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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죽음
김요한 시인·목사
작성 : 2021년 11월 25일(목) 16:39 가+가-
전두환이 죽었다. 그는 분명 전직 대통령이였는데 그가 죽은 다음 어느 곳에서도 전직대통령이라는 직함을 들을 수도 없다.
흔한 소천, 서거, 영면도 들을 수가 없다.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화장한 후 휴전선 북한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가루로 뿌려질 것이란다. 죽기 전에 그곳에 뿌려져 통일을 기원하고자 한다는 유언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한 인간의 이런 죽음도 있구나!
탄식을 거듭거듭 되뇌이면서도 가슴 속 깊은 응어리는 풀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한이 서려 ‘잘 죽었다’는 원수 갚음조차 인색할 수 밖에 없는 죽음앞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5·18쿠데타의 한 주역인 노태우 전대통령이 세상을 뜬지 28일만이다.
그래도 그는 반대 여론이 드셋지만 국가장을 치뤘고 묘역 정도는 마련되었다. 전두환이 피의 학살을 자행한 5·18민주항쟁은 40년전, 그리고 90세에 전두환은 자택 화장실에서 죽었다.
죽은 뒤 그의 부인께 발견되었다니 마지막 임종도 지켜본 사람이 없다.
그가 광주학살을 자행하던 때 그는 50세의 청춘이었다. 독재자의 말로라고는 하지만 사후에 그에게 고인이라는 명칭조차도 어색하고 이름 끝에 붙일 ‘씨’자도 사라졌다.
경제단체가 조문은 물론 조의를 표하는 것도 거둬들였다. 흡사 미친 듯이 마을에 날뛰며 농작물을 헤치고 닥치는대로 사람을 불어대다 포수의 총에 쓰러진 들개의 최후 모습을 본듯하다. 거두절미 ‘전두환이 축었다’는 표현에 아예 예의 같은 것은 들먹여지지도 않는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언론을 통폐합하고 말 한마디로 천하를 호령하던 각하의 최후가 너무나도 비참하다.
이는 두고두고 역사의 교훈으로 되새겨 후세에 전할 산 교훈이다.
지도자도 지도자가 되려는 자도 그토록 소리 높여 외쳐대는 공정과 정의가 권력과 탐욕을 감춘 채 국민과 국가를 위할 것처럼 선량함을 가장하여 정권 탈취를 꿈꾸는 자가 이 땅에 다시는 나타나서는 안되겠다.
무엇보다 국민은 두 눈을 부릅뜨고 ‘사즉생 생즉사’를 외치며 나라를 지킨 이순신 장군을 떠올려야겠다. 아직도 전직 두대통령은 이거의 몸이 되어 있다. 국민이 그들을 선택하고, 국민이 그들을 감옥으로 몰아 넣었다.
어느 전자제품 회사 광고 카피가 생각이 난다. ‘한 번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고 100여일 남은 내년 대선의 선택이야 말로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여야는 물론 청와대조차 조의를 표하지 않았고 대선 후보로 나선 네 사람도 한결같이 조문을 접었다.
그러나 그들 중에 은근히 전두환이 휘두른 독재권력을 찬양하고 사모하는 사람이 발톱을 감추고 있는 것도 국민들은 똑바로 판단해야 한다.
어제가 옛날이다. 어떤 경우에도 권력의 사유화는 철퇴를 맞을 것이다.
행여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자리가 대통령 통치권자의 자리라는 인식을 가진 정파는 이 나라에서 사라져 마땅하고 새롭게 맞이할 새시대의 국내외 질서에 적응하지 못할 정치인들은 스스로 물러남이 나라와 후손의 내일을 위해 마땅하다.
필자는 평소 ‘세상은 변해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의 변화는 창조보다 어렵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조중동으로 불리는 일부 언론과 구태의연한 정치 세력이 아직도 상존하는 현실에서 ‘민주주의는 깨어난 시민의 조직이 된 힘이다’고 노무현 대통령의 비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나라의 5%내외 수구 세력이 여지껏 나라를 어지럽혀 왔고 기득권으로 그들의 세상을 누리고자하는 각종 획책 또한 여전한 현실에서 주권자인 국민(깨시민) 한사람 한사람이 시류에 휩쓸림없이 냉정에 냉정을 거듭하며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전두환이 죽었다’는 슬플 표현이 이 나라에서 사라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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