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만나서 얘기해요
최창일 시인.문화이미지심리학자
작성 : 2021년 09월 28일(화) 16:33 가+가-

가을은 떠나는 자에게 자유다.
여유의 시간에 여행을 떠나고 공항은 분주할 시간이다. 북유럽 자작나무 도시의 학인을 만나러 비행기를 타고 싶다.
사강이, 브람스가 즐기던 길모퉁이 카페에 앉아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싶다.
셋이면 좋고 다섯이면 더 좋다.
하루속히 자유로운 만남이 그립다.
146년 전 선배 시인, 마리아 릴케는 말했다. “글을 쓰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거라 믿는다면, 글을 쓰지 마라.”
만약 2021년의 릴케 선배라면 “말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을 거라 믿는다면, 말을 하지 마라.” 라는 생각이 든다.
글과 말을 하지 않고 살 수 없다는 ‘문화적 충격’을 릴케는 이미 알고 있었을까.
글과 말은 생존의 근거다. 글과 말은 나를 쥐었다가 놓곤 한다.
인간의 위기에 나를 살릴 수 있는 것이 말이다. 말과 말이 만나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다.
벌써 2년째다.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 이렇게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올 줄 몰랐다. 다 속여도, 계절을 속일 수 없다 하는 듯. 처서(處暑)를 지나니 고추잠자리 무리 지어 박꽃 담장 위, 비행기 날리기를 한다. 뭉게구름 무리가 모인 것은 모운(暮雲) 동이다. 선운사 상사화는 올해에도 무리 지어 목탁 소리 따라 한다.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잠자리, 구름, 군락으로 피는 꽃들이 이렇게 부러울 줄은 몰랐다.
명동에 나가면 무리를 지어 깃발을 따르는 일본인과 중국인들이 촌스럽게 보인 적이 있었다.
이제는 그들의 행렬마저 그립다.
북적거리는 명도의 거리는 한산한 코스가 되어버렸다. 근처에 사는 사람은 명동의 밤이 이렇게 쓸쓸한 적은 없었다고 말한다. 흥청거림이 과하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깨를 부딪치고 걷는 시간이 행복이었다.
나는 자료를 정리하다 사람을 만날 때 ‘말하기 대학 노트’를 발견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꺼리는 현실, 말하기 노트를 나도 모르게 넘긴다.
사람은 모이면 말을 해야 한다.
모임은 살아있음의 존재고, 사람들과의 대화는 사람의 살아가는 보편의 정도다.
노트의 내용을 요약하면, 사람과의 대화는 인상적인 말을 하도록 하자고 되어 있다.
어떻게 해야 말을 잘 할 수 있을까. 일단 말을 조리 있게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방향이 맞는 사람끼리 쓸모 있는 소리가 되어야 한다. 재미있고 신선한 소재면 더할 나위가 없다. 욕을 먹고 비판을 받더라도 옳은 소리를 용기 있게 말하는 것이 주요하다.
말에는 앞뒤가 맞아야 한다.
굳이 논리적이지 않더라도 공유가 되지 않는 역사의 뒤안길 이야기가 아니라면 좋다. 미래가 숨 가쁜 세상. 땅속에 묻힌 듯 석기시대 이야기는 삼가는 것이 좋다. 새로운 세상의 정보, 주제는 너와 나를 위한 내일의 이야기라면 더 좋다.
앞뒤가 맞아야 한다. 청산유수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지역 논리를 벗어나고 종교의 편향을 넘어서라. 젠더와 같은 성(性)의 예민한 논리를 피해라.
대화를 지혜롭게 하려거든 이념은 죽었다 깨어나도 건들지 마라. 이념의 잣대는 75억 인구가 각양각색이다. 장단이 맞는 몇 명은 소중하게 간직해 두어라.
내 편, 네 편의 편 가르기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를 알고 상대를 알면 서로가 조심하고 장단의 대화가 된다.
말에는 언행이 맞아야 한다.
한 말은 지켜야 하고, 말과 행동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정성의 내용을 가져야 한다. 과장된 말은 거짓말쟁이로 신뢰가 무너진다.
글에도 종류가 있듯 말에도 종류가 많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대화이고, 지도자가 되면 연설, 대담 협상가가 된다. 결론적으로 말은 너와 나의 호흡이다.
이렇듯 말하기 좋은 추석에 비대면의 충격이 3차 대전보다 더 무섭다.
노자는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아는 것이 없다”라고 했다.
사람이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