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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 빈곤은 하루속히 벗어나야 할 우리의 과제
이창용 前 순천대학교 외래교수
작성 : 2022년 11월 21일(월) 16:58 가+가-
최근 우리 사회를 한마디로 통칭하는 단어를 찾는다면 무엇일까? 우리 사회의 현실을 한마디로 대변하는 단어를 내놓으라 한다면 어떤 단어가 가장 많은 동의를 얻을 수 있을까? 흥미 있을 거 같기도 하고 막상 많은 사람들이 제시한, 현실 부합한 단어가 들어 났을 때 반응이 묘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희망적이면서 거저 좋은 단어 같으면 사용을 권장하고 확장시켜 나가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되어 버렸지! 하고 자조 섞인 말투와 함께, 그래, 그럴 거 같아, 정치하는 사람들 꼬락서니들 봐봐 그런 소리 들어도 싸지, 정치만 그래? 기업 하는 양반들도 잇속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지구가 병들고 힘들어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배분적 정의는 무늬만 갖추었지,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 반 푼어치나 생각 한 단가?…
반만년 우리 역사의 중심에는 공동체 의식이라는 이웃사랑의 든든한 정신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잦은 외세의 침입에도, 잘 살지 못해도 팥죽 같은 별거 아닌 음식도 특식이라고 이웃과 나눠먹은 훈훈함이, 모내기도 품앗이라는 현대판 네트워크로, 정신만큼은 풍요로움으로, 고난과 역경과 온갖 난관 속에서 도 이를 극복해온 우리들이었다. 그런데 자본주의와 능력주의, 선거에 의한 정치지도자들의 출연이 반복되면서 우리 사회는 어느 때부터인가 반목과 대립, 질시로 4분 5열 되어 서로 치열하게 다투는 서회가 되었고, 정치권은 매일 정쟁으로 싸움하는 일이 일상이 되어 지도자들의 정신 빈곤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우리의 미래 꿈나무들이 이런 것들을 보고 배울 거 같아 걱정이 태산 같다.
정신의 빈곤이라는 표현은 일찍이 찰스 핸디(1932년생 영국 옥스퍼드대 졸업)가 기업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서, 살면서 직함과 직업적 성공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가족과 친구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했다고 술회하고, 기업이라는 극단의 주인공 역할에 연연하느라 보다 완전한 인간이 되려는 노력에 소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기술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흰 돌(white stone)’이라고 명명한 것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흰 돌은 우리의 진짜 운명, 즉, 돈과 명예와 사회적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황에서 우리가 되고자 하는 모습인 ‘더 높은 자아(higher self)’를 상징한다.
그는 자본주의가 여러 가지 예기치 못하는 부작용을 드러내며 원래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미국에서는 부모가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30년 전에 비해 40%나 줄어들었다. 1인당 소비는 20년 새 45%나 증가했지만 삶의 질은 51%나 떨어졌다. 젊은 세대의 5분의 1은 앞으로도 잘 살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믿고 있으며, 정신의 빈곤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지속 가능한 발전이 이어져야 하는데, 현재의 추세로 미루어 볼 때 세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진단하고 있다.
특히 ‘우리 공동의 미래 보고서’를 작성한 그로 할렘 브룬트란트(1939년생 노르웨이 최초 여성 총리)도 현재의 추세로 미루어 볼 때, 세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현세대와 다음 세대를 지탱할 수 있을 정도로 자원을 확보하고 싶다면 지금의 추세를 뒤집는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우리 사회 현실에 비추어 보면 이는 단순히 기업에 대한 성찰을 뛰어넘어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정신의 빈곤 상태는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고 본다.
정치인들이 그렇고, 주주와 기업가들이 그렇고, 우리 사회 전반이 그렇다. 정신의 빈곤에서 벗어나려면 모든 분야에서 대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특정 개인이나 정당을 위한 정치가 아닌 국리민복을 위한 타협과 설득과 양보라는 통 큰 정치가 강한 의지로 뿌리를 내려야 비전을 공유할 수 있으며, 국민이 주인이 되는 대중민주주의와 그 이념을 바탕으로 하는 시민 참여형의 ‘시민기업’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개혁적인 제도의 뒷받침이 요구되고 있다.
더 나아가 미래의 공동목표를 향한 국제적인 공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공존 공생’의 시대정신을 실천해 나가야 한다.
정신의 빈곤함이 사회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 정치인들은 정쟁을 위한 비판과 폄훼에서, 국민의 공동목표를 위해 양보와 타협, 이해와 설득으로, 인내심을 키워야 하며, 기업인들은 개인이든 조직이든 돈 버는 것 이상의 목표를 추구하도록 타고났기 때문에 전적으로 이타적이기보다는 ‘적절히 이기적인’ 인간이 될 것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 각자 원대한 목표를 추구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환경은 탐욕 자본주의 주주 중심의 기업으로 인해 가치 있는 목표를 추구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최근에 도입된 사회적 기업이나 ‘시민기업’을 설립해 고용인은 물론 이해관계자들까지도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간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기업의 사회적 역할은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화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이 성공하면 경제와 기업의 룰이 바뀌고, 시민참여와 국가의 역할 또한 기대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조각들이 모아져서 우리의 미풍양속인 상부상조 정신과 공동체 정신으로 승화되어, 정신의 빈곤이 치유되고, 우리 공동의 미래는 밝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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