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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안중근의 정신을 같이한 총구
최창일 시인·이미지 평론가·<시화무> 저자
작성 : 2022년 11월 29일(화) 16:55 가+가-
붉은 물방울이 맺힐 것 같다. 이렇게 옥수수 잎에 내리는 짙은 안개비를 본 적이 없다. 자전거 탄 소녀의 등 뒤에 하얀 알갱이들이 소용돌이 일으킨다. 새벽 가로수가 은행잎 수거하는 청소부에 만종(晩鐘)처럼 인사한다. 날씨는 사람들의 기질에 영향을 준다. 바그너, 괴테가 가을 안개의 우수를 이기지 못하여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다.
바바리코트의 시인 박인환이 목마와 숙녀를 만난다. 버지니아 울프를 위하여 가을 강가로 목마를 보낸다. 가을은 신열(身熱)의 시간이다. 국화꽃 향기도 신열 속에 향기를 더한다.
사람들은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마주하며, 삶이 가르쳐주는 것들 꺼내 든다. 작가 김훈은 10년이 넘도록 청년 안중근을 <하얼빈>에 세워 두었다. 안중근을 만나는 청년들의 가슴엔 안개비가 처연히 내려앉는다. 서점가에 <하얼빈>은 굳세게 인기순위를 지킨다.
소설의 안중근은 체포된 후 일본인 검찰관 심문에서 자신의 직업을 ‘포수’라 말했다. 기소된 후 재판정에서 ‘무직’이라 말했다. 시대의 악과 싸우는 안중근이 왜 직업을 ‘포수’라 했을까. 그리고 재판정에서는 ‘무직’이라 했을까. 조국의 안위를 걱정하는 청년의 기백을 말하려는 수단이 포수였을까?
조국의 용맹스러운 청년 안중근은 시대를 아우르는 세계사적 싸움의 중심에 섰다. 폭력과 야만에 홀로 섰다. 그의 ‘대의’는 동양, 아니 세계 평화였다. 그가 확보한 것은 고작 물리력 권총 한 자루였다. 실탄 일곱 발이 쟁여진 탄창 한 개. 그리고 강제로(소설을 읽어야 이해하게 됨) 빌린 여비 백 루블이 전부였다.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을 왜 이 가을, 김훈은 우리의 가슴에 정면으로 세웠을까. 그는 말하지 않았지만, 지금의 시간은 ‘시대의 불빛’이 필요했을 것이다. 김훈은 다른 소설을 쓰면서 청년 안중근을 틈틈이 자료와 기록을 남겼다. 김훈 작가도 나이가 들어간다. 김훈은 짧은 안중근의 생애가 뿜어내는 에너지를 더는 감당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작가는 변명처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말한다.
청년 안중근은 무게의 중력이 작가의 펜을 망설이게 하였을 수도 있다.
한국의 근대사는 참으로 다난하다. 한국의 청춘들은 늘 세계사의 사선에 서성인다.
한국의 근대사는 문명개화의 꿈에 매혹되었다. 제국주의 폭력에 밟혔다. 한국의 역사 개화는 서구화였다. 한국의 20세기는 감히 어느 나라도 번잡할 수 없는 추동력의 시간이었다.
작가 김훈의 필력은 늘 싱싱했다. 그가 안중근을 오래 붙잡고 있었던 것은 안중근에 대한 무게의 중심과 그와 같이하고 싶은 신중함도 있었을 것이다.
이 가을에 김훈 작가가 둘러보는 시대상은 하!~ 수상하다. 포효의 군중, 아니 정치인에게 청년 안중근이 말하는 ‘대의’를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포수 안중근이 약육강식 인간 세상의 운명을 조국에 아니, 세계사에 던지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시대 정신을 놓고 있지 않는가?. 지속 가능해야 할 정의를 잠시 놓아버리고 있다. 진리와 구도에 대한 길을 잃어버리고 있다. “무엇이 소중한디”의 할머니의 칼칼한 음성을 잃고 있다.
필요 이상의 논쟁들을 추구하거나 소모한다. 생존을 위하여 양식을 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치가 국민을 위하여 투쟁하고 토론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소모의 행위들은 무모하다.
안중근의 법정 발언은 무겁다. 나의 목적은 동양 평화이다. 무릇 세상에는 작은 벌레라도 자신의 생명과 재산의 안전을 도모하지 않을 것이 없다. 인간이 된 자는 이것을 위하여 전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토는 통감으로 한국에 온 이래 태황 제위를 폐위시키고 현 황제를 자기 부하처럼 부렸다. 또 타국민을 죽이는 것을 영웅으로 알고 한국의 평화를 어지럽히고 십수만 한국 인민을 죽이듯이 했다.
이토, 이자는 영웅이 아니다. 기회를 기다려 없애버리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하얼빈에서 기회를 얻었으므로 죽였다.
안중근의 당당한 법정 증언은 한치의 비굴함이 없다. 세상에 맨몸으로 맞선 ‘대의’의 안중근은 거역할 수 없는 역사에서 하나의 ‘빛’이었다. 빛은 이 땅에 거역한 자들의 빛이 될 수 없다. 세상에 맨몸으로 맞선 청년의 망설임과 고뇌, 그리고 투철한 투신, 짧기에 더욱 강렬했던 안중근의 하얼빈 여정은 한국인에게 정신의 빛이다.
김훈은 소설의 끄트머리를 이렇게 마무리한다. “안중근을 그 시대에 가두어 놓을 수 없다. ‘무직’이며 ’포수‘인 안중근은 약육강식하는 인간 세의 문명을 향해 끓임 없이 말을 걸어오고 있다. 안중근은 말하고 또 말한다. 안중근의 총은 그의 말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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