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집을 꿈꾸며
강경호 시인·문학평론가
작성 : 2021년 09월 05일(일) 16:28 가+가-

오래전에 내가 사는 집 부근 아파트 메타세콰이어 나무에 까치가 집을 짓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까치는 이른 봄부터 작은 나뭇가지들을 물어다 집을 지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나는 한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수많은 나뭇가지를 모아 집을 언제 짓겠는가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까치 부부는 마침내 훌륭한 집을 지어냈다. 아무리 미물이지만 정성스레 둥지를 지은 까치의 노동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까치는 둥지에 알을 낳고 새끼를 부화해 잘 키워냈다. 그러는동안 태풍이 몰아치고 비바람이 불어도 까치집은 견고했다. 까치에게 집은 생명의 거처가 되었다.
이것을 바라보며 나는 생명에 대한 경이와 함께 집의 의미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새삼스럽게 집의 의미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하게 한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주택의 가격 때문이다.
집을 생각할 때 까마득한 원시시대의 인간들이 떠오른다. 그 시대에는 눈바람과 비, 그리고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동굴이 거처였을 것이다. 또한 사나운 짐승들로부터도 안전한 공간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집은 어머니의 자궁처럼 따스하고 안전하다. 그리고 가족이 모여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고 사랑을 나누는 공간으로 문학적 상징으로도 사랑과 생명을 의미한다.
자연에서는 여전히 사랑과 생명의 거처이다. 새들은 나무에 둥지를 틀고, 짐승들은 토굴을 파거나 동굴을 집으로 삼는다. 동굴을 집으로 삼던 인간은 이제 아파트를 짓는다.
인간이 짓는 아파트는 더 이상 사랑과 생명의 공간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잃은지 오래다. 집은 탐욕의 대상이 되어 분양시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로또복권 당첨을 노리듯 줄지어 서있다. 아파트를 축재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이 서울에서부터 시작되어 전국적인 현상이 된지 오래이다.
그러다보니 나라에서는 이를 막기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번 정권이 들어서며 대통령은 반드시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겠다고 공언을 하였다.
그러나 스물 몇 번의 부동산 정책을 내놓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우리나라 역사상 주택가격이 가장 큰 상승을 기록하였다. 혹 떼려다가 더 큰 혹을 붙인 꼴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는 무주택자들은 불안한 부동산 정책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정부에서 부동산의 안정을 위해 진심으로 노력했겠지만 그렇다고 주택상승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다른 선진국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주택자나 청년세대에게는 절망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평생을 일해도 치솟는 주택가격의 상승 때문에 내 집을 가질 수 있는 희망을 갖지 못한다는 암담한 현실에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상대적 박탈감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다시 ‘집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열심히 땀흘려 일을 하여 꿈을 이루어가야하거늘 집을 축재의 수단으로 삼아 ‘불로소득’을 하는 수많은 투기꾼들의 탐욕을 응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분노가 일어난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고 인구밀도가 높아 아무래도 부동산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투기꾼들이 집을 주거공간으로 인식하지 않고 투기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그릇된 생각을 어떻게하면 바꿀 수 있는지 절실하게 생각하게 한다.
언젠가 외국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는 물가도 저렴하지만 누구나 쉽게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곳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자신들의 삶에 만족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집을 투기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은 까닭이다.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은 어떤 것일까?’ 아파트 평수와 메이커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사회에서 묻고싶은 질문이다. 아파트 단지에 둥지를 틀고 새끼들을 건강하게 키워내는 까치들처럼 살아가는 삶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는 집의 효용성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더불어 가슴 속 깊은 곳에 있는 또하나의 집에 대한 사색을 해본다. 가슴 속의 집은 내 스스로가 거처하는 공간이며 내 영혼이 머무는 지점이기도 하다. 나의 영혼은 내가 인간으로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묻기도하고 가르쳐주기도 하는 자아로서 정체성을 보여주는 진정한 내 자신이다.
다주택 규제정책으로 인해 ‘똘똘한 강남의 집 한 채’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다. 그 똘똘한 집 한 채를 위해 일생을 투자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다.
아무리 집이 고래등처럼 크고 화려해도 가슴 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작고 소박하지만 스스로를 아름답게 빛내주는 집, 태풍과 비바람에도 꿈쩍하지 않고 새끼들을 훌륭하게 키워내는 나뭇가지 촘촘하게 잘 지은 까치집 같은, 영혼이 깃든 집을 간직하고 있는지, 그것이야말로 인간답게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