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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은 삶에 희망
문민용 논설위원
작성 : 2020년 09월 09일(수) 16:41 가+가-

아버지가 살아 계심에도 불구하고 자기 몫의 유산을 미리 달라고 억지를 부려서 결국 재산을 정리하여 집을 떠나버린 아들이 있다. 불효자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기본 윤리마저 버린 아들이다.
그런 아들을 아버지는 떠난 순간부터 기다리고 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주야로 대문 앞에서 서성이며 마을 모퉁이 길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기 짝이 없다.
“그런 아들을 무엇 때문에 기다립니까? 아들이 돌아올 것 같습니까?”라고 질문 하는 사람이 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올 것을 믿고 기다린다고 했다.
아버지에게 기다림은 삶의 희망이요 삶의 힘을 일으키는 근원이었다. 그렇게 아버지의 기다림은 이루어졌다.
병원에 가면 사형선고를 받은 환자들도
“내일은 좋아질 거야!”라는 기다림을 가지고 있다.
실패한 사업가들도 “내일은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야!”라는 기다림을 버리지 않고 있다. 참 좋게 보인다.
기다림이 있는 사람은 그 기다림을 향해 생각과 마음을 집중해서 함께 가게 된다. 그러면 그 기다림을 소유하게 되고 이루게 된다.
살면서 어려운 일을 많이 겪고 힘든 일을 만난다 해도 기다림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인생은 기다림이다. 엄마 뱃속에서 열 달을 기다려 세상에 나왔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뜻이나 목표가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며 산다. 기다림의 종착역인 죽음의 순간까지 인생은 끝없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결혼한 부부는 아이를 기다리고 군대에 아들을 보낸 엄마는 건강하게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린다. 그래서 기다림은 곧 희망이고 우리 가슴을 설레게 해주는 생명체와 같다. 기다림이 없는 삶은 희망 없는 삶이요 살아 있지만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하겠다.
3000여 년 전 강태공은 문왕에게 발굴되어 은나라를 멸하고 주나라를 창건하는데 큰 공을 세운 개국공신이다.
주나라가 창건되자 강태공은 왕으로부터 산동 반도 지방을 봉지로 받아 제나라의 왕이 된다. 그러니까 강태공은 제나라의 시조다. 강태공이 뛰어난 자신의 능력을 발굴해 줄 문왕을 만나지 못했다면 평생을 기러기와 벗하며 살았으리라. 강태공은 언젠가는 자기 뜻을 펼칠 수 있는 때가 올 것을 믿고 그 긴 세월을 준비하며 기다린 것이다.
준비 없는 막연한 기다림은 허송세월일 뿐이다.
하늘에 구름이 없으면 기다려도 비가 오지 않듯이 뜻이나 성공을 위한 준비가 없으면 아무리 기다려도 이룰 수 없다. 누구나 성공의 기회가 온다고 한다.
그런데 기회는 예고하지 않고 소리 없이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진다. 강태공이 성공의 때를 낚기 위해 평생 세월을 낚시질했듯이 쉼 없이 꿈과 성공을 위한 준비를 하면서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꿈과 성공을 이루기 위해 능력, 여건, 시기를 완비했다면 뜻을 펼쳐도 될 것이고 기다림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는 것처럼 인생에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지만 좋은 날이 올 것을 기다림은 가치 있고 행복한 시간으로 저장될 것이다.
윌리엄 목사가 알프스 빙하 동굴을 방문했다.
동굴은 단단한 얼음을 뚫어 만든 통로를 통해서 가게 되어 있었다. 으스스한 터널을 따라서 더 깊이 내려감에 따라 가늘게 들어오던 햇빛도 희미해져 갔다.
터널 끝에 들어갔을 때는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깜깜했다. 그때 안내인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기다리세요! 5분쯤 지나면 앞을 똑똑히 볼 수 있게 될 거예요’ 그래서 모두 가만히 선 채로 기다렸다.
5분쯤 지나니까 정말 눈앞이 환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것은 우리의 눈이 새로운 환경에 길들었기 때문이다. 눈이 밝아지자 동굴 벽과 천정이 반투명의 초록색으로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에워싸고 있는 신선하고 부드러운 빛 속에서 서로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고, 안내 책자를 읽을 수도 있었다.
기다림은 우리의 눈을 열어 주위에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게 해준다. 그러나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눈들만이 그것을 볼 수 있다. 우리 주위에는 갑작스러운 어려움 때문에 좌절하고 당황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어둡게 느껴진다. 하지만 벽을 더듬던 초조한 손길을 멈추고 하나님 안에서 조용히 기다릴 때 빛이 들어오고, 하나님의 친절하심과 사랑을 보게 될 것이다.
인생의 종착역인 죽음도 지혜로 기다리고 맞이해야 한다.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기다리며 죽음을 향해 살아가고 있다. 태어남 앞에서도 죽음 앞에서도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기다리는 것이다.
출생이 인생사의 시발역이라면 죽음은 인생사의 종착역이다. 누구나 성공의 지혜를 발휘하면서 인생사 역을 지나가려 하지만 죽음의 종착역을 가는 데는 흘러가는 시간에만 맡기려 하고 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역인 죽음의 종착역, 그냥 흘러가는 시간에만 맡기지 말고 ‘어떻게 성공적으로 도착할 것인가?’ 지혜를 모아 한 발자국씩 옮기며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래야 행복한 죽음의 종착역, 아름다운 인생의 종착역에 이를 것이다. 종착역에 성공적으로 도착한 사람이 인생사의 기다림을 온전하게 마무리 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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