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문민용 논설위원
작성 : 2020년 08월 26일(수) 16:51 가+가-

산속 지리를 잘 아는 친구가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되었다. 다행히 산속 오두막집에 사는 노인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젊은이, 산에서 길을 잃으면 동네나 길을 찾으려고 산밑으로 내려가는데 그것이 곧 죽는 길이네. 반대로 위로 올라가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라오.”
‘왜 위로 올라가야 합니까?’
“위로 올라가서 자기의 위치를 발견하고 어디에 길이 있는지, 어느 쪽에 마을이 있는지 분명히 방향을 확인하고 내려가야만 살 수 있기 때문이오.”
사람들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자기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맞는 길을 찾아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헤르만 크르테스 라는 스페인 장군이 멕시코를 점령해서 싸우려고 하는데 자기 군대가 너무 적어서 불리했다.
군인들이 사기가 떨어져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들 했다.
그 날 밤 장군은 충복 몇 사람을 불러서 자기네가 타고 온 배들을 모조리 불 질러 버리라고 명했다.
다음날 “이제 우리는 정복을 하거나 죽거나 둘 중에 하나다. 돌아가는 길은 없다!” 그래놓고 장군은 진군을 명했다.
군사들은 목숨을 다해 싸웠고 승리했다.
장군이 제시해준 길은 정확했고 엄청난 위력을 발생했다.
우리는 순간순간 갈 길을 정해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갈 길을 안내해주어야 한다.
인종 차별이 심했던 때 미국 신사가 자기 집 정원 앞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이때 남루하고 몹시 피곤해 보이는 인디언이 지나다가 빵을 좀 달라고 애걸했다.
신사는 “너에게 줄 빵이 없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이 마시는 맥주라도 한 잔 주세요”라고 부탁했고 역시 거절당했다.
배고프고 갈증이 난 인디언은 물 한 모금이라도 달라고 사정했다.
신사는“개 같은 인디언에게 줄 물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인디언은 슬픈 얼굴로 돌아갔다.
얼마 후에 그 신사가 사냥을 나갔다가 깊은 산중에서 사냥개를 놓쳐 길을 잃었다. 방향 감각도 없이 헤매는데 날이 어두워졌고 배고프고 목말라 죽을 지경에 되어 쓰러졌다.
그때 마침 지나가던 사람이 신사를 구출해서 자기 집으로 데려가 정성껏 돌보아주고 후히 대접했다.
신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기를 구출한 사람이 얼마 전 자기가 박대했던 그 인디언이 아닌가!
너무 어이없고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신사에게 인디언이 조용히 말했다.
“당신이 나에게 한 것처럼 내가 당신을 대했다면 지금쯤 당신은 산중에서 죽었을 것입니다”.
산속에서 보이는 길을 잃었던 신사는 그 일 후에 마음의 길이 바뀌었다고 한다.
눈 덮인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산악인들이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다. 장비나 기구가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다 할지라도 길잡이가 없으면 큰 낭패를 보게 되고 생명까지 잃을 수 있다. 험한 길을 만났거나 길을 잃었을 때 위기상황이 발생한 그곳을 잘 알아서 올바르고 신속하게 대처할 줄 아는 길잡이를 만난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인생이라는 산맥을 등정하는 데도 좋은 길잡이가 필요하다.
시련이 닥치고 인생의 진로를 정하지 못해 방황할 때는
‘좀 더 일찍 바르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스승을 만났더라면 고생을 덜 하고 훨씬 가치 있는 삶을 살았을 텐데.’ 하고 생각한다. 좋은 길잡이를 제대로 만난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여러분 인생에는 좋은 길잡이가 있는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바른길을 걸어야 한다. 스승은 사도의 길을 가장은 부도의 길을 상업을 하는 사람은 상도의 길을 예술가에게는 예도의 길이 있다. 쉽고 편한 길을 가려고 하면 주위에 상처를 주고 본인은 퇴보하거나 범죄의 길로 가게 된다.
그 사람을 알려면 걸어온 길을 보면 알 수 있다.
현대문명의 척도도 그 나라의 길을 보고 알 수 있다고 한다.
로마 문명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생겨났다. 중국이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길을 내는 대신에 성벽을 많이 쌓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대로 미국은 고속도로와 철도를 많이 건설했기 때문에 현대문명을 이룩한 나라로 발달하게 되었다 한다.
사람에게도 나라에도 이처럼 길은 참 중요하다.
나를 지키기 위해 자기 성을 쌓을 것인가, 도전하고 교류하기 위해 관념과 기준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낼 것인가?
혹심한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 기차가 거북이처럼 움직였다.
승객 중 갓난아기를 안은 여인이 자신이 내릴 역을 지나치지 않으려고 잔뜩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때 한 신사가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내릴 역을 가르쳐 드리지요”
기차는 눈보라를 뚫고 서서히 달려 어느 역에 멈추어섰다.
신사는 여인에게 “이곳에서 내리십시오”
여인은 신사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리고 갓난아기를 안고 기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다음 정거장에서 신사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부짖었다. 여인이 내려야 할 역은 바로 이곳이었다. 기차가 잠시 멈춘 것인데 신사는 여인에게 잘못 가르쳐준 것이었다. 이튿날 여인이 내린 철길 옆에 ‘아기를 안은 여인’의 모습을 한 눈덩이가 발견됐다.
여인이 아기를 안은 채 얼어 죽어 있었다. 사람에게 길을 잘못 알려주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비극적인가!
당신은 무엇을 보고 인생의 길을 가고 있고 무엇을 향하여 달려가라고 가르쳐 주고 있는가?
정확한 길을 아는 사람이 정확한 길을 알려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