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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민주주의는, 미세혈관들이 활발하게 참여하는 생태 민주주의라야!
이창용 前 순천대학교 외래교수
작성 : 2022년 11월 14일(월) 16:43 가+가-
민주주의는 말하는 이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게 한다. 어떤 이는 법과 질서, 절차를 지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공산주의에 반대하고 ‘자유를 수호’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정치 지도자를 선거로 뽑는 것이라고 말하고. 또 어떤 이는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한 것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경제적으로 공평하고 좀 더 평등한 것이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이처럼 민주주의는 보는 이에 따라 매우 다른 의미로 이해된다. 지난주 필자의 칼럼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서 선거로 진출한 임시직인 계약직들이 그 많은 권력을 행사하는 주인행세를 함으로써 주인인 국민이나 주민들이 민주적인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이 제한될 뿐만 아니라 엘리트 정치에 빠져있어 민주주의가 압사되는 참사를 당하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으며, 책임질 줄 모르는 민주주의를 지적하면서 모든 관계 법령을 개정하여 책임정치(행정)를 구현하도록 해야 한다고 기고한 바 있다. 오늘은 또 하나의 대안으로 생태적 민주주의를 제안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대중이 주인이 되는 정치를 펼치자고 제안한다.
영어의 democracy에서 demos는 민중, 대중, 인민이라는 의미다. 그러니까 관료제. 능력자 지배가 아니라 민중이 민중 스스로를 지배하는 정치 체제와 과정이 민주주의인 것이다.
생태 민주주의자들은 평등, 미래세대, 생태적 지속가능성, 생명, 협동, 숙의, 자치와 같은 가치를 지향한다. 첫째, 현세대의 사회경제적, 환경적 불평등을 줄이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을 지향한다. 둘째,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가 안전하게 잘 살 수 있는 권리를 존중하고 이들의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 능력을 저해하지 않을 현세대의 책임을 중시한다. 지금의 세대가 미시적인 의사결정을 독자적으로 함으로써, 다음 세대에 책임을 전가하는 의사결정은 허용할 수 없으며, 재생 불가능한 자원을 모두 사용하거나 재생 가능한 자원을 재생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사용해서 미래 세대의 몫을 빼앗아 고갈시키는 것은 윤리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 셋째, 지구의 생물학적 한계를 중시하고 생태적 지속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강조한다. 지구 생물의 종 다양성이 급속히 감소하는 위험에 처해 있으며, 하나의 전체 체계로서 지구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고 안정시키는데 관심을 집중한다. 넷째, 각종 조직, 집단들의 내재적 가치를 존중하고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아야 함을 강조한다. 다섯째, 생태사회위기의 구조적 원인이 산업자본가와 엘리트 시스템이라고 보고 이를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본다. 여섯째, 모든 사람들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참여하여 숙의할 때 좀 더 생태적이고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이제 우리는 우리 삶의 세계를 지배하는 또 다른 핵심 시스템, 정치에 대해 생각해 보자. 미래세대와 지금의 세대가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정치제도를 만든다고 할 때, 이를 누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이 문제는 권력을 누가, 어떻게 행사하는가 하는 문제와 곧바로 연결된다. 이는 바로 시민참여와 중지를 모으는 숙의 민주주의를 통해, 집중되어 있는 권력을 시민과 나누어 갖는 참여민주주의의 길을 열어가는 일이다. 권력은 타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의사결정을 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입법, 행정, 사법의 지배 엘리트들과 자본가들에게 권력이 집중된다. 이에 반해 생태 민주주의자들은 전문가나 관료, 정치인이 아니라 시민, 민중이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권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민들이 참여하여 법과 제도를 만든다는 것은 시민들이 실질적으로 권력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시민들이 참여하여 만드는 제도나 정책이 많고 중요한 것일수록 민주주의는 더 활기를 띠고 권력은 시민들에게 더 많이 돌아가며 자치는 더 활발해진다. 그런데 시민이 참여하여 정책이나 제도를 어떤 방법으로 결정하는 것이 좋을까? 문제는 수많은 시민들의 생각이 다 다르다는 점이다. 개인주의 성향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의 가치관, 윤리, 선호는 아주 다양하다.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으며,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살아간다.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한 자리에 앉아 남의 말, 남의 고통을 진지하게 듣고 공감하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치와 도리에 맞는 방안을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모든 시민들이 이상적인 대화 상황에서 진실된 대화와 토론을 한다면, 그들은 자신의 편견이나 선호, 이익과는 별개로 논거에 바탕을 두고 토론하고 숙의하여 합리적인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으로는 국가와 지자체를 둘러싸고 있는 각종 생태환경이 진지한 토론과 숙의를 통해 거대 담론을 형성하고, 이를 정책을 결정하는 의사결정에 반영되도록 하며, 정치집단은 각 지역의 미세혈관과 같은 살아있는 생태계가 편견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나감으로써 살아 움직이는 순수한 생태민주주의가 정착되도록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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