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의 용광로와 비빔밥의 문화
강나루 시인·시와사람 편집장
작성 : 2021년 10월 31일(일) 16:43 가+가-

흔히들 미국을 두고 인종의 용광로라고 칭한다. 익히 알다시피 미국이라는 국가는 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의 이민자, 살아남은 인디언, 아프리카 각지에서 끌려온 여러 부족, 혼란을 피해 이민한 아시아의 여러 인종 등 전 세계에서 모여든 전 세계 인종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며 이러한 역사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미국을 왜 인종의 ‘용광로’라고 부르는 것일까에 대해서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나는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러한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그렇게들 부르고, 또 위와 같이 설명하기에 그러려니 납득했던 것이다. 왜 인종의 용광로인 것일까? 용광로란 불순한 원석을 녹이고 걸러내고 다시 녹이는 과정을 반복해서 순수한 형태의 주괴로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이다. 인종의 용광로라는 말은 기실 수많은 문화를 수용하는 다문화의 상징이라기보다는 모든 문화를 ‘미국적’인 것으로 정제하는 문화선별의 상징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어떤 주제로 무엇을 하든 미국에서 만들었다는 것이 티가 나게 되는 ‘헐리우드식 블록버스터’와 같이 말이다.
인종의 용광로 하면 또 만만찮은 국가가 또 있는데 바로 중국이다. 현대의 중국을 생각하면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중국이 점령했거나 중국을 점령했던 여러 나라, 민족들은 하나같이 그 흔적만을 미세하게 남기고 중국화하고 말았다.
중국과 미국이 어떻게 인종의 용광로가 될 수 있었는가를 생각해본다면 누구나 비슷한 답을 내놓을 것이다. 거대하고 강력한 경제력을 가진 대상에 침입하기 위해서는 같은 사고를 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그 수단은 곧 문화에 있다. 그러므로 문화적 동질감을 획득하기 위해 내 문화를 그들의 것으로 갈아치우거나 맞게 고치게 됐을 것이라고. 즉 경제력 혹은 권력이 문화를 입장권으로 만든 것이다.
우리 문화의 정수라고 한다면 복잡한 지형에 의한 다양한 식재를 활용하는 폭넓은 식문화를 들 수 있겠다. 그 중에서도 비빔밥은 여러 번 세계화를 시도했을 정도로 대중적인 음식이다. 전주에는 전주비빔밥이 있다. 닭갈비를 먹고 나면 남은 음식에 밥을 비벼먹고 샤브샤브를 먹고서도 밥을 비벼먹는게 우리 문화이다. 소스의 맛을 흰 밥이 대표하면서도 제각각의 식재가 제 할 말을 하는 것이 마치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면서도 지역의 특색이 강한 우리나라를 그대로 대변하는 것 같다. 일견 다양한 듯 보이면서도 실은 하나로 융화되고 마는 용광로와 뒤섞여서 하나가 되었으면서도 자기주장이 확실한 비빔밥은 비슷한듯 하면서도 전혀 다른 문화이다.
지난해 코로나 판데믹의 추이를 지켜보던 일각에서 문화산업보다 생산업이 더 낫다는 주장을 하는 것을 보았다. 앞서 이야기하였듯 문화강국들은 경제력이 문화를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에 일견 타당한 주장처럼 들린다.
그럼에도 문화의 저력을 태어난 이래 한결같이 듣고 자란 입장에서는 약간 거북한 주장이다. 바로 한결같이 문화의 저력을 듣고 자랐다는 것이 핵심이다. 문화가 곧 정체성이다.
과거 중국대륙을 정복했던 수많은 민족들은 중국대륙이라는 재산을 소화하기 위해 중국의 관제와 복식, 문화를 수용하여 중국인이 되었다. 정복자는 사라지고 중국인이 남았다. 경제력이 문화를 입장권으로 만들었다는 위의 명제는 본질을 꿰뚫어보지 못하고 현상의 겉표면만을 봤을 뿐인 틀린 주장이다. 실은 문화가 모든 것을 먹어치우고 있는 것이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