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전업 작가는 직업이 될 수 있을까. 특히 시인도 직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최근 블랙리스트가 문제로 부각되며 예술가에게 정부 지원금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는 예술인도 있다. 그 만큼 예술가에게 지원금은 투명하지 못했다.
문인협회의 회원은 1만3천여 명이다.
시 분과에는 8천여 명이다. 최근 5년간 단행본에 올린 시인은 총 653명에 이른다.
신춘문예, 문예지에 공모하여 등단하는 시인은 30~40여명이다.
수년간 공부하고 수백 대1일의 신춘문예 등단했어도 시인의 생은 고단하다.
이런 것을 두고 사각지대에 놓인 것이라고 할까. 서울시 지하철유리벽에 게재된 시는 1천여 개에 이른다.
여기에 게재된 고료는 5만 여원이 된다. 시인은 게재된 시가 시민에게 위로가 되고 생의 방향이 된다는 점에 고료보다는 더 큰 보람으로 여긴다.
시집을 내는 경우도 자비 출판이 95%를 넘는다. 5%남짓이 출판사에 의하여 출판이 된다. 전업시인은 불과 5% 남짓도 후한 통계다.
문인의 사각지대에 놓인 것은 지금까지 정치권이나 정책당국이 관심 밖이었다.
지원 단체는 정치권과 선이 닺는 단체만이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은 문인들의 공공연한 비밀처럼 알려진 현실이다.
대표적으로 이명박 당시 서울 시장은 시울시 문화재단을 만들고 상당한 예산을 지출한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정연희 소설가는 재단 이사장이었다. 배우 유인촌이 대표였다.
이명박 시장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유인촌은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 이렇듯 예술가에게는 정치권과 연관이 된 단체만이 상당한 지원을 받게 된다.
그래서 블랙리스트는 어느 정권이나 있었다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다르다면 이전의 정권들은 블랙리스트를 만들지 않고 불이익을 주지 않았다. 단 친 정부적 단체중심 지원 되었다.
문인이 되려면 대학교의 문창과에 입학을 하나 취업을 한다는 것은 요원한 현실이다.
대학, 대학원 포함 71개교 중 23개교가 문창과를 없애거나 다른 과로 통합시켰다. 학생들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를 쓰려고 해도 집중이 안 된다’ 말한다.
적은 액수나마 정부지원을 받으려 해도 진입장벽은 높은 것이 아니라 아예 무실한 상황이다.
대선후보자는 이번 블랙리스트를 교훈으로 삼아 문학의 르네상스를 위하여 공약을 만들기 바란다.
예술인을 위한 정부기관에 기구를 만들어 야 한다. 기구는 문인단체나 정부의 부속기관에 두되 감사원급 기능을 갖추어야 한다. 지금의 지자제 속한 각종 예술단체의 기능은 매우 불협한 경우다.
한국을 대표하는 한국문인협회의 경우를 보아도 정부의 지원은 고작 1억원 남짓이다. 문인협회가 만드는 두 개의 월간, 계간지를 만들기에도 부족한 금액이다.
지원의 구체적 방법은, 첫째 개인 창작집을 갖고 있거나 10년 이상 된 장기 예술인을 우선으로 지원한다.
둘째 지자제가 운영하는 각종 예술 건물에 10년 이상 된 예술인들에게 창작활동을 위한 공간을 확보해 준다.
셋째 20년이 넘은 예술인의 안전망을 위한 의료보험혜택을 마련한다.
넷째 40년이 넘은 예술인에게 연금을 지원한다.
다섯째 20년이 넘은 예술분야 정기간행물에 제작비를 지원한다. 이 같은 예술정책을 펼친다 해도 재정의 편성은 크지 않는 부분이다.
그 나라의 예술이 미치는 영향은 우주의 무한함과 같은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대선후보자라면, 예술이 가진 문화적 잠재력을 외면하면 정치도 실패한다. 최근 한국을 이끈 한류의 문화가 이끈 힘은 크고도 넘친다. 지난해 한강 소설가가 맨부커 상으로 문화의 위상을 높임이 대표적이다. 나아가서 K팝이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것은 한국의 상품선호도와 무관하지 않다.
200년 전 추사김정희의 시대에 독일의 칸트는 세계적인 철학자로 그 명성을 알린다.
우리나라의 추사 김정희는 칸트와 비교가 되지 않을 학문적 역량을 쌓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추사와 칸트는 비교가 될 뿐이다. 추사는 당시 대학에 가까운 제자 3천명을 두었다.
당시의 시대상으로 세계 어느 나라에서 이룰 수 없는 지적 태도의 추앙이었다. 그럼에도 오늘의 칸트와 추사는 비교가 되는 것은 현실이다. 이것은 국력이고 정부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