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통하기 딱 좋은 날
최창일 시인·이미지 문학평론가
작성 : 2022년 10월 11일(화) 16:59 가+가-

가을 첫 줄이다. 대학로의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잠자리 연대기’ 공연이다. 고추잠자리 공연이 아니다. 1930년대부터 년대 별 출생한 6명의 출연 배우가 잠자리를 진솔하게 그려가는 토크 형식 극(劇)이다.
잠에 관한 소설과 기록은 많다.
잠자리에 관한 저서는 보지 못했다. 사람의 탄생과 함께 잠자리 역사는 자연스럽게 시작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자랑인 한글 소설, <구운몽(九雲夢)>을 ‘잠자리 연대기’의 대표 소설로 분류해 본다. 평론가나 소설가는 억지스러운 분류라며 실없다는 소릴 들을 수도 있다. <구운몽>은 김만중(1637~1689) 작가의 한글 소설의 자존심이다. 자존심이라는 것은 몽자류(夢字類) 소설의 첫걸음이다. ‘환상’ 문학의 원형이며 효시다. <홍길동전>과 함께 소설 문학을 확립한 한국 고전의 정수다.
소설 속, 주인공 성진 스님은 당나라의 고승이다. 지혜롭고 총명하다. 스승의 명으로 수부(水府)에 간 성진 스님은 용왕이 대접한 독한 술을 거나하게 마신다. 연화봉 아래서 술을 깨울 겸 세수를 한다. 때마침 육관 대사를 찾은 팔선녀를 마주한다.
성진 스님은 팔선녀의 미모에 수작을 건다. 속세로 돌아온 성진 스님은 팔선녀의 미모가 어른거려 괴로워한다. 성진은 스승의 꾸지람을 받고 염라대왕 앞에 끌려간다. 팔선녀도 잡혀 와 있다. 이들은 인간계로 영솔(領率)되고, 성진은 양소유라는 사람으로 환생한다. 장수가 되는가 하면 재상이 되고 공훈을 세운다. 여덟 명의 여인과 여생을 잠자리 연대기로 즐긴다. 이 모든 것은 하룻밤의 꿈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구운몽 줄거리다. 구운(九雲)은 주인공 성진과 팔선녀를 가리킨다. 아홉 사람의 하룻밤 꿈꾼 이야기다. 이쯤 되면 구운몽을 잠자리 연대기로 폄하 했다는 비난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결론적으로 잠자리를 통하여 깨달음을 준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구운몽의 작위적 해석에 좀 꺼림칙 하다. 이해를 구한다)
‘내가 드디어 간통하고 말았구나./그런데 하필이면 이런 늙은 남자하고?/희끗희끗하게 새벽이 와 닿는 침대 맡에서/ 반쯤 몸을 일으키다 말고/절망감에 다시 어깨를 눕힌다./ 밤새 소리도 없이 내려앉은/ 눈 펄 같은 흰 머리칼,/군살 낀 목덜미를 하고/ 입 떡 벌린 채 잠자고 있는/저 중년 남자는 누구인가./어쩌다가 여기까지 이르렀을까.//묶어놓은 줄을 풀어 놓아줘/ 이제는 어디에도 가지 못하는/ 길 잘든 오소리 같은 낯설고/ 낯익은 중년 사내 곁에서/ 섬뚝한 새 멱 이불을 반쯤 들추다 말고/ 놀랍고 쓸쓸함에 깊어 얼굴을 피 묻는다./ 아무래도 내가 드디어 간통을 한 것 같다./ 봄 여름 다 보내고/ 이 가을에//’
문정희 시인의 ‘간통’ 시 전문이다.
시인은 간통을 통하여 우리 문학의 정직성과 인간의 잠자리 연대기를 여실하게 묘사하고 있다. 만남, 늙음, 헤어짐, 이별의 사유를 품격있게 묘사한 시편이다. 이 가을엔 버지니아울프가 생각이 난다.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 노랫말 시에서 두 번이나 거명하여, 유명세를 만들어 준 영국의 여류작가다.
그는 양성애의 작가다. 색빌웨스트(Vita Sackville-West)라는 이름의 여인과 양성애의 잠자리 연대기를 고백하기도 했다.
1926년 그 여성의 남편이 받은 편지에 둘은 2번의 성관계를 가졌다 적혀있었다.
버지니아울프에게 잠자리 연대기는 하룻밤의 꿈이라기에는 고통이 숨어 있다.
버지니아울프는 지극히 사랑해주는 남편이 있었다. 그렇다. 다른 여자와의 잠자리연대를 갖는 것은 단순한 사연은 아니었다. 버지니아울프에게는 의붓오빠에게 성폭력을 당한 상처가 벌레처럼 자라고 있었다. 결국, 우울증으로 도졌다. 그는 바바리코트에 돌을 넣고 가을날 우즈강에 뛰어들고 만다. 시인 박인환은 목마를 타고 떠난 버지니아울프의 생애가 가여웠다.
사람들은 수많은 인연을 통해 사랑한다.
사랑의 정리는 잠자리 연대기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잠자리 연대기’의 출연진은 쉽지 않은 사실을 내밀히 말하고 있다.
90살이 넘은 출연진의 적극적인 극 소화도 흥미를 더한다. 시대상과 사랑을 통한 희로애락을 묘사한다. 초대하여준 조만식 배우는 몇 가지 직업을 가졌었다. 인쇄업 CEO를 끝으로 퇴직했다. 꿈꾼 연극배우의 길을 걷고 있다. 조만식 배우가 살아온 실상을 알기에 극의 묘사는 진실하게 투영된다. 출연진 배우들이 혼전, 여러 명과의 이성 관계를 적나라하게 꺼내며 이야기해 나간다. 선을 넘거나 유치함을 벗어나 우아한 시나리오구사력이다.
문정희 시인의 ‘간통’ 시의 주제와 선이 닿는다. 사람의 모두는 ‘잠자리 연대기’의 주인공 일지니. <구운몽>의 성진 스님이기도 하다. 극장을 나왔다.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 선율이 어디선가 퍼져 나온다.
가을 마로니에 나무가 선체로 서럽게 서럽게 흔든다. 몽(夢) 카페에서는 성진 스님과 버지니아울프가 커피를 마신다.
가을 마차는 방울 소리 내며 가을 모퉁이를 돌아서고 있다. 간통하기 딱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