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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에 12억원 쾌척한 80대 구두수선공 할아버지 ‘귀감’
서울 ‘스타사’ 대표 김병양 할아버지
30여 년을 모아온 10억원대 재산 기부
작성 : 2020년 04월 21일(화) 17:03 가+가-

“어머니가 중학교 입학시험 보라고 그렇게 권했었는데…”
‘국민학교’(초등학교) 밖에 못 나온 자신을 원망하며, 악착같이 벌어 모은 10억원대 재산을 고향의 한 대학에 기부한 80대 어르신이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30여 년을 구두수선공으로 일해 온 김병양(84) 할아버지.
서울에 사는 김 할아버지는 지난 17일 자신이 평생 모아온 현금 6억 원을 “디지털도서관 건립기금으로 써 달라”며 전남대에 기부했다. 또 조만간 거주 중인 시가 6억 원 상당의 연립주택도 현물기부키로 했다.
대학본부를 찾은 김 할아버지는 팔순의 고령임에도 ‘어머니 생각’에 금세 눈시울을 붉혔다. 아버지가 딴살림을 차리면서 하루아침에 가세가 기울었던 것이며, 어머니가 겪었을 마음고생을 헤아리게 되니, 마음이 아팠다.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 할아버지는 중학교에 진학하는 것 대신 직공이 되는 길을 택했다.
“전남대(전신 도립농과대학 추정) 정문 앞 신안동에 있던 식용유 제조공장을 다녔어요. 전남대에도 수시로 드나 들며 놀곤 했지요. 그 당시엔 빨간 벽돌공장도 있었고, 주변은 온통 논밭이었는데, 이제는 많이 변했지요?”
김 할아버지는 1969년 즈음에 상경해 식용유와 얼음 등을 배달하면서 명동과 인연을 맺었다. “남대문시장에서 짐받이 자전거에 물건을 가득 싣고 명동한복판을 내달렸지요. 열심히 일한 덕에 돈도 제법 모았어요.”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 배달일로 명동을 드나들던 것을 계기로 어쩌다 구두수선가게를 인수했다. 나이 쉰이 넘어서 구두수선공이 된 것이다. ‘명동 스타사’란 간판도 있어 예법 그럴 듯했다.
“명동 코스모스백화점 앞 귀퉁이에 자리한 판잣집이었는데 일이 많았어요. 뾰족구두며 핸드백은 물론이고 가방, 구두를 수선해 달라는 남자 손님들도 많았었지요”
꼼꼼하고 정성어린 솜씨에다 서울 멋쟁이들이 죄다 몰려 들었던 명동거리다보니 그럴 만도 했다.
그렇게 30년 넘게 구두수선공으로 일했다. 한 때는 직원이 25명까지 늘었다. 유명 명품판매점이며 백화점, 심지어 대기업조차 그를 찾을 정도에 이르렀다.
수선할 물건을 해외까지 보내는 것이 마뜩찮은 고객들도 자주 왔다. 가죽염색약 냄새가 어찌나 독하던지 코가 얼얼할 정도였지만, 묵묵히 견뎌내며 감쪽같이 고쳐냈다.
마침내 ‘수입 명품 AS 전문점’으로 자리잡았다. 지금은 딸에게 물려줘 여전히 성업 중이다.
김 할아버지는 나이탓에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아내도 건강이 좋지 못하다. “자식들은 다 여웠고, 더 해줄 것도 없어요. 죽기 전에 고향의 명문대인 전남대를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예요.”
큰 돈을 기부하기에 학생들에게 한 마디쯤 당부할 말이 있을 법하지만, 없단다.
“그저 학생들이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하게 성장해 주면 좋죠. 많은 돈도 아닌데, 학교에서 극진하게 예우해주니 고맙기 그지 없다”며 겸손해하며 웃음지었다.
정병석 전남대 총장은 20일 “어르신의 고귀한 뜻과 기부금의 의미를 잘 살려 한푼도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할 것”이라며 “오직 학생들을 더 열심히 가르쳐 훌륭한 인재로 키워내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전남대는 김 할아버지에게 감사패를 드렸지만 기부의 참 뜻을 기리는 다른 방안도 모색하기로 했다.
/정옥균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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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h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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