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것, 변하지 않는 것
강나루 시인·시와사람 편집장
작성 : 2022년 05월 01일(일) 16:49 가+가-

수년 전 TV프로그램 《골목식당》에 출연한 홍탁집 모자를 두고 여러 사람들이 말했다.
아들을 향해서 ‘사람은 고쳐쓰는 것이 아니다’,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라고. 지금 돌아보면 그 말들은 모두 틀린 말이 되었다. 나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존재이지만, 쉽게 악해질 수 있고 선해지기는 어렵다고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나 역시 홍탁집 아들의 변화 가능성을 불신한 대다수 부류 중의 하나였고 간혹 그의 근황을 보고 들을 때마다 새삼스레 놀라움을 느낀다.
『광고로 읽는 미술사』라는 책의 서문에서 ‘순수 예술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이 될 수 없다. 예술은 처음부터 상업적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사회적이다.’라고 주장하는 부분을 읽으며 일부의 큰 공감과 하나의 의문을 갖게 되었다.
인간은 목적 없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보기에 의미 없이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이 보이는 모습도 합리성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당사자에게는 나름대로의 의도가 만들어낸 행동이다. 즉 모든 행위는 복합적인 요인에 영향을 받은 인간이 의도를 가지고 빚어낸다는 의미이다.
인간사는 투쟁의 역사이다. 우리의 직계선조인 호모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이니 에렉투스니 하는 여러 인간과 투쟁하여 꺾어내고 살아남았고, 외부의 위협에서 보호받고자 부족국가를 형성했고, 자유를 쟁취하고자 왕을 끌어내렸고, 침략자에게서 조상의 토지를 되찾고자 독립투쟁을 했고, 다른 이념과 싸우고, 이익을 위해 여전히 싸우고 있다.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인간 또한 투쟁으로 시작하여 투쟁이 끝없이 영속되고 있는 것이다.
투쟁의 최소목표는 생존이다.
그리고 종의 보전이다. 광고 또한 마찬가지이다. 광고는 목적이 분명하다. 알리는 것.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알려질수록 광고대상은 생존하기 유리해진다.
관광지라면 관광객이 늘 것이고 상품이라면 잘 팔릴 것이다.
우리가 약국에서 다른 두통약보다도 우선 타이레놀부터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광고는 여러 유사종들과의 투쟁인 것이다.
광고들 중에서는 명화를 패러디하거나 오마주한 것이 또 많다.
『광고로 읽는 미술사』에서 예시로 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의 경우 수많은 모작과 아류작들이 넘쳐나는데, 현대로 올수록 식탁 위의 그릇이 커지고 음식이 풍요로워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역사적, 경제학적으로 보았을 때 식량생산이 증대하고 물류가 발전한 영향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최후의 만찬」의 구도는 책에서 다룬 여러 음식 프로그램의 광고 뿐만 아니라 영화 포스터, 의류광고에도 빈번하게 쓰이고 있다.
어떻게 본다면 정면을 바라보는 여러 사람을 가장 역동적으로 나타낼 수 있으니 주목받는 것이 곧 이익인 연예인, 배우 등은 광고를 선택할 때 등이 보이는 것보다 이렇게 얼굴이 나오는 모습을 선호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얼핏 든다. 2015년에 개봉한 『이웃집에 신이 산다』라는 영화의 포스터 역시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것인데, 「최후의 만찬」 원화의 이곳저곳에 영화 등장인물을 어색하지 않게 배치하여 천지창조하려는 ‘신’과 한 가지씩 소원을 가진 여섯 ‘사도들’이라는 영화의 배경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면서도 발칙하고 도발적인 풍자적 느낌이 호기심을 살살 유발한다.
여러 예술작품을 보고 있자면 미의 기준이 다채롭게 변화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대에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몇 년 전 레딧이라는 외국 사이트를 이용하는 어느 누리꾼이 한 여성의 사진을 두고 세계 여러 나라의 디자이너들에게 미형으로 보정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일이 있었다. 전 세계가 매우 발달한 통신으로 연결되어있고, 심지어 한 사이트 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별로 미형에 대한 기준이 얼마나 상이한지를 알 수 있는 사례였다. 상이한 결과물들이 제출되었지만, 그것들은 모두 미형으로 보정하겠다는 한 가지 목적의 결과물이었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예술도 그러하다. 어느 때나 미를 추구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것이고, 미를 추구하는 방법과 결과물이 변하는 것에 속한다.
미술작품의 미적 가치를 서사적 지식으로 탐구하는 시도와 미술작품만으로 가치를 탐구하려는 시도가 함께 있는 것처럼, 시나 소설을 작가의 삶이라는 서사와 함께 이해하려는 시도와 문학작품 자체로 문학적 가치를 찾으려는 시도가 함께 있는 것과 맥락이 유사하다.
예술은 끊임없이 방법과 결과물을 변화시켜왔다. 말은 주문이 되었고 기도가 되었고 시와 노래가 되었으며 벽화는 글과 그림이 되었고 회화와 문학이 되었고 굿은 춤과 무용, 토템은 조형예술로 발전했다.
인간의 행위에서 비롯된 하나하나가 둘과 셋 넷 여럿으로 분화하여온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도로 뭉쳐 상호작용함과 행위함을 통해서 경계가 모호한 예술 갈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백남준으로 대표되는 미디어아트도 그 일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