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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함에 귀 기울이면 놓친 것이 보인다
최창일 시인·문화이미지심리학자
작성 : 2019년 11월 19일(화) 16:23 가+가-

‘한 방울의 물’에 잔이 넘친다는 말은 물리학이 아니고 현실이다. 칠레 산티아고는 세계인이 친숙하게 생각하는 순례자의 길이 있는 나라다. 그 나라가 요즘 광화문 광장의 촛불과 같은 작은 저항의 나비효과에 세계가 놀라고 있다.
LA 타임스에 따르면 칠레의 시위는 한 중학생이 시작 했다.
칠레 정부는 지난 6일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 요금을 30페소(50원) 인상한다고 발표하자 이 학생은 소셜미디어(SNS)에 “티켓을 내지 않고 지하철 회전문을 뛰어오르자”는 기특한 제안을 한다. 지하철 공짜탑승 운동은 전국으로 번져 국가를 흔들었다. 100만명이 넘는 성난 주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최소 17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다쳤으며 7000여명이 체포됐다.
수도 산티아고에서 11월·2월에 각각 예정됐던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제25차 유엔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 25)가 취소됐다. 경제 피해는 14억달러.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고 군사독재 시절에나 있던 야간 통행금지령이 발동됐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정부는 결국 지난 10일 상·하원 지도부와 회의를 갖고 시위대가 요구한 개헌 작업에 돌입했다.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에 화난 중학생의 SNS 제안이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사독재 시절에 만들어진 신자유주의 헌법 개정의 50년 한을 풀게 한 셈이다.
세계가 전에 보지 못한, 작은 분노와 작은 연대에서 촉발되고 있다. 포퓰리즘은 증오의 연대를 먹고 자란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지구촌의 각양각색의 시위도 전혀 새롭지 않은 뉴스의 일부분이 될 수 있다.
생명체가 그렇듯 언론매체도 유전자(DNA)가 있다. 부정선거 논란으로 거센 시위가 이어진 볼리비아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은 사퇴결정 하루 만에 멕시코로 망명 했다. 에콰도르 레닌 모레노 대통령은 유류 보조금 폐지결정 철회 등 시위대 요구를 전폭 수용했다.
인접한 레바논도 격렬한 시위대에 손을 들었다.
사드 하리리 총리는 사퇴를 하며 아랍 국가들에 경제위기 극복도움 요청을 하였다. 이라크의 아딜 압둘마호디 총리도 사퇴의사를 발표했다. 오랫동안 부패와 생활고에 시달린 시민의 불만에 정부가 손을 들고 말았다. 알제리의 압델라지즈 부데폴리카 대통령도 사임 하였다. 모두가 시민들이 지도자에 대한 불만으로 나타난 현상들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의 시위현상과 최근의 시위현상을 한 묶음으로 의미를 부여한 사람은 프랑스의 국제정치학자 베르트랑 바디 교수다. 바디 교수는 마술 같은 해법을 내놓지는 않았다. 그러나 최근 접한 견해 중 가장 웅숭깊은 분석을 제시했다. 그는 지구촌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지는 현상에 ‘세계화 II막 시대의 개막’이라는 흥미로운 제목을 붙이고 있다. 파리 정치대학 명예교수인 그는 지난 8일 르몽드 대담에서 각국의 시위는 각기 다른 배경에서 비롯됐지만, ‘인민의 귀환’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세계화는 만능열쇠처럼 모든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이 경우엔 너무도 자명하다는 말이다. 바디 교수는 시위의 전염성을 세계화의 3대 징후로 풀었다. 3대 징후의 첫 번째는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외면하고 사는 사람들이 드물 정도로 서로 엮인 사회라는 점에서 ‘포함(inclusion)’을 들었다. 두 번째는 한 나라에서의 집단의사 표출이 다른 나라로 전파돼 영향을 미치는 상호 의존성이다.
마지막으로 각국 사회를 연결하는 SNS의 유동성이다.
대표적인 나라가 한국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의 시민주장은 폭력이 없다는 점이다. 칠레는 폭동을 넘어 내전으로 치닫고 있다. 멕시코로 망명한 대통령의 지지자와 좌우로 나누어 격렬한 폭동으로 번지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만연한 프랑스에서도 폭력시위는 어쩔 수 없는 격렬한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세상인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멀리 갈 필요가 없다. 한국의 현실이다.
분단이 배태(胚胎)한 뒤틀린 증오와 순진한 열정이 섞여서 혼란케 한다.
아무리 복잡하고, 혼돈이라 해도 고요함에 귀 기울이면 그제야 놓친 것들이 보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르몽드가 인터뷰한 바디 교수의 말처럼 ‘한 방울의 물’이 결국 넘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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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h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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