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
고난은 좋은것
문민용 논설위원
작성 : 2020년 05월 27일(수) 16:51 가+가-

독일의 한 남작이 자기 성곽의 두 탑 끝을 여러 가닥의 철사줄로 연결하여 그 줄들에 바람이 부딪혀 내는 바람 하프 같은 거대한 음악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화음이 울린 것은 겨울날 거센 폭풍이 그 줄들을 휘몰아칠 때였다. 그럴 때는 장엄한 음악이 탑 사이에서 쏟아져 나와 그 아래 골짜기를 가득 메우곤 하였다.
참 신기한 현상이다.
닭은 폭풍이 오면 몸을 날개에 묻은 채 숨을 곳을 찾고 독수리는 날개를 펴 태풍에 몸을 싣고 유유히 날아올라 안전지대로 향한다. 여러분은 고통스럽고 억울한 폭풍을 만날 때 닭처럼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식으로 몸을 숨기는가? 아니면 독수리처럼 어려운 폭풍 속으로 나아가 담대하게 대처하는가? 보화는 깊은 광맥을 찾아가야 얻을 수 있듯이 인생의 보화도 깊은 곳에 있다. 그 깊은 곳이 바로 ‘고난’ 이다.
모진 바람과 추위 속에서 자란 나무는 좋은 목재가 되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고난은 아름답다. 역사적으로도 혼란한 때에 지혜자가 나타났고 앞서간 위인들은 기막힌 고난을 당하면서 담대하게 고통을 극복하여 문명의 꽃을 피웠다. 그래서 고난을 역사의 유모와 같다고 말하며 찬란한 결과를 약속하기에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 시인 롱펠로우는’겨울의 숲’에서 고난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아! 그 풍성하던 여름의 자취는 모두 어디로 가고 말았는가? 지저귀던 새들은 모두 어디로 갔으며, 부드럽던 여름 바람은 어디로 가 버렸나, 그 푸르던 숲은 도대체 어디로 가 버렸는가! 그러나 여기에도 음악은 있다! 거칠고 사나운 겨울의 음악! 이 거칠고 사나운 겨울바람에도 갈대는 고운 소리로 울고 있구나!
여기에서 시인은 평안 속에서 행복의 조건을 발견하는 것보다 고난 속에서 행복의 조건을 발견하는 것이 훨씬 아름답다는 점을 노래하고 있다. 고난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고난이 가져다주는 역사로 인해 고난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을 피하려 하지 말고 또 고난을 맞이하여 한탄 속으로 빠져들지 말자.
아름다운 육체를 위해서 쾌락을 환영하는 자가 아니라 아름다운 영혼을 위해서 고난을 환영하며 살아보면 어떨까?
어느 교수가 학생들에게 물었다.
“남편은 알코올 중독자로 가구를 내다 팔아서 술을 마시고 돈이 없으면 아내를 심하게 구타합니다. 거기다가 아내는 폐결핵에 걸려 몸도 가누기 힘들 정도인데 임신을 했습니다. 이 태아를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학생 하나가 손을 들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낙태시켜야 합니다”
그러자 교수가 말했다. “자네는 방금 베토벤을 죽였다네!” 그 임신된 생명은 바로 베토벤이었다. 그를 낳은 어머니는 폐결핵으로 그가 어렸을 때 사망했다.
그래서 베토벤은 11세 때부터 극장을 돌며 구걸 예술을 하며 누구보다도 불행의 터널을 많이 통과했다.
그러나 그는 그 불행의 조건을 위대한 음악을 탄생시키는 창조적 조건으로 승화시켰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노래한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시편 119:71)
고난은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문이다. 고난을 통해서 마음이 열리고 교류를 하게 되며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도전하며 살아가게 된다. 한계 안에 머무는 사람은 그 너머에 있는 아름다운 곳을 경험하지 못한다.
‘도도새’는 1598년 인도양 모리셔스섬에 기항했던 네덜란드인들에 의해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도도새는 큰 덩치와 커다란 머리, 두꺼운 다리를 갖고 있었다.
당시 모리셔스에는 도도새의 천적이 되는 포유류가 없어서 느릿느릿 걸어 다녔고 처음 보는 선원들에게도 경계심 없이 접근했다.
오랜 평화에 익숙해진 날개는 퇴화해 사라졌다. 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어로 ‘바보’ 또는 ‘느림보’를 뜻하는 ‘도도’라는 이름도 그래서 붙여졌다. 처음에 선원들은 이 새를 식량으로 삼았는데 고기가 딱딱하고 지독하게 맛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선원들은 도도새 사냥을 멈추지 않았고 유럽에 싣고 가 구경거리로 팔아넘기기도 했다. 유럽인의 배가 정박한 후에는 선원들이 데리고 온 개, 돼지, 쥐 등 다른 동물들이 인간과 합세해 도도새의 생존을 위협했다.
그리고 지면에 둥지를 틀었는데 인간들과 동물들은 쉽게 도도새의 알을 훔쳐 먹었다. 개발로 숲이 불태워지면서 서식지도 줄어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지 100년도 되지 않아 멸종되어 버렸다.
영국에 박제가 보관돼 있었지만 상태가 좋지 않아 소각 처리되고 지금은 스케치나 신체 일부만 간신히 남아있다.
오랜 평화가 이 새의 존재의미를 빼앗아 간 셈이다. 바람이 심하게 불고 거센 풍랑이 이는 그날도 해녀는 바다에 뛰어들어 해물을 캐내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이 물었다. “이렇게 바람이 거센 날도 바다에 들어갑니까?”
“풍랑이 바다에 있지, 바다 속에도 있나요?
해녀의 대답이었다.
예상치 않았던 코로나라는 고난이 우리 삶에 찾아왔다.
고난이 올 때마다 피하지 않고 독수리처럼 대처하며 희생했던 조상들의 교훈이 우리를 코로나도 이겨내게 해주었다. 크고 작은 고난을 받아들여 지혜롭게 이겨가는 삶을 배워왔고 지금도 배우고 있는 우리 국민들이 자랑스럽고 존경스럽다. 오랜 평화가 멸종을 불러온 도도새의 삶보다 고난을 받아들이고 즐길줄 아는 사람의 마음과 삶에는 평안과 발전이 있다.
편집팀 기사 더보기

tdh1234@naver.com

많이 본 뉴스

종합

뉴스

시군별뉴스

오피니언

기사 목록

대한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