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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전상서
최창일 시인·문화이미지심리학자
작성 : 2020년 09월 01일(화) 16:58 가+가-

평소 각별하게 지내는 장로님께서 예수님께 한통의 편지를 썼다며 한번 봐달라고 한다. 예수님께 보내는 편지 글인데 시인 친구에게 한번쯤 보게 하는 것이 예수님께 예의라는 것이다.
장로님의 편지는 오늘의 한국사회가 예수님이 원하는 사회인가에 반문하는 글이 중심이다.
예수님께서 언제부터인가 한국에 대하여 너무나 등한하신 것이 아닌가, 서운함도 있다.
예수님은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한을 기지고 있음을” 보여주겠다는 말을 굳게 믿고 있다.
한국은 민주화 정권 20여 년 동안 부자들과 부자교회의 천국이 되었음을 예수님께서도 분명알고 계실 것이다. 물론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당연함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참혹한 풍경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교회들은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기보다 영혼을 파괴하고 있다. 오염된 정치는 그렇다지만 사회가 교회를 염려하는 지경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갈릴래아 사람들은 가난과 차별,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절망감 속에서 살아갔다.
갈릴래아 청년들은 과격한 사회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불의한 세상과 싸우고 죽어갔다. 예수님은 그 참혹한 현실에서 목격하며 성장 했다. 오늘의 한국사회는 당시의 갈릴래야의 상황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한국의 목회자에게 너무나 관대한 것이 아닌지, 질문투도 있다.
신약성서에서 예수님은 나라를 사랑하라. 교회를 사랑하라. 형제를 사랑하라. 세 가지를 밑줄 치고 강조 했다. 하지만 나라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목회자가 해괴한 주장을 하는 사회다.
2013년부터 2019년 까지 세습을 한 교회는 명성교회를 비롯, 159곳이다(시민단체가 공개). 대형교회는 세습에 눈이 멀고 돈으로 세습의 전략을 사고파는 기술을 건다. 그 같은 방법에는 폭력도 있다. 그들에게는 교회당은 교회가 아니라 돈이 가치가 된 부동산이다. 목욕탕을 소유한 아버지가 큰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물론 어느 사회나 돌출 형 사람은 존재하는 법. 그러나 목사가 사회의 절대 다수를 현혹하는 부동산 물려주기 기술을 가졌다면 그건 건전 사회가 아니라 짐승의 사회다.
오늘 한국 교회는 이상을 꿈꾸고 천국을 상상하려 하지 않는다.
예수를 각자의 세속적 욕망을 신에게 청탁하는 매우 유능한 중계인 쯤으로 알게 되었다.
우리의 번역 신약의 성서에서는 예수님은 반말을 하지 않는다.
2,000년 전 예수님과 팔레스타인 인민들이 사용했던 아랍어엔 존댓말, 반말은 없다. 그러나 우리처럼 존댓말, 반말이 엄격하고 또 섬세한 사회적 맥락을 갖는 사회에서 예수님에게 반말을 하는 것은 결례이고 크나큰 외곡이다. 더구나 목사가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 까불면 죽어”라고 하는 것은 감히 용납이 되지 않는 언행이다. 한국의 교회와 목회자는 목사가 하나님을 향하여 거친 속어에 대응을 하거나 그를 향하여 치리(治理)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별명은 빤스 목사로 통하기도 한다.
그의 허물을 교계가 용납하는 순간 괴물로 변해 가는데 힘을 받는다.
오늘의 한국 사회는 교회와 성서를 모르는 사람에게서 조차 ‘위선의 상징‘으로 여김 받는다. 한국교회의 상황은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 전광훈 씨는 목사의 타이틀을 가지고 정치인이 되려하고, 지배세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정부를 전복하는 세력이 조직화 되어가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로 비대면 예배를 교회에 요청을 한다. 기독교연합회 회장은 정부에 정면으로 대응을 한다. 교회를 ‘영업장’이나 ‘사업장’으로 보지 말라 한다. 교회의 예배는 생명과 같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목사의 교인이 운영하는 사업장이나 영업장은 부도덕한 장소라는 말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소양이 부족하거나 국가관도 없는 무인가 신학을 한 맹탕 인간으로 보인다.
교회는 교인이 모이는 회당에 불과하다. 교인 각자가 교회다.
어느 곳에서든 하나님과의 만남이 교회다. 교회라는 건물에 하나님께서 상주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들도 알 것이다. 하나님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계신다.
우리는 성경을 복음이라고 한다.
복음은 ‘기쁜 소식’이다. 복음은 고통과 비참 속에, 허무와 번민 속에, 삶의 진정한 기쁨과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에게 예수님이 전하는 기쁜 소식, 삶의 회복을 알리는 소식이다. 그 소식은 교회건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개인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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