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금융 중심도시 홍콩 민주화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중국의 인민해방군 투입으로 제2천안문 유혈 사태가 우려되었으나 금융 허브 홍콩의 몰락이 가져올 중국 경제력의 약화, 막바지에 접어든 미중간의 무역협상, 미 상하원의 홍콩 인권법이 시진핑주석의 극단적인 선택을 막아 극한 대립은 피했다.
지난3월31일 1만2,000명으로 시작된 홍콩 시위는 시위 초기부터 친 중국파와 홍콩 민주화 지지측 양편으로 갈려 홍콩 내부에서도 지지자들간에 갈등을 빚었다. 이 같은 영향이 한국 내 중국과 홍콩 유학생,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한국 대학생들과의 마찰로 이어졌다.
2016년 촛불혁명을 경험한 국내 대학생들이 대자보를 통해 홍콩 민주화 시위의 적극 지지의사를 표시하면서 중국 유학생들이 대자보를 훼손하거나 노골적으로 시비를 걸면서 도를 넘어섰다.
국내 중국 유학생이 약 7만명정도라고 한다. 이들은 시진핑주석의 애국주의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로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성화의 서울 봉송 당시 중국 공산당의 티베트 탄압에 항의하는 서울시민들에게 중국 유학생들이 돌을 던지고 쇠파이프를 휘둘려 충격을 줬다.
국내 중국 유학생들의 모임이 각 대학별로 조직되어 중국대사관이나 영사관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중국 유학생들이 각 대학에서 홍콩 민주화 시위 지지에 대해 조직적으로 횡포가 가능했던 이유이다.
지난8일 주차장 3층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은 홍콩 과기대생 차오츠록(22)이 사망하고 이를 추모하던 시위대 2명에게 홍콩 경찰이 실탄 3발을 발사해 2명이 총상을 입으면서 중국군의 개입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지난3월 송환법 반대 시위로 시작된 홍콩 민주화 운동은 지난6월9일 100만명의 시민이 참여하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나 중국 인민해방군이 홍콩 인근 지역에 집결하면서 제2 천안문 유혈사태가 우려되었으나 국제적인 여론의 악화 등을 염려한 시진핑주석이 군 투입보다는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선회했다.
시 주석이 경찰 진압으로 선회한 이유는 미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수입품에 대한 보복성 관세로 타격을 받은 시진핑주석이 공들여 온 미중간 무역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렀고 인민해방군 투입을 반대한 미국의 경고를 무시하지 못했다.
특히 21세기 금융 허브도시 홍콩을 통해 중국이 외자 유입의 통로로 활용하면서 직접적인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고 있는 중국이 인민 해방군 투입으로 금융 허브도시 홍콩의 안정적인 이미지와 장점이 사라지고 유혈사태로 불안한 국제자본들이 대거 홍콩을 떠나 금융도시로 기능 상실이 가져올 중국 경제의 어려움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는 미국 상하원을 통과한 홍콩 인권민주법으로 홍콩의 인권 상황에 따라 관세와 투자 우대 혜택을 축소하겠다는 법이다. 또 중국 정부의 무력진압을 막기 위한 조치로 최루탄과 마취총의 수출을 막는 법도 상하원 만장일치로 통과시킴으로서 중국정부의 입지가 약해졌다는 것이다.
24일 치뤄진 구의원 선거 결과 전체 구의원452석중 홍콩 민주화 시위를 주도했던 범민주계열이 278석을 차지해 과반의석을 확보하는 압승을 거뒀는데 반해 기존 327석인 친중국파는 42석으로 몰랐했다.
구의원 452명중 117명이 행정장관을 선출하는 선거인단1,200명에 포함되어 행정장관 간접선거 결과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특히 이번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계열의 압승은 홍콩 시민들이 민주화 시위를 지지한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보임으로서 홍콩의 민주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홍콩 민주화 시위에 앞장서고 있는 ‘민간 인권전선’은 현재 송환법 철회와 행정관 직선제,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구속중인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경찰의 강경 진압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 등 5가지 항에 대해 홍콩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범민주게열의 구의원 선거 압승으로 홍콩의 민주화 시위가 또 다른 국면으로 전환이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의 강경 진압에 대한 조사등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수면아래로 가라 앉은 민심이 응축된 폭발력으로 나타날 것이다. 홍콩의 민주화가 천안문의 민주화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무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