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의 나라
강나루 시인·시와사람 편집장
작성 : 2021년 09월 26일(일) 16:23 가+가-

가장 어려웠던 순간 임시정부를 지탱했던 백범 김구 선생은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위인이다. 이는 그의 행적 뿐만 아니라 여러 어록에서 현대의 우리가 가장 원하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말이 많기 때문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의 백범(白凡)이라는 호는 백정(白丁)과 범부(凡夫)에서 따온 것으로, 보통 평범한 사람을 상징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자유와 자유 아님이 구분되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법이 어디서 나오느냐에 달렸다. 자유 있는 나라의 법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서 나오고, 자유 없는 나라의 법은 국민 중의 어떤 일 개인 또는 일 계급에서 나온다. 일 개인에서 나오는 것을 전제 또는 독재라 하고, 일 계급에서 오는 것을 계급 독재라 하고 일반적으로 파쇼라고 한다.”
평범한 사람이 자유를 말했다.
우리는 스스로를 상식인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법은 국회에서 국회의원이 만드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많이 달라졌다. 수많은 시민단체가 법을 바꾸고 만들고 심지어는 시민단체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 한명 두명이 법을 바꾸기도 한다. 물론 여전히 법에 효력을 불어넣는 역할은 국회의원의 고유권한이지만 그런 국회의원을 움직이는 힘이 수많은 보통사람에게 있음을 깨닫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김구 선생의 말을 빌려 우리 현대사를 돌이켜보면 이승만과 박정희의 시대는 일개인에서 자유가 나오는 전제국가였다. 신군부의 시대는 독재에서 국민의 국가로 격변하던 시대였다. 삼김의 시대에 우리는 민주화의 위업을 달성했다고 했지만 여전히 국민의 위에 정치인이 군림하는 권위의 시대였다. 김구 선생이 한없이 가지길 바랬던 “높은 문화의 힘”은 “돈”을 벌어 “성공”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잉여학문에 불과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전쟁은 상호확증파괴와 이음동의어가 되어 영토의 정복이 미래의 부강함을 보증하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문화는 서로 함께 윤택해지면서도 또한 상대를 내게로 끌어당겨 가슴 깊이 끌어안고야 마는 형태로 정복전쟁을 수행하는 최고의 전쟁도구임을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김구 선생은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지길 바라는 이유로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딱 그 말대로다. 이 문화를 만드는 주체는 누구인가? 대형 기획사? 작가? 감독?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마저도 자본의 눈치를 보는 마당에 그들 또한 자본의 영향에서 자유롭기는 꽤 어려울 것이다. 그들이 눈치를 볼 자본은 대중이다. 연예인지망생을 훈련시키고 책을 만들고 영화를 만들 때 어떻게 진행해야 대중의 흥미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미국에서 트럼프가 당선됐을 때 중우정치 혹은 빈민정치라는 말을 꺼내는 정치평론가들이 있었다. 자극적이고 배타적인 논리로 ‘저층백인남성’의 표를 몰아갔다며 말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본다면 그들은 가까운 시일에 자신들에게 득이 될만한 공약을 약속하는 ‘성공한 백인남성’에게 표를 준 나름대로 합리적인 결정을 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다시 말하자면 개인이 모이면 정치논리로 단순하고 어리석어진다는 중우정치라는 현상은 쉽게 일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어리석은 개인들이라도 모여서 대화와 정보교환을 이루면서 한발치라도 더 개인 혹은 개인이 속한 집단에 이익이 될법한 선택을 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인간은 늘 과거를 보면서 후회를 하지만, 동시에 미래를 걱정하면서 현재를 살기 때문에 이해 타산적이고 누구나 그 나름대로의 계획을 가지고 선택을 반복한다. 그러므로 대중은 어리석어지기 어렵다.
나는 세계를 모른다. 당장 내가 사는 이 광주도 10년 넘게 살았던 동구나 좀 알지 최근 이사 온 서구도 아직 알아가는 단계인데 세계가 어떻고 품평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 여러 면에서 우리나라 시민들이 바뀌고 있다는 것은 알 것 같다. 실망스럽게 퇴진한 대통령과 기대를 안고 당선된 새 대통령, 그리고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새 대통령의 현실. 과거였다면 자연스럽게 정치혐오와 체념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정치인이 못하면 우리가 하겠다며 대중이 정부에게 예산과 행정력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시민단체가 아니라 개인들이 말이다.
국회에서 일할 한 명의 지역구 국회의원이 아니라 당장 우리 지역에서 수시로 만나 의견의 대리자 혹은 조율자가 되어줄 실무자가 전국에 수도 없이 필요하게 되었으니 그 인건비만으로도 엄청날 것이지만, 행정부가 전시적으로 낭비했을 예산에 비하면 훨씬 효과적이고 실속있는 비용이 될 것이니 실용적인 일자리가 생기는 셈이다. 기업에 종속되어 기업의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 일하던 경제구조에 지역의 환경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직종이 새로이 창출되었다.
백범 김구 선생이 바랐던 “높은 문화의 힘”에는 서적과 공연물이 포함됐을 것이나 그보다는 보다 본질적으로 우리 삶에 직결되는 일상을 의미했을 것이다. 일찍이 우리는 두레와 향악, 품앗이라는 마을공동체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현대에 와서는 지자체의 예산과 행정력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형태로 진화한 것이라고 본다면 “높은 문화의 힘”은 역사라는 리빙랩의 인큐베이터에서 점차 성숙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난 얼마간 우리나라에 있었던 여러 정치적 사건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우리나라 최고의 엘리트들인데 꼭 저렇게 법의 빈틈을 노리며 정의롭지 못하게 살아야할까? 그러면서 대중 앞에서는 자신만이 정의롭고 청렴한 척을 하다니 역겹기 그지없는 작태다’는 생각을 했다. 더불어서 대중들이 원하는 정치인이 대단한 카리스마를 지닌 엘리트에서 나와 공감해줄 수 있는 평범한 이웃주민으로 바뀌어가는 순간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정당들이 혁신인재라며 영입하는 대상들이 청년, 이주민, 여성 등인 것을 보면서 ‘그래 저런 사람들이 정치 한번 하면 좋겠다’며 내심 공감하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임시정부를 지탱했던 백범은 전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 역사의 가장 암울했던 시기를 이겨낸 위인들 중 한명이 평범한 사람이기는 힘들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살아갈 시대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높은 문화의 힘”을 이룩해가는 시대가 될 것 같다. 지역의 수많은 작은 리더들이 수많은 지역주민들의 지혜를 모으는 수많은 직접민주주의의 연속을 이룰 것이니 수많은 기발하고 혁신적이고 실용적인 발상들이 “높은 문화의 힘”을 이끌어내는 견인차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