고 하지만 김수영의 30~40행의 시를 읽다 보면 시의 길을 잃고 만다. 김수영은 우리 조상들의 상상력으로 꾸며진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을 골라서 그의 산문집에 소개하기도 했다. “<요강> <곰보> <애꾸> <못 낳는> <모든><좋다><이> <-이>다. 이 중에서 요강, 곰보, 애꾸를 생각해 보면 이런 낱말들은 사회학적으로 사멸되어 가는 말이다”라고 우리말이 줄어드는 것에 대하여 사색한 흔적도 있다.
그렇다. 낱말이란 요강처럼 사용도 줄어들거나 곰보나 애꾸도 의학상으로 발생 도가 줄어드는 것을 예측하는 것은 그의 사소함이 흥미롭다.
김수영 시인은 6·25 때 민간인으로 포로가 되었다. 4·19가 나고 1년 후 시인은 아직도 믿을 수 없다고 좌 불 했다. 아니나 다를까 5·16 이후의 좌절은 견고한 시를 낳게 했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라” 대표 시 ‘풀’은 오늘도 광화문에서 눕고 일어서고 있다.
김수영 시인의 시집에 나오는 인물 사진은 수십 권의 시집을 대변한다. 학인(學人)은 김수영의 마른 얼굴을 보면 그의 180편의 시와 100여 편의 산문이 쉽게 읽힌다고 한다. 김수영의 사진은 사회의 거부가 언어의 거부로 이어진다. 그가 비록 남루한 러닝셔츠의 차림이지만 표현은 유명 모델 못지않다. 김수영의 사진은 차라리 명화로 해두자. 자유의 시인, 자기검열(檢閱)을 몰랐던 직선의 시인이다. 50이 되도록 갓 스물의 청청한 젊음을 가졌던 지식인 김수영. 그는 가장 쉽게 서슴없이 가장 치열한 양심의 극(劇)으로 살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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