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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문화시대
김철수 아동문학가·美솔로몬대학교한국학장
작성 : 2017년 10월 22일(일) 17:29 가+가-
문화의 달 10월이다. 요즘 전국 방방곡곡에서 열리는 문화축제로 인해 형형색색으로 물들어가는 단풍과 함께 삼천리금수강산이 더욱 화려하기만 하다.
지난 20일부터 오는 11월까지 나비의 고장 함평에서는 제30회 함평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특히 첫날 2017 문화포럼은 개군 608년이란 오랜 세월동안 함평이 낳은 걸출한 문인들과 그들의 작품세계를 고대와 현대문학으로 나누어 총 정리하는 뜻깊은 행사를 가졌다.
이날 강연장을 꽉 메운 함평문화원 200여 회원들과 각급 기관장들은 이 지역 출신 아동문학가 김철수 박사가 준비한 주제 강연을 경청하면서 다시 한 번 함평(咸平)이 의향과 문향임을 재확인하고 긍지를 되새기는 보람된 시간을 가졌다.
문학(文學)이란 무엇인가? 간단명료하게 정의한다면 사람의 정서나 사상을 각기 상상의 힘을 빌려서 작품으로 나타낸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인류역사는 이 문학과 함께 발전 성장해왔으며 어떤 나라를 선진국인가 후진국인가를 평가할 때도 문화예술에 대한 성숙도가 얼마나 높은지가 중요한 기준으로 반영되고 있다.
흔히 ‘예술은 물질과는 아무상관이 없고 실생활에는 직접적인 소득이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물질만능주위에 함몰돼 찬밥신세가 되고 있다.
그래서 이 땅의 문인들은 ‘문학이 밥 먹여주느냐?’는 비아냥이나 핀잔을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들로부터 들어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근대 문학사에 등장하는 월북시인 백석(白石, 1912~1995)의 시 가운데 <이루지 못할 사랑>이란 시가 있다.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이하 생략) 라는 이 시는 한 줄에 우리 돈 1,000억 원짜리 이다.
이 시의 주인공 ‘나타샤’는 자야(子夜,1919~1999)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여인인데 열여섯이라는 어린나이에 조선 권번(券番)에 들어가 기생이 되었다.
1930년 시인 백석이 함흥에서 영어교사를 하던 시절 교사들의 회식자리에서 자야는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신분이 다른 두 사람은 서로 사랑을 하게 된다.
백석의 부모는 이 둘을 떼어놓기 위해 서둘러 백석을 다른 여자와 결혼시켜버렸지만 백석에게는 오로지 자야뿐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꽃을 피우지 못한 채 남과 북이 분단됨에 따라 비련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그 후 8·15 해방이 후 중앙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자야는 세월이 흘러 70이 넘은 나이에 ‘백석, 내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을 잡지에 기고하기도 했고 그녀는 젊은 날 백석에게 당 시선 집(糖 詩選集)을 선물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백(李白)의 시에 나오는 ‘자야’라는 이름으로 불렀는데 본명은 김영한이었다.
그녀는 80년대 말까지 서울에서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요정으로 불리던 대원각의 주인이 되어 운영을 하다가 당시 시가로 1,000억 원대에 이르는 이 요정을 법정 승려에게 기부함으로 오늘날 길상사라는 사찰이 세워지게 되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 “기부한 1,000억 원대에 이르는 전 재산인 대원각이 아깝지 않았느냐? 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을 했다. “이까짓 1,000억 원은 그 사람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이것이 예술이요 문학의 값어치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세계적인 시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미국의 유명한 시인 롱펠로우가 무명시절 때였다.
그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운데서 시를 쓰고 있자니 가난은 늘 그를 괴롭혀 어떤 때는 끼니조차 때우지 못할 때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롱펠로우는 집근처 가까운 곳에 있는 식당에 찾아가 음식을 주문해서 먹었지만 지갑 속에는 돈이 한 푼도 없었다.
그래서 식사를 마친 롱펠로우는 메모지를 달라고 한 후 한 편의 짧은 시를 즉석에서 짓더니 시가 완성되자 식당주인을 불렀다.
롱펠로우는 식당주인의 귀에 대고 조용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이 식당의 음식은 너무나 맛이 있고 훌륭했으며 종업원도 친절했는데 제가 오늘 음식 값을 마쳐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쓴 시 한편을 음식 값으로 대신하고 싶은데 허락해주시겠습니까?” 그러자 식당주인은 롱펠로우의 제안에 좋다며 그렇게 하자고 흔쾌히 허락을 했다.
롱펠로우가 식당에서 메모지에 즉석에서 지은 시를 받아 자기 엘범 속에 넣어 간직했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그 사이 롱펠로우는 유명한 시인이 되었고 그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작품은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예술품경매시장에 나와 거래기 이루어졌다. 이 소식을 접하게 된 식당주인은 이제까지 자기 엘범 속에 넣어 간직해두었던 롱펠로우의 친필 시를 경매장에 내놓았는데 무려 우리 돈으로 15억 6천만 원에 팔리게 되었다.
한 끼 아침식사 값으로 대신 받은 시 한 편의 가격은 식당주인이 평생 동안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살만한 노후대책이 된 셈이다. 이것이 문화요 문학의 값어치이다. 지금은 문화시대다. 문화가 밥 먹여주고 문학이 가장 원자재 값이 싼 상품인 것이다. 문화국가, 문화국민이 선진국으로 가는 첩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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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h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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