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받은 축복 중 작은 부분이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투자해보자. 우리가 누리는 축복의 씨앗은 내 안에 있을 땐 씨앗으로 남게 되지만 누군가와 나누면 꽃을 피우게 되고 또다시 누군가에게 전해져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섬김’의 씨앗이다. 그러기에 지금 바로 작은 것이라도 나누어 보자. 수십 배의 결실을 보게 될 것이다.
어떤 여인이 새로 문을 연 가게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 가게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신이었다. 여인은 신에게 물었다. “이 가게는 무엇을 팝니까?” 신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당신이 원하는 것 무엇이든지 얘기하십시오.”
여인은 놀라서 한참 생각하다가 사랑과 지혜와 행복의 열매를 사겠습니다.” 신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미안하지만 이 가게는 열매만은 없습니다. 오직 씨앗만을 팝니다.”
씨 안에는 그 생명체의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즉, 발육 과정, 속도, 형태, 그리고 그 개체가 어떻게 생기고 어느 정도 자라야 하는지 그 본성과 열매까지 말이다. 샌프란시스코 로스 알데. 힐이라는 마을에 약 오십 마일의 거리를 매일 오가며 우편물을 배달하는 요한이라는 젊은 집배원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마을로 이어진 거리에서 모래 먼지가 뿌옇게 이는 것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비가와도 바람이 불어도 내가 다녀야 하는 길인데 풀도 꽃 한 송이도 없는 황폐한 모랫길이라니! 평생 흙먼지만 마시고 다니다가 황막하게 인생이 끝나버린단 말인가?”
그러다가 “어차피 나에게 주어진 삶인데 구경만 할 수는 없잖은가? 황폐한 곳을 아름답게 만들어 보자”
그는 다음날부터 우편배달 하러 오가는 동안 주머니에 들꽃 씨앗을 넣고 다니면서 하루도 쉬지 않고 짬짬이 거리에 뿌렸다. 이렇게 여러 해가 지나자 그가 걸어 다니는 길 양쪽에는 봄이면 봄꽃들이 여름에는 여름꽃들이 가을이면 가을꽃들이 다투어 피어나 그가 가는 길을 환영해주었다. 꽃들을 바라보며 달릴 때마다 요한은 자기의 삶이 풍요롭고 행복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 긴 꽃길에서 휘파람을 불며 우편배달을 하는 요한의 뒷모습을 보다가 자기들도 주머니에 꽃씨를 넣어서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참 아름다운 이야기다.
한인들이 러시아로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863년.
한인들은 부지런하고 적응력이 강했다. 러시아는 한인들을 이용해 연해주 일대 미개간지를 개척하게 하고는 여러 가지 이유를 내세워 개간지를 빼앗고 1937년부터는 중앙아시아 미개간지로 추방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타슈켄트까지의 조선인 강제이송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부동산은 물론 동산, 가축 한 마리도 가져갈 수 없었다.
40일 동안 기차를 타고 카자흐스탄의 집 한 채 없는 허허벌판에 버려진 한인들은 땅굴을 팠고 민들레와 야생식물로 배를 채웠다. 그리고 가지고 가져온 밀과 귀리와 완두콩을 심었다. 이 씨앗이 열매를 맺기 시작했을 때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난생처음 보는 농산물에 놀라워했다.
한인들이 가져간 한 줌의 작은 씨앗 속에는 당장 먹을 수 있는 한 자루의 식량과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생명력이 담겨 있었고 상상할 수 없는 미래를 약속해 주었다.
도토리 한 알 속에 참나무 숲이 담겨 있고 수박 씨앗 속에 수천의 수박이 담겨 있다. 수박씨는 자신보다 20만 배나 되는 무게를 뚫고 땅 밖으로 올라온다고 한다.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온 야생초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씨앗은 어떤 환경에서도 그 환경을 극복해 내려는 무한한 생명의 에너지와 폭발하려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 씨앗은 생명이며 인내요 사랑이며 미래의 이야기다.
씨앗은 고통 중에 성장하고 아픔 중에 변화한다.
씨앗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땅에 떨어지는 아픔을 경험해야 한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아픔 없이는 풍성한 열매도 없다. 또한, 씨앗은 땅속에 감춰지는 아픔을 먼저 경험해야 한다. 싹이 나기 전에 드러나면 태양 볕에 말라 죽든지 새가 와서 먹어버린다. 그리고 씨앗은 깨어지는 아픔을 경험해야 한다.
씨앗의 생명은 껍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씨눈에 있으므로 씨눈이 먼저 깨어지고 껍질이 벗겨져야 그 속에 담긴 생명이 힘을 발휘하게 된다. 깨어지는 아픔이 씨앗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씨앗이 이런 과정이 싫다고 한다면 한 알 씨앗으로 끝이 나고 마는데 이런 과정을 고스란히 지나면 주위에 엄청난 열매와 기쁨을 선물하고 풍성하게 해준다.
우리는 씨앗을 심기 전에 어떤 씨앗을 심어야 할 것인가를 진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자신이 버려지고 깨어져서 다른 사람들에게 미래와 따뜻함을 주는 ‘섬김’의 씨앗을 심는다면 생명의 열매를 듬뿍 얻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리라.
그러나 자신만을 위한 씨앗을 심으면 씨앗 한 알로 의미 없이 사라지든지 범죄와 그에 따른 형벌로 마무리될 것이다.
씨앗과 열매는 분리될 수가 없다. 하나다. 결과가 이미 원인 속에 잠재된 것처럼 말이다.
유대 격언에 이런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향수를 뿌리는 것과 같다….” 다른 사람에게 향수를 뿌릴 때 나에게도 몇 방울의 향수가 떨어지니까.
하나의 촛불로 다른 초에 불을 붙이려고 할 때 빛을 나누어 준다고 잃는 것이 있는가? 불은 나누어 주어도 잃지 않고 오히려 그 밝기가 두 배로 늘어난다.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지구촌에 정말 많다.
이럴 때일수록 나눔의 씨앗을 심고 긍정의 향수를 뿌려주고 내게 있는 촛불을 붙여주어 더 밝은 세상을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