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하면 대학의 총장이 떠올린다.
대학의 졸업과 입학시즌에는 총장사가 주요 일간지에 게재되던 시절도 있었다. 대학의 총장에 대한 권위와 인식이 컸다. 그래서 한때는 서울대학과 일부 사립대학의 총장이 총리나 비서실장으로 발탁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학총장의 임무는 대학의 운영관리, 재정, 서무, 교육체계, 학술과정, 입학관리, 학생 관리에 대한 책임을 맡고 있다. 물론 교수, 교직원의 인사관리도 맡고 있다. 초.중.고와 달리 대학은 대중적인 집단을 이끄는 막중한 자리다. 그래서 지성의 상아탑(象牙塔)이라고 한다.
국립대학의 총장은 정부가 인사권을 가졌다. 사립학교는 재단 이사장이 가졌다. 국립대학은 정부가 예산을 지원한다. 자연 정부의 영향력으로 정치성향, 총장이 임명되었다. 사립학교는 재단 설립자의 부인, 아들, 딸이 총장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족벌경영이라는 부정의 말이 나왔다.
대학의 대다수 총장은 정부가 총리나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하면 출세로 보고 달려갔다.
총장이 총리가 되면 학자의 곧고 대쪽 같은 목소리는 사라기 일쑤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총장 중 고려대 총장이었던 김준엽이 노태우정권에서 끊임없이 총리로 임명하려했다. 김 총장은 고려대 총장이 국무총리보다 높은 자리인데 어떻게 고려대 총장이 국무총리가 될 수 있나, 라는 어록을 남긴 일화가 있다. 대학의 총장이 국무총리보다 높은 것은 아니다. 김준엽 총장은 군사정권에 대한 부정적 반심이 작용된 것이다. 김 총장은 결국 군사정권의 탄압의 대상이 되었던 군사정권의 비사도 있다.
우리사회에서 총장의 호칭은 다양한 집단에서 사용한다. 국방부만 하여도 육군, 해군, 공군, 국방참모총장이 있다.
그래도 총장의 대표적인 호칭은 유엔사무총장이 될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총장의 호칭은 퇴색이 되기 시작했다. 국립대학의 총장이 정치 입김에 좌우되고, 사립학교의 총장은 족벌운영의 대표적인 비 호감으로 가기 시작했다. 역량을 갖추지 못한 함량 미달의 총장은 그 권위와 호칭에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었다. 하나의 사례로 동양대 최성해 전 총장이 가짜 박사학위 총장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결국 정부, 재단이 임명했던 총장이 교수회에서 선거를 통하여 총장으로 선출되기에 이르렀다. 일면 민주적인 총장선출이라는 평가도 있다.
문제는 2020년, 대한민국에 총장의 호칭이 혁명군처럼 불러지는 불행의 사태를 맞았다. 대학 총장보다는 검찰총장이 추상처럼 떠올랐다. 검찰 총장은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임명하였으나 그 위에서 군림하는 자리가 되었다.
우리나라 검찰 총장의 역사는 100년의 역사가 넘는다.
검찰의 근대적 제도는 조선말(1895년)이다. 재판구성법이 생기면서 만들었다. 1907년 재판구성법이 개정을 하면서 현재의 대검찰청에 해당하는 대심원검사국이다.
역사는 반복의 역사라는 말이 있다.
대학의 총장이 스스로 총장자리를 추락시키듯, 검찰총장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총장 스스로가 검찰의 위상을 밟고 있다. 이는 국민이 검찰을 불신하며 다수의 국민은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처’(공수처)를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불길처럼 일어나게 했다. 엄격히 규정하면 공수처는 검찰을 불신하는 결과다.
일부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검찰을 정권의 입맛대로 사용하고자 만들었다 주장한다. 틀린 말도, 옳은 말도 아니다.
정부가 입안하고 국회의 통과절차를 거친 것은 팩트다. 허나 국민의 여론이 동의하지 않았다면 국회의 통과는 불가능하다. 대한민국의 국민은 옳지 않는 정책을 무조건 입안, 국회 절차를 용인 하지 않는 성숙한 시대를 걷고 있다.
검찰의 입장에서 보면 불행이다. 이 같은 불행은 윤성열 총장이 좌초시켰다.
윤 총장은 검찰의 조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지하려 했다.
이 같은 검찰의 태도는 국민들에게 집단 이기주의로 보였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화엄(華嚴)의 무수한 꽃잎으로 만들어진다. 집단야욕의 대설(大雪)보다 더 바르게 국민의 삶에 다가 갈 때 격려와 지지를 받는다.
조선왕조에서 왕의 권위를 높이 만든 왕은 세종대왕이다. 반대로 왕의 권위를 실추시킨 왕은 연산군이다. 권위는 국민이 만들지 않는다. 왕 스스로의 신뢰가 왕의 권위를 만든다. 검찰의 권위, 신뢰는 검찰이 만든다. 검찰이 실추된 권위를 찾는 길은 검찰 스스로 찾아나서야 한다. 검찰의 집단은 우수 집단이다.
자신이 우수하다는 생각을 가지면 연산군이 된다. 우수한 집단의 모습은 국민을 위한 업무내용으로 답해야 한다.
윤성열 총장은 검찰의 신뢰를 심각하게 추락시킨 대죄(大罪)를 면키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