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꿈꾸는 미래!
이창용 前 순천대학교 외래교수
작성 : 2021년 09월 27일(월) 16:30 가+가-

인류의 역사를 다시 쓰게 하신 분, 과거의 모든 악을 과감히 털고 선한 미래를 위하여 새롭게 살아가도록 심오한 철학을 진행형으로 주신 분, 나는 성경에서 그 진리를 발견하곤 한다. 바로 예수이다. 성경의 교훈대로라면 그분은 인류의 악행들을 깨끗이 청산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몸소 피 흘리셨고 이 땅에 광대무변한 사랑으로 용서와 화해와 평화의 주인으로 새로운 시작을 주신 분이시다.
요즘 우리 사회는 내년에 대통령을 세우기 위한 각 정당의 후보 결정을 위해 많이 시끄럽고 국론이 분열되는 아픔을 경험하고 있다. 적게 살았다고 할 수 없는 필자도 무슨 말로든 목청껏 외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왜일까? 나라가 일제 강점기를 벗어나서 해방된 지 76년이다. 국민들에게서 가장 많이 터져 나오는 말은 언제까지 지긋지긋한 싸움판을 봐야 하느냐이다. 민주주의로 가는 최선의 도구가 선거라고 함의하여 선거로 지자체장 뽑고, 국회의원 뽑고, 대통령 뽑아 놨더니, 국민의 혈세를 축내는 자들이 부지기수고, 불러서 조사하면 준 사람이 안 줬다고 하고 받은 사람도 안 받았다고 하니 잘 밝혀지지도 않고, 이런 세상 속에서 국민들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세금 폭탄 속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위정자들은 알기나 할까?
우리는 우수한 국민성을 지닌 나라라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경쟁력 있는 제품도 많이 생산하고 있는 나라다. 경제력도 국방력도 몇 번째 안 가는 나라다. 그러나 세계인들은 우리나라를 선진국이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1000년 이상을 편 갈라 싸움하는 나라, 아직도 남과 북이 나눠져 있고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불안한 나라, 진영논리에 갇혀서 서로 권력 쟁탈에 혈안이 되어있는 나라, 그 많은 선거로 국민을 4분 5열로 분열시키면서도 19세기에 만들어 놓은 제도 속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서 일의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 이기주의적이고 고집으로 뭉쳐진 선출직 지도자들, 차라리 흙을 벗 삼아 살아온, 때 묻지 않은 정직한 농부 중에서 대통령을 세워는 것이 싸움 꼴 보지 않아 더 나을 뿐 아니라, 유능한 인재를 고루 등용할 터이니 오히려 시스템에 의해 나라가 잘 굴러갈 것이라는 외침이 더 호소력 있게 들리는 요즈음이다. 그만큼 우리는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여야를 초월한 고른 인재 등용의 의지만 있다면 대한민국 OK라는 뜻있는 국민의 따가운 비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 노 철학자가 용기 있게 현 정부를 비판한 기사를 읽었다. 나라의 장래를 위한 쓴소리라고 여긴다. 잘하는 부분도 있었을 터인데 하는 아쉬운 생각도 있지만… 모변호사가 “오래 사는 것이 위험하다.”라고 노 철학자를 막말 수준으로 비판하는 것은 매우 학대 적이고 요란한 빈 소리 같아 절대 동의하기 어렵다. 때로는 양심 있는 용기와 양심 있는 비판이 약으로 쓸 수 있기에 나쁘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를 위하여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일까? 바로 모두가 참여하여 함께 꿈꾸는 미래를 열어 가도록 배려하고, 서로 존중하며, 어깨동무를, 하는 것이다.
우선 외국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보자. 로마가 천년제국을 이끌어 갈 수 있었던 요인들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는데 그중 가장 큰 줄거리는 관용주의를 실천했다는 것이다. 독자들도 잘 아시지만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내전에서 폼페이우스를 제압하고 로마 제국의 최고 권력자가 된 후에 내세운 정책이 바로 ‘클레민티아’이다. 추종자들이 올린 살생부를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과감히 소각하고, 관용과 화해의 정치를 내외에 선언하고, 인재를 고루 등용하여 나라를 이끌어 감으로써, 천년 동안 유럽의 심장부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도 여·야를 초월하여 능력자를 고루 등용하는 일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는 역사에 남을 기념비적인 사건이 될 수 있다는 교훈으로 삼기에 충분하다.
다음으로 함께 꿈꾸는 미래를 위해서는 우선, 미래 이슈가 활발하게 논의되는 사회여야 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과거의 문제로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함으로써 과거가 주는 교훈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였다. 옛것을 익히는 것도 새로운 것을 알고(溫故知新) 미래를 창조하기 위한 것(法古創新)이라고 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고전을 즐겨 읽는 것도 결국은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후세 사람들에게 주는 교훈이 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함께 꿈꾸는 미래는 소통과 협력으로 공존과 공생을 만들어 내는 사회다. 미래의 중요한 키워드는 결국 공존과 공생이라는 것이다 인류가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코로나를 비롯한 초유의 변화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함께하는 수밖에 없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여·야 그리고 모든 국민이 협력함으로써 만들어내는 미래는, 유사이레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이며, 대한민국이 온 세계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신호탄이고, 그렇게 되면 지구의 모든 길은 “서울로 통한다”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의 미래를 위하여 함께 꿈꾸는 나라를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