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인해 공연계가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
국내 확진자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의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선언으로, 경계심을 늦출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4월에도 공연계에 춘궁기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코로나 19 유행으로 가장 피해를 입는 건 내한공연이다. 그리스 출신 스타 지휘자 테오도르 쿠렌치스가 이끄는 ‘무지카 에테르나’의 4월 롯데콘서트홀에서 예정됐던 첫 내한공연이 끝내 무산됐다.
오케스트라 측은 “입국 후 의무적 자가 격리와 같은 입국 제한 조치 때문에 한국 투어가 불가능해졌다”고 했다.
해외 초청 공연도 취소됐다.
서울예술단은 대만 가오슝 웨이우잉 국가예술문화센터의 초청으로 5월 ‘신과함께_저승편’과 ‘신과함께_이승편’을 공연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19의 세계적 확산으로 인해 무산됐다.
이달 말까지 대다수의 공연을 취소한 국립공연기관과 국립예술단체도 4월에 예정한 공연도 취소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국공립은 정부의 지원 등 최소한의 안전망이 있으니 그래도 버틸 수 있다.
문제는 민간 영역이다. 이달까지 ‘사회적 거리두기’에 상당수 동참한 공연계는 4월 기지개를 준비해왔다. 공연은 이들에게 생계와 직결된다. 회사원처럼 재택근무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실제적인 대책 없이 이들에게 공연 중단만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일부 스태프는 최근 택배 배송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뮤지컬은 상업적이라는 편견 때문에 정부 지원에서도 항상 뒷전이다. 무턱대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더구나 요즘 대학로 공연의 상당수가 뮤지컬 작품 종사자다.
이달 초 공연을 중단했던 대학로 소극장 공연 관계자는 “이달 말에 공연을 재개하려고 한다. 관객이 예전만큼 들지는 않겠지만, 가만히 있는 스태프와 배우들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다. 홍보는 적극적으로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방역, 소독 등을 철저하게 하겠다”고 전했다.
일부에서는 팬데믹에 따른 장기전을 대비하고 있다. 현재 공연은 중단했지만, 차기 공연 준비를 위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4월 시행을 목표로 준비 중인 ‘공연예술단체 대상 대관료 지원정책’에 대비하는 제작사들도 상당수다.
무엇보다 공연 협회나 단체 차원에서 재발할 수 있는 코로나 19 같은 사태에 대비 가능한 매뉴얼을 만들기 위해 준비에 한창이다. 이유리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은 “뮤지컬은 공연계에서 별도 장르처럼 여겨져 제대로 된 피해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뮤지컬의 산업적 특성을 분명히 하고, 재난에 대비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겠다”고 했다.
코로나 19 여파로 피해를 보는 것은 국내 공연계뿐만 아니다. 코로나19 확산의 새로운 진원지가 된 유럽에서는 잇따라 공연이 취소되고 있다. 지난 12~14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사이먼 래틀 지휘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은 무관중 온라인 중계로 진행됐다. 베를린필은 약 한달간 공연을 중단했다.
내달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18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예선도 9월로 연기됐다. 5년 만에 열리는 세계적인 피아노 경연 대회로, 지난 대회인 2015년에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우승해서 스타덤에 올랐다. 올해는 한국인 연주자 16명이 예선에 진출해 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격히 늘고 있는 북아메리카에서도 공연들이 잇따라 연기되거나 취소되고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카네키홀 등이 잠정 폐쇄됐고 뉴욕필하모닉 등이 공연을 중단하기로 했다. 뉴욕의 대표적인 공연 명물인 브로드웨이도 한달간 중단한다.
글로벌 시대로 접어들면서 공연 단체의 월드투어 공연이 잦아지고, 트렌드가 각국에 빨리 반영되는 만큼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공연계 찬바람이 국내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이와 함께 코로나 19 시국을 맞아 에티켓과 온라인 중계 등이 주목 받고 있다.
지난 5일(현지시각) 미국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한 뒤 조성진이 지휘자 한누 린투와 ‘주먹 인사’(피스트 범프)를 하는 장면은 코로나 시국과 맞물려 소셜 미디어에서 회자됐다. 보스턴 매거진은 이 장면이 담긴 사진을 메인으로 사용하며 “코로나 바이러스 시기에 적절한 에티켓”이라고 평했다.
코로나 19로 인해 국내처럼 해외에서도 온라인 중계가 각광 받고 있기도 하다. 베를린필의 ‘디지털 콘서트홀(Digital Concert Hall)’이 대표적이다.
앞서 2008년 베를린필은 세계 최초로 오케스트라 공연 실황을 인터넷으로 중계, 업계 안팎으로 주목 받았다. 코로나 19 시국에 맞아 한달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쿠폰을 네티즌들에게 배부, 호응을 얻고 있다. 국내에서는 서울시향,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서울돈화문국악당 등이 온라인 중계를 하고 있다.
/이종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