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백지신탁’제도, 후퇴해서는 안 돼!
이창용 논설위원
작성 : 2024년 10월 28일(월) 17:00 가+가-

서울시 모 구청장이 취임 2년 만에 자진해서 사퇴한다는 소식이다. 자진사퇴 이유는 구청장 취임 전 자신 소유 회사의 170억 원어치 주식 백지신탁과 관련된 행정소송 2심에서 패소한 뒤 상고했으나 대법원이 기각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재산을 지키기 위해 사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청장은 2023년 3월 본인이 설립·운영해온 ㈜문엔지니어링 주식 4만 8000주에 대해 정부가 “직무 관련성이 있다”며 백지 신탁하라는 결정을 내리자, 주식백지신탁심사위원회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백지신탁은 공직자가 직무 관련 주식을 보유한 경우 직무수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공·사적 이해 충돌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하고, 직무수행의 공정성과 중립성 확보를 위해 실시하는 제도다.
2022년 6·1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이후에도 회사 주식 4만 8000주를 처분하지 않고 있다가 이듬해 3월 주식백지신탁심사위원회(인사혁신처)로부터 “직무 관련성이 있다”며 백지신탁 결정 처분을 받았다. 구청장은 소송 과정에서 “회사 정관을 바꾸고 본점을 구로구가 아닌 금천구로 이전했다”라는 등의 이유를 대며 직무관련성 결정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구청장 지위에서 행하는 엔지니어링 사업에 관한 업무를 통해 회사의 경영 또는 재산상 권리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유지했고 대법원 판결도 조만간 나올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과도한 사유재산권 침해라는 논쟁이 있다. 공직생활을 해 왔던 필자의 견해로는 사유재산권 침해가 아니라 “청렴”이라는 덕목을 큰 가치로 내세웠던 당초의 좋은 취지를 몰이해하는 선출직으로서 보궐선거까지 해야 하는 재산상의 큰 피해를 국가에 입혔기 때문에 오히려 구상 권을 청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작은 지역의 선출직이지만 이런 정도도 검토하지 않은 채 출마했다면 물질적으로 여유 있는 자들의 욕망이 봉사를 뛰어 넘어 사적물욕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사회에서 한편 이해는 할 수 있지만 나라의 미래는 암울하다. 제도정착을 위해 후퇴하는 논쟁이 계속 돼서는 안 된다.
공직자 주식 백지 신탁 제도란? 공직자가 재임 기간 중 일정 금액 이상의 주식을 보유할 경우, 해당 주식을 전문 기관에 맡기고 운용, 처분하도록 의무화 한 제도이다. 이는 공직자의 직무 수행을 공정하게 하고 직업윤리를 지키기 위한 취지로 도입되었다. 신탁 대상자는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국회의원, 광역자치단체장 및 교육감, 중앙행정기관의 장 등 고위 공무원단에 속하는 공무원 그리고 지방 자치 단체의 정무직 공무원들이 해당된다.
또한 헌법재판소 재판관, 법관, 검사, 경찰공무원, 소방공무원, 교육 공무원 등도 신탁 대상자에 포함된다. 신탁 계약 체결 시 2개월 이내에 소유 주식 내역을 신고해야 하며 공개 입찰 방식 또는 백지 신탁 회사를 통해 매각 절차를 밟아야 한다. 만약 신탁회사가 1개월 이내에 매각이 어려운 경우에는 6개월 내에 공개매각하거나 법원에 직무관련성 심사를 청구하여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공직자는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부적절한 거래 행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백지신탁제도 도입 배경에는 과거에 공직자의 이해충돌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기 때문이었다. 특히, 고위공직자들이 자신이 소유한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특정 기업에 특혜를 주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5년 ‘공직자윤리법’ 개정을 통해 백지신탁제도가 도입되었다.
이후 2022년에는 기존의 백지신탁제도를 보완하여 ‘이해충돌방지법’이 제정되었다. 이에 따라 백지신탁 의무 이행 공직자는 백지신탁계약 체결일로부터 2개월 이내에 신탁재산 운용계획서를 작성하여 수탁기관에 제출해야 한다. 이때, 위탁자는 신탁재산의 운용 방법 및 계획을 제시하게 된다. 이후 1년마다 정기적으로 운용보고서를 받아보게 되며, 매년 말까지 성과평가를 위한 포트폴리오 재조정을 해야 한다. 그리고 신탁 종료 시에는 수익증권 명세서를 제공받는 등 신탁기관이 주식을 관리해 주는 제도다.
백지신탁 제도가 공직자들의 청렴의 아이콘으로 확실한 자리를 잡아가기 위해서는 국민을 향한 확실한 메시지, 즉, 주식백지신탁제도가 실효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과감한 개선이 필요하다. 첫째, 이행을 하지 않을 경우나 규정을 위반할 때에는 처벌 규정을 현행보다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열거하여 가시적인 처벌이 되도록 법 운영을 철저히 하여야 한다. 둘째, 별도의 감시 기구를 사법부 산하에 두어서 운영한다면 정부의 입김에서 벗어난 객관적인 평가, 합리적인 운영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제도는 주식을 내놓으라는 반 사유재산권이 아닌 관리를 신탁기관에 맡기는 것으로서 청렴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정착되었을 때 신뢰사회로 가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후퇴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