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 최고의 선물인가 지옥의 불인가?
이창용 前 순천대학교 외래교수
작성 : 2022년 04월 25일(월) 16:44 가+가-

혀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언다어실(言多語失), 언다필실(言多必失)이란 말이 왜 생겼겠는가? 말이 많으면 실수하기 쉽고, 말이 많으면 실수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불행은 그 입에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가벼운 입은 몸을 치는 도끼요, 몸을 찌르는 칼이다.’라고 경솔한 말을 경계하고 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세 치 혀가 몇 백 명의 군사보다 낫다.” “길지 않은 혀를 가지고 덕을 쌓으면 복을 얻고, 잘못 놀리면 화를 입는다.” “모든 재앙은 입에서 나온다.” 세 치 밖에 안 되는 짧은 혀를 잘못 놀리면 죽게 되는 수가 있다는 뜻으로,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됨을 비유적으로 이른 말이다.
실제로 한나라의 사마천은 그 세 치 혀를 잘못 놀려서 궁형의 치욕을 받았고, 전국시기 공자, 맹자의 계보를 잇는 순자의 제자인 한비도 세 치 혀를 잘못 놀려서 죽음을 면하지 못했다.
옛날 장터에서 박 씨 성을 가진 백정이 고기를 팔고 있었다. 어느 날 젊은 두 사람이 고기를 사러 왔다. 한 양반은 “어이 백정 고기 한 근만 다오.” 하고, 또 다른 양반은 “박 서방 고기 한 근 주시게.” 하고 말하자 백정이 고기를 잘라주었다. 그러자 먼저 양반이 소리쳐 따졌다, “이 놈아 같은 한 근인데 어째서 이 양반 것은 나 보다 배나 많으냐? 그러자 백정은“예 그야 손님 고기는 백정이 자른 것이고, 이 어른 고기는 박 서방이 자른 것이니까 그렇지요.” 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내가 건넨 친절한 말 한마디, 따뜻한 말 한마디가 결국은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세상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입 밖으로 나간 말(言)과 시위를 떠난 화살과 또 시간이라고 한다. 잘 못 쏜 화살을 되돌릴 수가 없듯이 사람의 입 밖으로 한 번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탈무드에 “말은 깃털과 같이 가벼워서 한 번 내뱉으면 주워 담기 힘들다.” 공자는 “말 한마디의 잘못으로 평생 쌓은 덕을 무너뜨린다.” 또 페르시아 금언은 “입이 가벼울수록 수명은 줄어든다.”라고 경고한다. 이 말들은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이 필요함을 암시한다. 중국의 정치가 풍도는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요.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다. 입을 닫고 혀를 감춘다면 가는 곳마다 몸을 편하게 할 수 있다.”라고 했다. “총칼로 죽은 사람보다 혀로 죽은 사람이 더 많다. 입 속의 자객을 조심하라.”는 말도 있다. 성경에도 이렇게 교훈하고 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나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온전한 사람이라.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라고 하였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듯이 보이지 않는 언어폭력에 의해서 한 사람의 운명이 바뀌기도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커다란 배가 지극히 작은 키로 운전되듯이 혀도 우리 몸의 일부이지만 잘못 사용하면 목숨을 잃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듣기 좋은 말이나 칭찬을 할 때도 여러 번 생각하고, 듣기 싫은 말이나 안 좋은 이야기를 해야 할 때도 거듭거듭 여러 번 생각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인터넷 활용이 많아지면서 인터넷 언어 피해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윤일병의 죽음, 배우 최진실의 죽음 등은 잘못된 언어폭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언어가 칼이 되어 상대방을 찔러서 피 흐르고 멍들게 만드는 현실이 안타깝다.
말로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깊다고 한다. 누군가는 민주주의를 말로 하는 가장 잔혹한 전쟁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오랜 기간 대립 관계를 조장하면서 만들어온 댓글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최근 치렀던 대선은 역대 급 폄하·막말 대선으로 대선 기간 내내 거칠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혐오 대선이었다. 세 치 혀라는 의미는 현란한 화술로 상대를 제압, 설득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잘못 놀려 돌이킬 수 없는 화를 자초하는 경우를 말하는 의미가 더 크다 할 수 있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기 마련이다. 거짓된 정보로 혼란스럽게 하지 말자. 이기기 위한 상대를 헐뜯는 댓글 전쟁보다는 서로 칭찬하는 아름다운 댓글 전쟁은 할 수 없는 것일까? 세상을 밝히는 아름다운 이정표가 되면 좋겠다.
우리는 말을 함에 있어서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사람들을 자신의 생각대로 마구 말을 쏟아내어 상처 주지 말자.
코로나 19로 지친 모든 사람들끼리 죽이는 언어가 아닌 살리는 언어를 사용하자. 실망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말을, 좌절과 낙심한 사람들에게는 격려와 용기를 주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말하고 싶을 때 그 파장을 생각해야 하고 침묵해야 할 때를 알고 침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여 함부로 말하며 비판하는 실수는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덕이 되지 못한 말은 어느 때에라도 내뱉지 않을 것이다. 사람을 죽이는 독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혀는 인간의 지체 가운데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신체의 일부로서 우리에게 혀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