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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최창일 시인.문화이미지심리학자
작성 : 2021년 10월 05일(화) 16:34 가+가-
어느덧 시월이다. 사람은 자연적으로 단 한 번 태어나고 죽지만 인문학적으로는 여러 번 태어나고 죽는다. 이것은 문학에서 두드러진다. 지난날 읽었던 문학 속의 등장인물들은 살아나서 나와 가을 길을 걷기도 한다.
레미 구르몽(1859~1915)의 작품 ‘낙엽’은 대표적으로 가을의 주인공이다.
시몬, 나무 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이 쓸쓸하다./ 낙엽은 버림 받고 땅 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해 질 무렵 낙엽 모양은 쓸쓸하다./
바람에 흩어진 낙엽은 상냥히 외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웃는다./ 낙엽은 날개 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니./ 가까이 오라, 밤이 오고 바람이 분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의 ‘낙엽’ 시는 수많은 젊은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시다. 가을이면 여지없이 ‘별이 빛나는 밤’이면 한 번쯤 낭독되는 시다. 구르몽은 문학을 전공한 문학도는 아니었다. 프랑스 캉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했다. 졸업 후 구르몽은 국립도서관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틈틈이 폭넓은 교양을 쌓는 시간이 주어진다. 1891년 <메르퀴르 드 프랑스 Mercure de France)라는 잡지에 비애국적인 기사를 발표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다. 그가 당한 해고는 불만족의 시간을 만든다.
시간은 가을. 구르몽은 쓸쓸하고 허한 발걸음으로 공원을 걷는다. 아무런 생각을 만들지 않고 발길은 가을의 낙엽을 밟는다. 한참을 걷다가 공원 근처의 카페에 커피를 마신다.
구르몽은 자신도 모르게 접신이 된다. 시인들은 흔히 이런 시간을 누군가가 나에게 온다고 한다. 인문학적으로 말하면 영감(靈感)이 찾아온 것이다.
구르몽은 아주 느리게 그리고 호흡을 낮게 하고 커피를 마신다. 그의 오래된 몽블랑 만년필은
구르몽이 만든 낙엽을 가장 먼저 읽게 된다. 사람보다 구르몽의 만년필이 낙엽을 쓰면서 먼저 읽게 된 것이다. 어찌 보면 구르몽의 만년필은 멋진 주인을 만난 것이다.
구르몽은 시를 만들며 모든 진실은 상대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구르몽이 잡지에 그의 사상적 글이 투고되며 해직이 되면서 ‘낙엽’이라는 시의 씨앗이 발아를 시작하였을 것이다. 사람의 운명은 계기가 있다. 문학의 작품도 다르지 않다.
구르몽이 남긴 시보다는 수필이 많다. 그가 남긴 50권의 수필집이 증거물이다. 내용은 18세기 회의주의 철학자들과 비교될 만큼의 광범위하고 논조도 비슷하다. 수필들은 당시의 사건과 인물에 대하여 무관하지 않다. 문학과 철학에 대한 수필인 <문학산책>, <철학산책>을 비롯한 문체, 언어, 미학에 접근한 글들의 연구서들은 심미(審美)한 그의 세계를 보게 한다.
구르몽의 작품들은 지나치게 지성적이다. 그가 법학을 공부하고 국립도서관의 일자리는 구르몽의 정신 사상에 큰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누구에게나 허한 것들은 있기 마련이다. 구르몽이 공원의 낙엽을 밟는 시간은 순결한 시간으로 수많은 문학의 작품과 영화에 영감을 불러주었다.
대표적으로 그의 문학의 태도는 T. S. 엘리엇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구르몽의 동생인 장드 구르몽(1877~1928)도 (메르퀴르 드 프랑스)에 기고하였으며 몇 편의 시와 <황금양털>(1908)이라는 소설을 펴게 하는 영향을 주기도 했다.
시월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전해 준다. 지방마다 그 지역의 예술단체는 인문학의 시간을 준다. 전북 문학관에서는 권일송 시인의 작품세계와 시인이 평소 아끼던 애장품이 전시하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권일송 시인의 문학세계와 시인의 문단 생활의 이면을 논하고 있었다.
이 같은 예술인의 잔치는 전국적으로 펼치고 있다. 비록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축소의 모양새지만 그래도 문학의 계절, 시월은 우리들의 정서에 풍요의 시간을 만들고 있다.
수많은 문학의 작품은 시월에 만들어진다. 박목월의 ‘나그네’도 시월에 만들어졌다.
멋과 흥분, 그리고 감격의 불꽃으로 살다간 박인환 시인의 ‘세월이 가면’도 시월의 주옥이다.
시월은 불안정이 시대를 한줄기 눈물도 없이 잠재우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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